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생존기
아빠는 나에게 부채의식이 있으신 것 같다.
딸이 그렇게 원하던 학교에 정교사가 되었는데 선물투자에 투자할 돈이 필요해서 00 머니에 데리고 가고,
맏딸이 시집가는데 선물을 해주는 게 아니라 빚을 1억 이상 갚으라고 주고,
그래서 딸은 조울증으로 3년을 사경을 헤매고,
내가 너무 예뻐 내가 태어나고 바로 카메라를 사신 우리 아빠.
사랑하는 딸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 아빠도 많이 아프셨겠지.
상담을 받았는데 내 안에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다. 아빠의 말에 “아니요”라는 대답을 못하는 딸. 그때 “아니요, 싫어요. 아빠가 돼서 너무한 게 아니에요?”라고 왜 말하지 못했나 자책한 적도 있고, 아빠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빠를 진짜 사랑한다.
화이트 칼라로만 살아오셨는데, 그때 당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은행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는데 젊은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제 막 애들이 대학에 가려고 하는 그때에 은행을 나와야 하는 그 충격.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려고 뛰어들었고, 그 선택이 잘못됐지만, 그 후로도 아빠는 한 번도 안 해본 일도 매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원하고 일하셨다. 그리고 지금 70세가 훨씬 넘으셨지만 여전히 성실하게 출근하고 계신다.
언제나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신 아빠,
늘 나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랑하는 딸이라고 말해주시는 아빠,
새벽마다 기도해 주시는 아빠,
저도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아빠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란 것을 배웠기에 그 후 신랑이 사업으로 빚을 져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고,
더 예수님을 깊이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삶은 제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어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히 함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