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단독주택은 구조적인 특성상 외부의 침입 등에 대한 방호조치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공동주택과는 달리 자동소화장치 및 화재경보시설이 법으로 강제되지 않으므로 화재 방호에도 취약합니다. 게다가 전원주택의 경우에는 대부분 시 외곽에 위치하므로, 만약 어떤 사고가 발생하여 경찰이나 소방기관이 출동한다고 해도 조치가 늦어져 큰 손실을 보기 쉽습니다. 따라서 건축주 스스로 나름을 예방조치를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화재는 잠시의 부주의나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평소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 화재가 발생하였을 경우 즉시 경보가 울릴 수 있는 화재경보설비를 설치하고, 초기진화를 할 수 있는 소화기 또한 넉넉히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화재 초기의 소화기 한 대는 소방차량 한 대의 소화 효과가 있습니다. 넉넉히 마련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방범 문제는 CC-TV나 침입경보시스템 설치 등의 자구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CC-TV는 임대 또는 구매의 형태로 비교적 저렴하게 설치할 수 있으며, 카메라가 외부에 노출되어 설치될 뿐만 아니라 관련 법령에 따라 경고표지판을 내어 걸도록 하고 있으므로 시각적인 효과가 크며, 심리적인 안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침입경보 시스템은 보안업체에서 실시간으로 방범 상황을 감시하며, 긴급출동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CC-TV에 비해서는 다소 비용부담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반려견을 키우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쁜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사는 농부가 오래 살아내지 못하듯, 화재의 예방이나 방범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안일함 뒤에는 반드시 불행한 일이 오고야 맙니다. 항상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할 문제입니다.
∮ 반려견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쉬움과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필자가 키우던 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독자 여러분께도 도움이 되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집마다 개가 있었지요. 물론 그때의 개들은 지금처럼 방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이거나 쇠줄로 매어두고 키우는 그런 개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마당에서 키웠습니다. 그러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컸습니다. 툇마루 아래 스스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짝을 찾아 새끼를 낳았지요. 그렇게 크면 어느 날, 어른들은 좋은 먹이를 먹인 다음 개장수를 불러 팔아버렸습니다. 끌려가는 검둥이를 보면서 오래도록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필자가 자란 마을은 워낙 외진 곳이라 가까이 사는 또래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 빈 시간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검둥이가 채워주었지요. 그런 기억들 탓인지 필자는 방에서 키우는 애완견보다는 마당에 놓아두고 키우는 큰 개가 좋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큰 개를 키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어쩌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고 해도 개 짖는 소리로 인해 이웃들에게 원성을 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사를 하면서 개를 한 마리 데려다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행히 필자의 집은 이웃집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어졌습니다. 개를 키우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아내의 지인으로부터 집들이 선물로 강아지를 한 마리 받았습니다. 잘생긴 풍산개였습니다. 큰아이 품에 먼저 안겼습니다. 큰아이가 이름을 ‘풍산’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풍산이는 그렇게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개를 쇠줄로 묶어두고 키우는 것이 ‘사람으로는 못 할 짓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묶여있는 개는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어느 때까지나 그렇게 주인의 발소리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주인이 그늘로 옮겨주지 않으면 개는 또 그렇게 불볕을 견뎌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과는 다른 짐승이라지만, 그렇게 묶여 평생을 지내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듯싶습니다. 개를 키우는 이유가 단지 집의 보안을 위한 것이라면, 즉, 집 지키는 개가 필요한 것이라면 차라리 보안장비를 보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지요. 개는 살아있는 짐승이지 붙박이 보안장비나 부속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개를 마당에 놓아 키우기로 했습니다. 옛날 동네 개들처럼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당 안에서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서둘러 목재를 주문해서 개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보강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개를 마당에 놓아 키우면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가족 구성원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구든 외출을 할 때면 대문까지 따라가 배웅해주고, 돌아올 때면 제일 먼저 나가 반겨줍니다. 또 마당으로 나가면 언제든 함께 놀 수 있습니다. 반면, 묶여있는 개는 먹이를 챙겨주는 주인이나 특별히 관심을 두는 가족 외에는 손길이 자주 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개는 자신에게 손길을 주는 일부 사람에게만 특별한 집착을 보입니다. 행동이 과격해지고, 스트레스로 성질이 사나워져서 쉽게 다가서기도 어렵습니다. 묶여있는 개는 사나워지기 마련입니다.
개를 자유로이 놓아 키우면, 집안에 쥐가 없어지고, 방범에도 도움이 되며, 개집 주변이 상대적으로 덜 지저분해진다는 것도 이점입니다. 물론 집안을 돌아다니며 꽃밭을 망쳐 놓거나, 땅을 파 놓거나, 신발을 물어뜯어 놓는 등 저지레를 치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는 조금만 신경 써 교육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편, 개를 놓아 키우면서 한 가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놓인 개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것이 중대형견의 경우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개는 절대 키워선 안 됩니다. 만약 개를 키우다가 그런 조짐을 보이면 즉시 조치해야 합니다. 놓아두고 기를 수 있는 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 낯선 사람이더라도 주인과 함께 있을 때는 짖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고 복종의 표시입니다. 둘째, 낯선 사람을 향해 짖을 때라도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빨을 드러내는 으르렁거림은 야성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특히, 둘째 조건은 중요합니다. 전문 사육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개는 언젠가는 사고를 낸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차라리 그 옛날 검둥이 같은 잡견을 키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일명 ‘똥개’라 불리는 잡견은 그리 영리하지 않아서 아무나 보고 짖고, 또 먹이만 주면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지만, 최소한 사람을 물거나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진돗개니, 풍산개니 하는 이름난 견종들이 주변에 많이 있지만, 대부분 순수한 혈통은 찾기 어렵고, 통제되지 않는, 어쭙잖은 교잡종들이 대부분입니다. 머리는 나쁘고, 야성은 살아 있습니다. 야성이 통제되지 않는 개, 신뢰와 복종심이 떨어지는 개는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아쉬움과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으로 정을 나누었던 풍산이가 몇 해 전 죽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무엇보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입니다. 주인이 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 옛날 어른들이 키우다가 아무렇게나 팔아 버리던 그 검둥이처럼 그렇게 두면 잘 클 줄 알았습니다. 물론 광견병 주사도 놓아주고 심장사상충 예방약도 먹였습니다. 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려 올라갔던 꼬리가 조금 내려가고, 퇴근하는 필자를 반기는 태도가 좀 느릿해지긴 했어도, 그것은 가끔 풍산이가 말썽을 부릴 때 필자가 혼내 준 것에 대한 서운한 반응 정도로 여겼습니다. 눈을 쓱 내리깔고 필자 옆을 비켜 지나치는 모습을 보고는 그놈 참! 하며 혼자 웃기도 했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는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먹이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료 외에 이런저런 음식물들을 먹였었습니다. 놓아 기르기 때문에 주인이 주는 것 외에도 다른 먹이를 먹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항생제나 예방약들을 미리미리 챙겨 먹였어야 했습니다. 콧등이나 꼬리 모양, 움직이는 모습 등을 잘 살펴보고 조치했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말 못 하는 짐승에게 너무 무심했습니다. 개는 아프다는 말을 못 하지 않는지요. 개에게 생선 뼈나 닭 뼈 등을 주면 내장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초콜릿, 커피 등 카페인 음료나 생돼지고기, 우유, 알코올, 양파, 마늘, 포도, 건포도 등도 소화기관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마당 한쪽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큰아이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와서는 무덤 앞에 앉아 빨간 장미꽃을 놓아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비로서 미안하고, 풍산이의 주인으로 더욱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