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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05. 2024

비장애인용 세상

  교실에 있다 보면 자주 아이들의 흥얼거림을 듣는다. 큰 소리로 음만 흥얼거리는 아이도 있고 아주 작게 가사를 읊조리는 학생도 있다. 노래를 부르는 행동은 문제가 없지만 수업 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업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는 노래를 실컷 불러도 좋다고 말해주어도 흥얼거림은 보통 잠시 멈추었다 다시 이어진다.

  

  흥얼거리는 모든 학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학생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한다. 아마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이 보이는 특성 중 하나인 예민한 청각이나 뛰어난 청각적 기억력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본인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무의식적 행동에 가까운 흥얼거림을 의지적으로 쉬는 시간에만 하자는 말이 학생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냥코대전쟁과 앵그리버드, 참새와 병아리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매일 냥코대전쟁의 bgm을 흥얼거렸다. 학생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은 병아리 같아요.”라는 최고의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병아리를 닮은 것은 나보다도 그 학생이었다. 눈이 병아리처럼 가늘고 귀여웠던 학생은 경쟁심이 강해서 경쟁에서 질 때면 가느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서는 학교가 다 떠나가도록 울었다. 이학년이었던 병아리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학생은 요즘도 몇 개월에 한 번씩 카톡으로 굿이브닝 인사를 날린다. 반가워서 오랜만이라고 답을 보내면 또 몇 개월간 답이 없다. 대단하게도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냥코대전쟁이다.

 

  사계절에 따라 다른 노래를 흥얼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면 학생이 요즘 집에서 어떤 노래를 듣는지 알 수 있었다. 봄에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우렁차게 부르길래 귀엽고 반가운 마음에 “벚꽃 엔딩이야?”하고 아는 척을 했는데 학생이 “아,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며 옆 반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 이후로는 모르는 척 학생의 노래를 듣기만 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는데 목소리가 제법 재즈풍이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보컬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흐뭇하게 노래를 감상했다. 열차를 엄청 좋아했던 학생은 노래 대신 기차 소리를 자주 흥얼거렸다. 윙 치크, 윙-치크 대충 이런 소리였다. 학생은 수많은 지하철역과 기차역의 이름을 알았고 지하철 호선의 색깔과 KTX열차의 무늬를 떠올려 세세하게 열차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열차 그림을 그릴 때면 흥얼거림은 더욱 실감 나고 격해졌다. 열차뿐만이 아니라 배나 자동차도 좋아했던 학생은 특히 영화 ‘허비’의 주인공인 비틀을 좋아했는데, 주말 일기를 쓸 때마다 연두색 비틀, 노란색 비틀, 빨간색 비틀을 본 일을 일기로 써 곤혹스러웠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비틀을 발견 하면 나도 모르게 열심히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학생에게 자랑하게 되었다.


  비틀 마니아가 수업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국어 시간 중 내가 발명하고 싶은 물건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학생은 비틀 마니아답게 비틀 장난감을 발명하겠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근사하게 비틀을 그린 학생은 장난감에게 영화에서처럼 허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허비를 이렇게 설명했다. ‘허비는 내 친구다. 허비는 방을 돌아다니다가 나를 보고 같이 놀자고 하지 않고 나를 그냥 지나간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허비가 학생을 그냥 지나가는 이유를 굳이 묻지는 않았다. 다만 혼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당연한 듯이 “혼자 놀지 말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 많았겠다고, 그리고 나도 그랬노라고 생각했다.


  냥코를 좋아하거나 열차를 좋아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학생은 냥코나 열차 얘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학생이 냥코 얘기나 열차 얘기에만 열을 올릴 때면 ‘세 번만 얘기하기’와 같은 규칙을 정해주기도한다. 그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차 얘기보다는 날씨 얘기를 한다거나 안부를 묻는 일은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이 의례적으로 하는 날씨 얘기는 건너뛰고 열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기차나 병아리에 대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면 어떨까? 혹은 저마다 노래나 좋아하는 소리를 흥얼거리며 본인의 과제에 몰두하는 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세상은 많이 쓴다. 물론 ‘우리’는 ‘비장애인’을 뜻한다. 나는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장애인을 돕거나 배려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은 틀렸으니까. 세상은 비장애인용이다. 비장애인용 버스, 비장애인용 지하철, 비장애인용 주차장, 비장애인용 화장실, 비장애인용 학교. 나는 오늘도 비장애인용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는 장애인의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다.


  넷플릭스에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성인들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담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데이트를 시작할 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라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학생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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