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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pr 27. 2020

권리를 부탁하는 삶

 나의 직업은 부탁이 일상이다. 


"힘드시겠지만 OO을 모든 활동에 조금이라도 참여시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 OO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세요. 선생님이 OO야,  불러주시는 한 마디가 다른 친구들로 하여금 OO를 우리 반 친구로 인식하게 한답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버릇처럼 '죄송하지만'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던 것은 노력한 덕분에 고칠 수 있었지만 '힘드시겠지만' 이라던가 '수고로우시겠지만' 같은 말은 끝끝내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특수교사라고 하면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 설명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 일이 아직도 곤혹스럽다. 사람들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표정에 드러내며 '조금 지능이 떨어지는', '부족한', '몸이 아픈' 등의 표현들을 사용하며 내 직업의 정체성을 파악한 다음 '정말 봉사 정신이 투철하신가 봐요!', '대단한 일을 하시는군요.'와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중 가장 싫어하는 말은 '특수교사를 하는 분들은 천사 같은 분들인 것 같아요.'란 말이다. 나는 대단하거나 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도 아니지만 천사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학생이 수업 중에 공부가 하기 싫어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저는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어요! 뉴질랜드의 양 떼처럼..."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져 혼낼 포인트를 놓치고 말았던 일.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에 운동장에 나가 눈싸움을 하다가 학생이 던진 거대한 눈덩이에 등을 세게 맞아서 억울했던 일. 한 시간 내내 여러 가지 색의 셀로판지를 바꿔가며 얼굴에 댔다가 떼었다가 하는 학생의 눈이 귀여워 그만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던 일. "OO가 없어졌어요!"라는 담임선생님의 인터폰을 받고 뛰어 올라갔다가 복도에서 무릎으로 걸어 다니고 있는 OO를 만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웃음을 참으며 지도를 해야만 했던 일. 


 학생들이 미울 때도 많다. 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전문가답게 감정을 담지 않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면 행복하다가, 힘들 때는 무너지기도 한다. 선생님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나는 그런 여느 교사들처럼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의무교육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 직업을 장애라는 변수만으로 교육이 아닌 봉사로 여기고는 한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학부모님들은 담임선생님께 하지 못하는 말들을 나에게 대신 건넨다. 그 사실이 섭섭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이해하려 노력한다. 우리 반 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현장학습에 참여할 때면 많은 학부모님들이 "그런데 OO가 가도 괜찮을까요? 저는 참여시키고 싶은데,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라고 말끝을 흐리시며 허락을 구하고 싶어 하신다. 나는 "당연히 OO도 가야죠!"라고 말하면서 자주 슬프다. 모든 학생들이 가는 현장학습인데, 특별한 일도 아닌데,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런 것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일할이라도 알 수 있겠냐만은 나 역시 학교생활 안에서 당연한 것들을 부탁하며 생활하고 있으니 아주 모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짝꿍을 바꿀 때 참여시키는 것, 활동지와 준비물을 똑같이 받게 하는 것, 청소 당번을 맡는 것, 잘못했을 때에는 똑같이 혼이 나게 하는 것, 반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 모둠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것. 


 한 번은 아주 날카로운 학부모님을 만나 호되게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잘하려고 애를 썼다가 그르친 일이라 속이 상했고 이런 일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들어야 하나 마음이 아득해져 퇴근도 못하고 혼자 교실에 앉아 찔끔찔끔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상한 얼굴로 집에 돌아오다 문득, 내내 싸워야만 했던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을 한껏 긴장된 태도로 삶에 맞서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나는 더 이상 불평할 수가 없었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걷지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삶에 감사해야죠." 우리에게 장애를 동정할 권리는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감을 느낄 권리는 더더욱 없다. 장애를 동정하기보다는 장애인들 역시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부탁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나로 인해 조금은 더 행복한 학창 시절을 지나길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또래와 똑같이 신나는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들을 꾸미고,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 반 아이들 역시 똑같은 친구임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어린 친구들은  "OO야!" 하고 아주 큰 소리로 우리 반 친구들을 사랑스럽게 부르고, 자주 함께 시소를 타거나 몰래 들고 온 간식거리를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반성한다. 이렇게 함께 어울리며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라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것이, 정말로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그리도 우리도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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