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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l 10. 2024

선생님이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과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했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크리스마스 마카롱 만들기, 크리스마스 마켓 열기…. 한 날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만 들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오너먼트에 적어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요즘 아이들은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가장 받고 싶어 했고 한창 포켓몬 카드가 유행할 때라 포켓몬 카드를 받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반려 달팽이를 받고 싶어 했고, 한창 타이타닉에 빠져 날마다 창문이 엄청 많은 타이타닉호와 타이타닉호 위에서 손을 벌리고 있는 잭과 로즈를 그리던 학생은 타이타닉 레고를 받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나에게 되려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선물 받고 싶어요?” 산타클로스가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했던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난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갖고 싶은 물건은 많지만 성인이 된 나에게는 살 수 있는 물건과 살 수 없는 물건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건 크리스마스 소원일 뿐이니까, 무엇이든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을 받을까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학생이 또 물었다. “선생님 아파트 받고 싶어요?”


  어쩌다 선생님이라면 아파트를 가지고 싶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놀랍고 웃겼던 와중에 그 아이디어가 꽤나 신통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는 명백하게 내가 살 수 없는 물건이니까. 서울의 아파트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의식주 중 ‘주’에 관 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선생님은 아파트보다 마당이 큰 집을 갖고 싶어. 그 마당에서 커다란 강아지를 키우는 게 선생님 꿈이야.” 사실은 여러모로 아파트가 조금 더 좋을 것 같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나 원룸에서 자취를 했을 때 나에게 ‘아파트’를 구 하는 일은 멀게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집을 사는 일은 불가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철이 없던 나도 결혼을 하고 나니 내가 살 집을 마련하는 일쯤은 거뜬히 해내야만 했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도 좋지만 아파트라면 더 편리하겠지. 교통도 좋아야 한다. 직장과 가까워야 하고 지하철역과 가깝다면 더 좋겠지. 운동과 산책을 할 수 있는 녹지나 공원도 중요하다. 남편에게 맥주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는 코 앞에 편의점도 하나 있어야 한다. 적당한 크기의 마트도 가까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초등학교도 가까 이 있어야 할 텐데. 생각보다 조건과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는 일은 더 힘들었다. 이러니 학생의 아파트 발언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아파트가 갖고 싶냐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던 학생은 특이한 색감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 꼭 오래전 미국 애니메이션 느낌의 예쁜 색감이었는데 콕 집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학생에게 교실에 있는 십이 색 색연필은 늘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학생은 방과 후 수업으로 만화 그리기와 코딩 수업을 들었다. 만화 그리기는 그렇다 치고 코딩 수업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괜찮냐고 묻는 내게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데 하고 싶어요.”


  어느 날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금 상기된 목소리였다. 코딩 강사님께서 학생이 한글을 몰라서 수업 참여가 어렵다고, 코딩 수업이 인기가 많아 잘할 수 있어도 수업을 못 듣는 학생이 많다고 말하셨단다. 나는 수화기 너머의 그 말을 들으며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빨개졌다. 아파트를 갖고 싶냐고 물을 만큼 똘똘하고 적극적인 학생이기에 별 일 없이 혼자서 방과 후 수업을 잘 듣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스스로가 미웠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학부모님께서 그런 말을 들으실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 그렇게 말을 하신 강사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을 다른 여러 학생들과 함께 지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하셨으면 안 됐다. 학생도 코딩 수업이 듣고 싶었고 수업 참여는 선착순이니까. 강사님과 학부모님의 마음을 잘 풀어드리고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학생은 더 이상 코딩 수업을 듣지 않았다.


  주말에 즉흥적으로 경주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남편과 내가 연애 시절부터 좋아하던 경주의 맥줏집. 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지만 경주의 릉은 여전히 멋졌고 릉이 보이는 맥주집의 맥주는 맛있었다. 다음 날에는 순두부 맛집에 갔다가 십 년 만에 불국사에도 갔다. 석가탑과 다보탑이 새삼스레 멋져 탄성이 나왔고 탑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경주를 여행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릉에서 자전거를 타거 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매일. 불국사 옆의 아파트에서 불국사에 오르는 관광객을 내려다보는 삶. 대릉원 옆 해가 잘 드는 카페 안에서 릉을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향 좋은 커피를 내려주며 시작하는 하루. 학생이 나에게 아파트를 받고 싶냐고 물은 게 나를 꿰뚫어 보아서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어른들이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겠지. 내가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했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학생의 질문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본다. 릉이 보이는 사랑하는 맥주집에서 베이글 샌드위치와 맛있는 맥주를 먹고 작고 낮은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을 떠올리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서울의 아파트를 준다면 거부하지 못할 것 같다. 아직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더 고민해야겠지만, 학생이 여전히 선생님에게 “선생님, 아파트 갖고 싶죠?” 라며 일침을 날리고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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