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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an 16. 2023

산다는 것은 그물을 짜는 것

산다는 것은 떠나지 않는 희망 때문입니다. 떠나지 않는 희망이라기보다는 버릴 수 없는 희망 때문이겠지요. 어떨 때는 바라는 희망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요.

내가 어릴 때는 희망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위인전을 읽고, 나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차츰 머리가 커지고 가정의 형편이 여의치 못하게 되었을 때 내가 무엇을 하면 우리 집이 좀 잘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이것도 별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 방편은 잘 생각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5 일장을 다니시던 삼촌께서 시장에 가려면 그 동네의 약사님의 땅을 밟고 가야 하는데, 그 땅이 너무 넓어 엄청 부러웠나 봅니다. 나에게 ‘너도 약대에 가서 집안을 좀 일으켜 세워봐’ 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가슴 뜨끔한  말로 깊이도 박혔습니다. 그러기에는 나는 전자 쪽이 너무도 재미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생각이 들고 난 후였습니다. 그때는 오지에서 라디오 구경을 할 수 없었을 때 광석 라디오를 조립하여 집 울타리였던 대나무에 높이 안테나를 세우고 리시버로 라디오를 듣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기술 과목이 있었는데 진공관의 증폭회로를 외워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약대에 가라고 하니깐 엄청 섧기도 했으나, 원서를 전자공학과와 약대 두 곳에 썼습니다. 시험 치는 전날, 어린 마음에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잠도 자지도 못하고 시험 치러 갔습니다.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는데 고민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물이 고여 있는 화분의 얼음을 손으로 깨어 손수권에 찬물을 뭍혀 얼굴을 닦고 홀린 듯이 걸었습니다. 아차, 전자공학과는 정문에서 가까웠고, 약대는 아주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자공학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고 약대는 눈앞에 있어, 다시 내려간다면 아무런 시험도 치를 수 없었습니다.  

   

나의 희망은 이렇게 나의 길로 정해 져 버렸습니다. 개학하고 과목을 보니, 아뿔사 모든 과목이 화학이었습니다. 삼촌께서는 약대에 가면 화학 안 해도 된다길래 자그마한 위안으로 약대에 시험을 쳐도 되겠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내보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 더 괴로운 일은 30명 정원에 25명이 여학생이어서 괜히 부끄럽고 적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등록금으로 광안리에-그 때 당시는 넓은 백사장에 자그마한 노 젓는 배가 두어 척 있었고, 노인이 그물을 손보고 있었음. 바람이 심하여 모래가 날려 눈을 뜰 수 없었음-땅이나 좀 사두고 군대에 갈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으로 가 엄마에게 인사하고 군대에 갈 준비로 갔었는데, 울 엄마, 너무도 작고, 얼굴엔 주름살이 짙고, 손은 굳은 살로 피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엄마 얼굴만 떠올리며, 새롭게 만든 희망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중간고사가 끝나면 다음 날 바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나미 볼펜이 주된 필기구였는데 심을 따로 살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볼펜 심 하나씩을 다 썼습니다. 장난스럽게라도 볼펜 심 하나를 하루 동안 써 보신다면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3학년 초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되고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또 다른 희망이 다가설 수밖에요. 3학년 초에 학보사 사진기자로 들어갑니다. 이때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만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신의 후폭풍으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캠퍼스 운동장에는 군인들의 막사가 들어서고, 장갑차가 정문에 배치되고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 올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신문은 검열되어 신문의 절반정도가 삭제되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곤 했습니다. 10월 25일 부산 시내의 부산극장 옆 골목에 학생들이 1줄로 길게 늘어서고, 맞은 편에는 경찰들이 1줄로 길게 늘어서서 긴장이 최고조로 도달되고, 3시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낚아 채 갔습니다. 주변의 상인이 합세하여 그 세력이 경찰들보다 세어져 학생들을 보살피고, 음식을 제공하고... 결국 10월 26일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희망인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4학년 말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 또 다른 희망을 구가하게 됩니다. 그간 하지 못한 공부를 더  하자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공부를 계속하는 희망에 잡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먼 군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와 장교 시험을 치르고, 백골부대(제 3사단)에 근무하고 있을 때 형언하기 어려운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 같이 장교 시험을 본 사람이 떨어졌는데, 이 사람들이 6개월 복부하고 제대하는 육장(육개월 장교)이 생겨 재대를 했다는 겁니다. 나는 36개월 근무해야 하는 데, 6개월 만에, 그것도 장교로 제대했답니다. 육사 생도들은 다이아몬드 달려고 4년을 수련하는데도 말입니다. 여기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는 교훈을 만들게 되고, 이것이 현재의 길로 안내하는 새로운 길이 됩니다.     


희망은 이루기 위한 동적인 힘을 일으켜 줍니다. 제대 후에 박사과정을 들어가게 되고 일과   병행하여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텔레비전만 켜면 박사들이 나오고, 교수들이 나와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하는 희망이 나를 아주 끈질기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희망의 노예로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윽고 박사를 수여받고 TV에 나오는 교수들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은 완전히 절망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다른 과의 박사들은 대학에 자리를 쉽게 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때는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래를 씹는 것과 같았습니다. 허망한 희망 때문에 얼굴이 검게 타가고, 체중은 말없이 빠지고,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람이 먼저 살고 볼 일이라고 교수 되려다가 사람 먼저 잡겠네 하며 어머니는 한사코 말렸습니다. 나의 지주 엄마가 말리는데, 교수가 아니더라도 약사로 충분히 이루고 살 수 있지 않겠냐며 눈물을 보이곤 했습니다.   

  

또한, 다른 희망을 잡기위해, 일면도 없는 다른 대학교 교수님께 직접 찾아가서 이 연구실에서 실험과 연구를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 연구를 하겠다하니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보름이 되도록 아침 일찍 그 연구실에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실험실 학생들을 돌보고 같이 실험하고 하니깐 그 교수님께서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또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잃어버린 희망에 불꽃을 살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나아갈 길과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아주 세심하게 살펴주셨고, 지금의 내가  있겠금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희망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소성(稀少性)의 가치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아주 드물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희망(希望)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수가 되었을 때 그렇게 어려웠던 희망이 나에게 도달했을 때 이제는 희망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교수 생활은 거의 수위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며 나의 길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은 쏜 화살처럼 너무도 빨리 달아나서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에게 주어지는 희망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담아야 할 그릇에 넣어야 할 것은 다름없이 건강입니다. 작년 한 해 수술을 세 번 했습니다. 아마도 나의 자만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헬스클럽에 가서 1시간여 동안 운동하고 사우나하고 나면 아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출근했습니다. 그것도 출장이 아니면 매일 운동하였습니다. 1998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깐 25년을 하루 같이 운동하고, 틈나면 장거리 달리기를 하였기 때문에 나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입니다.    

 

                        [삶, 희망을 둘러쌀 수 있는 그물을 만드는 것(여수, 2022)]


바보같이, 바보같이가 아니라 바보이지요. 꼭 당해보고 나서야 알 수 있다니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천재란 무엇을 잘하는 것보다 당하기 전에 대응하는 것일 겁니다. 이것은 나의 굳건하던 희망이 깃털 떨어진 새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것입니다. 추락하는 새를 잡으려면 더 넓은 그물망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무슨 일 보다도 그물망을 짜내는 희망에 전신을 실을까 합니다. 희망은 잘 이루어 지지는 않지만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걸 체험한 대로 믿으려 합니다.     


삶, 희망을 둘러쌀 수 있는 그물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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