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난 선생님도 방학을 좋아하는지 몰랐어.” 남편의 말에 나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방학식에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선생님은 분명 ‘방학이 그렇게 좋니?’하는 한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방학 내내 미루었던 일기 쓰기를 종말이 다가오는 기분으로 개학 전 날 몽땅 몰아서 썼던 장면도 생생하다. 팔이 너무 아파서 하루는 다섯 줄짜리 시로, 또 다른 하루는 네 컷 만화로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되었지만 방학식 때와 개학 하루 전에 느끼는 기분이 학생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할수록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한 해 중 가장 힘든 달은 삼월이다. 삼월에는 학생 개개인을 위한 교육계획과 학급 교육과정을 만든다. 자기가 속한 학년의 ‘국민 공통’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학생도 있지만 그게 어렵다면 학생에게 딱 맞는 교육계획을 만들기 위해 여러 교육과정과 교재를 재구성해야 한다. ‘국민 공통’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가장 힘든 점은 내가 만든 교육계획이 학생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가르치는 게 더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학생의 성과가 학부모님이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면 어떡하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면 학생이 목표를 이룰 수 있었을까? 교사가 힘이 없는 요즘 같은 때에는, 혹여나 학부모님이 나라는 교사를 만나서 자녀가 더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끙끙 앓기도 한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하루를 뿌듯하게 마무리하는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하루는 물음표로 끝이 난다.
학생들과 달력 공부를 자주 한다. 일주일이 칠일이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곱 가지의 요일이 있다는 사실, 일 개월은 삼십일이거나 삼십일일인데 그중 이십팔 일까지 밖에 없는(심지어 아주 가끔 이십구 일이 되기도 하는) 달도 있다는 것, 일 년은 십이 개월이며 칠월은 여름이고 팔월은 아주 아주 더운 여름이라던가 십일월은 가을이기도 하고 겨울이기도 한데 십이월은 정말 겨울임을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달력을 배울 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방학을 달력에 표시하는 일이다. 방학을 표시하고 나서는 매일 오늘은 며칠이고 방학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달력을 넘기며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학생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신비한 사실을 알아간다고 생각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 번은 날마다 오늘과 어제, 내일의 날짜를 확인하며 달력을 배운 학생이 처음으로 친구에게 생일을 물었다. 달력을 읽을 수 있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친구 생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침 친구의 생일은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고 학생은 그 광경을 모르는 척 지켜보고 있는 내게 빈 종이를 받아 친구의 생일을 적어 집에 가져갔다.
대망의 생일날, 학생은 우리 반에 오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생님 오늘 며칠이에요?”라고 묻고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친구의 생일 선물을 꺼냈다. 책상 위에 포장도 하지 않은 선물을 올려놓고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에는 무언가를 선물하는 기쁨을 알아챈 설렘이 있었다. 일부러 조금 떨어져 학생이 친구에게 선물을 주는 따뜻한 장면을 지켜보았다. 친구에게 선물을 건네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이의 부끄러움도 엿보았다. “내가 열어줄게!”라며 학생이 상자를 열어주고 나서 아이들이 잠깐동안 풍기던 달뜬 기운도. 점심시간이 끝난 오교 시, 교실 에는 오후의 볕이 예쁘게 들어오고 있었다.
종종 특수교사라는 직업에는 ‘희생정신이 숭고한’, ‘봉사 정신이 투철한’ 같은 말이 따라붙는다. 특수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듣고, 교장선생님께서는 칭찬의 의미를 담아 특수교사는 다 ‘착하다’고 말하시기도 한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 데 직업을 듣자마자 “일반 학생들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반박하거나 난색을 표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운이 빠진다. 나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숭고한 희생 정신과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물음표로 끝나는 매일이지만 내가 한 존재의 삶에서 아주 작은 한 점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한 존재가 달력을 읽게 되고, 그렇게 생일의 의미를 알고,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생일을 직접 메모하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주말에 직접 선물을 고르고, 날짜에 맞추어 선물을 가방에 챙겨 오고, 하루 종일 선물을 건넬 생각을 하다가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는 뿌듯하게 행복해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그럴 때면 내 일이 꼭 볕이 잘 드는 오교 시의 교실 풍경 같다.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간다. 오늘은 김창완의 LP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아빠가 설날에 잔뜩 챙겨준 콜라비로 깍두기를 만들었다. 콜라비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손질이 조금 힘들었지만 아주 맛있는 깍두기가 완성되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깍두기를 만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에서 콜라비 깍두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별일 아니지만 별일인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도 오늘 중간 정도 사이즈의 점 하나가 찍히지 않았을까? 삼월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오싹한 이월 말이지만, 아이들이 나와 깍두기 만들기 같은 사소한 즐거움과 배움을 누리는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올해도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