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에요. 사월이고요. 단 하루도 슬프게 보내지 않을 거예요. 나무를 실컷 보겠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린잎이 ‘어린잎’으로 보내는 때는 짧아요. 금세 지나가죠.’ (박연준, ‘사월’)
지난해 가을 이사한 집에서는 금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의 능선이 멋지게 내다보인다. 좋은 계절에 부푼 마음으로 새 집을 꾸미며 단풍이 내려앉은 산의 풍경을 한동안 누렸다. 겨울이 되고서는 눈이 내릴 때마다 한참 동안 근사한 설산을 볼 수 있었다. 가끔 여행을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설산을 보며 채소를 썰거나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좋았다.
봄이 오고 산에 연둣빛이 돋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행복했다. 산이 푸른빛을 띨수록 내 기분에도 생기가 돋았다. 봄은 사월을 지나며 재빠르게 무성해졌다. 매일 달라지는 봄의 잎과 풀을 보는 일이 처음 겪는 일처럼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비가 내리면 초록은 더 짙어졌다.
임신을 하고 세 달은 불안감의 연속이었다. 혈액 수치가 임신임을 증명해주고 나면 그다음 주에는 혈액 수치가 두 배는 되어있어야 안심할 수 있었고 난황을 보고 나면 아기의 심장소리가 정상적으로 뛰는지 확인해야 했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아기가 무사히 뱃속에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 인지 몰랐을 것이다. 드디어 ‘안정기’라고 부를 수 있는 세 달 즈음이 되자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형아 검사. 일반적으로 ‘기형아’ 검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기의 염색체 이상, 가장 흔하게는 이십일 번 염색 체가 하나 더 많은 다운증후군을 예측할 수 있는 검사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내가 만났던 다운증후군 학생들과 그 학부모님들을 떠올렸다. 학부 시절 성북동에 있는 특수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다운증후군 학생을 만났다.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면 엄청 맛있는 설렁탕집이 있어서 매번 점심을 그 식당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스무 살, 아직 아이들을 대하는 게 어려웠던 내게 그 학생 이 먼저 다가와 손톱 색깔을 칭찬했다. 손을 들어 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 예쁘다!” 하고. 핫핑크 색의 매니큐어가 여기저기 못나게 벗겨져 있던 손톱과 그 위를 지나던 작고 통통한 손, 그리고 학생이 지었던 표정 같은게 여전히 선명하다.
이학년부터 사 학년까지 삼 년을 함께 했던 다운증후군 학생도 있었다. 한글 배우기도 수 세기도 어려워해서 고민이 많았지만 학생은 늘 적극적이고 의욕 적으로 어떤 활동이든 주도했다.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우렁찬 대답을 들을 때마다 수업을 준비한 시간이나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함께 교실에서 키운 콩나물로 콩나물 잡채도 만들었고 반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도 했다. 눈썰매장에 간 날에는 지치지 않는 학생의 체력에 놀랐고 롯데타워에 갔을 때에는 학생이 아쿠아리움보다 롯데타워 전망대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급식 시간에는 작은 몸집으로 늘 “더 주세요!”를 크게 외쳐 급식실 선생님들을 웃게 했다.
아직도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가끔 학생의 아버님께서 학생을 데리러 오실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학생은 아빠가 온다며 신이 나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멀리서 걸어오는 학생을 보면 항상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번쩍 드셨다. 학생은 아빠가 온 것을 눈치채고 나면 저 멀리 복도 끝까지 “아빠!”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그 품에 꼭 안겼다.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을 테지. 아마 중학교에서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게 틀림없다.
‘저위험군’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내가 만났던 학부모님들이 지금의 나처럼 겪어 나갔을 감정들을 생각했다. 사랑스러운 우리 반 학생을 두 팔 벌려 안아주었던 아버님께서는 어떤 결심과 준비를 하셨을까? 스무 살이 된 특수교육학 전공의 대학생보다 더 어른스럽고 예쁘게 먼저 말을 걸어줄 줄 알았던 학생이 되기까지 학생의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까? 창 밖으로 무성한 봄의 어림과 싱그러움에 마음이 울컥했다. 봄은 앞으로도 한참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내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이십일 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었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기에게 봄의 어린잎을 누리게 해 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실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만난 모든 다운증후군 학생들에게서 충분한 행복의 순간을 수없이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지금 이 계절의 산을, 풀을,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창 밖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때로 꺄아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꺄르르하고 웃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봄의 어린잎을 누리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