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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18. 2024

장애를 극복하고

  겨울방학이다. 예전에는 이월 봄방학을 맞이하고 나서야 이번 학년도 끝이구나 싶었는데 봄방학이 없어진 뒤로 겨울방학이 시작된다는 것은 곧 한 학년 이 끝났다는 뜻이다. 겨울방학과 동시에 학생들은 종업도 하고 졸업도 한다. 올해도 끝났다는 생각보다 학생들이 이학년에서 삼 학년이, 삼 학년에서 사 학년이 된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니, 네가 벌써 오 학년이 된다고? 말도 안 돼. 벌써 그렇게 됐을 리가 없다고! 아마 학부모님은 나보다 더 놀랍고 걱정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삼월이 되기 전까지 겨울방학은 춥고 고요하고 무료하게 흘러간다. 이번 겨울방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이 많이 오니 다행이다.


  작년 십이월, 학생도 나도 학부모님도 한 학년의 마무리를 준비하던 무렵 한 일학년 학생 학부모님께서 담임선생님께 이렇게 물으셨다. “일 학년 한 번 더 다녀야 하는 것 아니에요?” 농담인 척 던지셨겠지만 사실 아주 많은 염려와 불안, 속상함과 실망감이 담겨있는 질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무사히 일 년이 지났지만, 일 년이 지나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쩐지 제자리인 것만 같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데 이대로 이학년이 되어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드셨겠지. 어쩌면 학부모님께서는 학생이 보낸 한 해가 허탕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장애를 극복하고’라는 말을 자주 본다. 장애를 극복한 예술가, 장애를 극복한 사업가, 장애를 극복한 운동선수.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그렇다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극복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이기어 도로 회복하다. 또는 본디의 형편으로 돌아가다.’ ‘정도로 돌아가다.’


  일 년 동안 학생은 점심시간이면 같은 반 아이들과 모래놀이를 했다. 모래놀이 도구는 우리 반에서만 빌려갈 수 있기 때문에 모래놀이를 하기 위한 경쟁은 늘 치열했다. 학생은 처음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급식을 받아보았다. 먼저 받고 싶어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학교에 오기 싫은 날은 울면서 등교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수업까지 참다가 하교했다. 같은 반 아이들은 학생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손을 흔들었고 학생은 같은 몸짓으로 아이들에게 답하는 연습을 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밀어주는 그네를 타고 함께 손을 잡고 교실로 돌아왔다. 학생은 선을 따라 가위질을 했고 색칠도 했고 손에 풀을 잔뜩 묻혀가며 풀칠도 했다. 학생과 함께 모둠 활동을 할 때 누군가 나에게 활동지를 보여주며 “선생님! 얘도 이거 필요해요?”라고 물으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의 친구가 “당연하지! 우리 모둠이잖아!”라고 대답해주기도 했다. 가끔 아이들은 학생 때문에 힘들고 속상한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를 중심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학생과 같은 반 아이들은 나와 다른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나도 그런 것이 먼저 생각난다. 친구와 운동장에 주저앉아 돌멩이나 나뭇가지로 단단한 흙을 파내며 이상한 그림을 그리거나 소꿉놀이를 했던 것. 비 오는 날 콘크리트 바닥에서 본 거대한 지렁이. 별 것 아닌 친구의 행동에 엄청나게 섭섭했거나, 친구에게 준비물을 빌려 준 사실이 스스로 너무 대견했던 사실. 아이들이 모두 몰려나온 점심시간의 운동장 풍경. 운동회 날 최선을 다해 달리기를 했던 기억이나 선생님이 손등에 찍어주었던 도장 같은 것.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데 학생이 뭘 배울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특수학교에 가면 학생이 뭐라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 진다. “학창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가요?”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고쳐야 할 단점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장애를 극복할 필요 없이 우리가 누리는 삶과 똑같은 삶을, 그러니까 한 학생이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학교에 등교해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지루하거나 재미있는 수업을 듣고 시끌시끌한 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매일의 삶을 누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면 된다. 그때 학생의 일 년은 충분하게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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