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철도역 중 사람 이름으로 된 최초의 역이자 유일한 역인 김유정역이 있다. 천구백삼십구 년에 개업한 신남역은 이천사 년에 춘천이 고향인 소설가의 이름을 따 역 이름을 김유정으로 바꾸었다. 김유정역은 기차역에서 전철역으로 바뀌며 멋진 한옥 모양으로 탈바꿈했는데 폐역 된 작은 기차역도 새 역사 옆에 단정하고 소박하게 남아있다. 새 역사에 궁서체로 적힌 ‘김유정역’이라는 이름도 근사하지만, 이제는 쓰이지 않는 폐역에 남은 소설가의 이름도 그럴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남편과 나는 춘천에서 김유정역 옆에 있는 김유정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었는데 매진으로 타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근처에 갈 곳을 찾아보는데 일 킬로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책과 인쇄 박물관이란 곳이 보였다. 책과 인쇄 박물관. 소리 내어 말하기만 해도 신이 날 것 같은 곳이다. 나와 달리 책이나 인쇄라던가 활자에 전혀 취미가 없지만 남편은 그 어느 것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흔쾌히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그런 남편 덕에 예기치 못하게 레일바이크를 타지 못한 여행지에서의 하루도 그리 아쉽지 않을 수 있다.
책과 인쇄 박물관에서는 ‘유 퀴즈 온 더 실레마을’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입구에 놓인 작은 책자에는 여섯 개의 퀴즈가 적혀 있었는데 정답을 모두 맞히면 백만 원의 상금은 아니지만 손수건을 상품으로 준다고 했다. 나는 전시를 관람하며 체험학습을 온 초등학생이 된 기분으로 열심히 퀴즈를 풀었다. 퀴즈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전시관 곳곳에 ‘유 퀴즈!’라고 적힌 팻말이 있어 팻말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책자에 연필로 퀴즈의 정답을 열심히 적어 내려가는 나를 뒤로 하고 남편은 앞장서 보물찾기 하듯 열심히 팻말을 찾아다녔다. 박물관에는 우리 밖에 없는 듯했고 어디에선가 남편이 “유 퀴즈!”하고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한없이 기분이 귀여워졌다. ‘실레마을’이 정답인 퀴즈를 풀면서는 김유정이 쓴 ‘오월의 산골짜기’라는 제목의 수필을 읽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백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고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소설가의 이름을 딴 역이 있는 그가 사랑하는 고향 마을의 박물관에서, 소설가가 마을에 관해 써내려 간 수필을 읽는 것이 좋아 그 글귀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산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라는 표현에 꼭 떡시루 같은 실 레마을 안에 폭하고 비밀스레 안긴 기분이 들었다. 퀴즈를 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퀴즈를 풀지 않았다면 이곳이 그냥 김유정역 옆이 아니라 실레마을이라는 것도, 실레마을이 김유정이 사랑하던 그의 고향마을이라는 것도, 내가 실레마을에 다녀왔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퀴즈를 모두 풀고 나와 전시실에 있던 에디슨의 등사기가 그려진 푹신푹신한 자석을 하나 샀다. 여행지나 미술관, 박물관에서 냉장고에 붙일 자석을 사는 일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자석을 계산하며 직원에게 퀴즈를 다 풀었다고 얘기하고 정답지를 건네받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퀴즈의 정답을 맞혀 보았다. 내가 푼 문제의 정답이 혹여나 틀렸을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나라도 틀리면 어떡하지?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냥 다 맞았다고 해도 되려나? 검사는 안 하실 것 같은데….
실레마을에 오기 전 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끔 등교를 하다 학교에 오기가 싫어지면 할머니집으로 도망을 가는 학생이 있어 등교할 때마다 특수학급에 들러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고 있다. 스티커를 열 개 모으면 학생이 좋아하는 만들기를 할 수 있다. 그날도 학생은 등교하며 스티커를 붙이러 우리 반으로 왔는데 보니 손에 물감과 팔레트, 물통 같은 미술도구가 잔뜩 들려 있었다. “오늘 미술 시간에 재미있는 거 하나 보네!” 학생은 그렇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교실로 올라갔다.
일 교시.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간 학생이 특수학급에 와서 수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학생을 기다리는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안 내려가고 그냥 여기 있겠다고 떼를 쓴다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학생을 데리러 교실로 올라갔다. 나를 보자 학생은 인상을 쓰곤 책상 위에 엎드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앞으로 선생님 반에 안 올 거야? 오기 싫어?”라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 시간표를 지켜야 해요. 지금은 선생님 반에 갈 시간이야. 스스로 일어나서 나올 수 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함께 특수학급으로 가던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저는 미술을 바로 할 줄 알았는데, 미술을 안 해서, 그냥 교실에 있고 싶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혼을 내기도 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학생이 멋지고 대견해서 조금 서운했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신나게 학교에 왔는데 기대했던 미술 시간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고는 많이 속상했던 학생의 마음이 귀엽기도 했다. “선생님, 제가 오기 싫다고 했어도 선생님이 싫은 건 절대 아니에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 때가 많다. 마음속으로는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싫어 사랑하는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일은 별일 아닌 것이 되는 데도 말이다. 학생은 일 교시에 한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바로 그날 사 교시에 어겼고 오 교시에 미술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
스스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책을 싫어하는 남편이 열심히 유 퀴즈 팻말을 찾아다닌 덕분에 다행히 나는 모든 퀴즈의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상품으로 받은 손수건에 그려진 실레마을의 지도를 보며, 다음번에는 산에 묻힌 실레마을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어기는 약속이라도 “내가 틀렸어.”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녀야겠다고, 옴팍한 떡시루처럼 아늑한 마음으로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편이 좋아하는 닭갈비를 먹으러 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