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앞에서 ‘토목설계 구상,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리고 ‘건축설계 구상,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구상한 것들을 구체화하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이것이 곧 기초설계도입니다. 또 설계도에 도시할 수 없는 설계상의 지시를 문장이나 수치 등으로 나타내는 작업설명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품질이나 성능, 시공법 등이 표시됩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건축주가 아무리 구상을 잘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설계사나 시공자와의 의사소통에 실패하면, 건축주는 자신이 의도한 것과 같은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토목부문이나 건축부문에 대한 나름의 기초설계도 및 작업설명서를 작성해 두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설계도나 작업설명서는 건축주가 자신이 구상한 것을 설계자 및 시공자에게 전달하는 정도면 충분하므로 격식을 갖춘 설계도나 작업설명서일 필요는 없습니다.
∮기초설계도, 집주인의 구상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입니다.
기초설계도에서 먼저 작성되어야 하는 것은 토목부문에 대한 사항입니다. 여기에는 지반의 조성이나 건축물의 방향 및 배치 형태, 주차장의 크기 및 위치, 축대의 설치, 진입로의 위치 등이 표시되어야 하는데, 대략적인 부지의 형태를 표시하고 자신이 구상한 사항들을 표시하면 됩니다. 특별히 부가적으로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작업설명서에 표시해 두면 됩니다.
다음은 건축 부문에 대한 사항입니다. 여기에는 건축물의 평면도 및 입면도, 측면도, 작업설명서 등이 해당합니다. 이 부분 또한 자신의 구상을 설계자에게 설명하는 것이므로 건축물의 대략적인 형태를 표시하는 정도면 됩니다. 입면도나 측면도는 지붕의 형태나 현관 위치, 창문의 높이 등 전축물의 전체적인 외형에 관한 사항이므로 각 거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즉, 평면도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크게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건축주가 결정할 것은 지붕의 형태 정도인 듯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면도의 작성입니다. 각 거실의 배치나 규모, 실내 동선의 구성, 창문의 설치 등이 모두 여기에 표시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사항들을 고려하여 대략적인 평면 사항을 표시하고, 부가적인 사항들은 작업설명서에 표시해 두면 좋을 것입니다.
작업설명서에는 실제 시공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이 많으므로 될수록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해 두면 좋습니다. 필자가 작성했던 작업설명서 별첨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공업자의 선정, 성실히 의견을 제시하는 업체가 답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우선되어야 할 점은 치밀한 구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설계업체를 찾기 전에 전문건축업자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주가 구상한 기초설계사항이 실제의 현장에서 구현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인지 의견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가능한 여러 시공업자를 만나보고 의견을 들어보길 권합니다. 여러 업체를 거치다 보면, 그중 성심껏 의견을 제시하며 도와주는 건축업자가 몇몇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서 견적을 받아본 후, 그중 견적서 작성이 성실성하고, 과거 시공실적이나 납세실적 등이 우수한, 가장 믿을만한 업체와 계약을 추진하면 됩니다. 특히, 견적서의 성실성 여부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견적서에는 공정별로 투입되는 자재나 인건비, 장비사용료 등이 세부적으로 표시되어야 합니다. 즉, 자재는 종별・규격별로 품질이 명확히 표시되어야 함은 물론, 투입량이 과도하게 산정되지 않아야 합니다. 건축물의 규모나 구조재의 종류가 정해지면 투입되는 자재의 소요량이나 가격 등은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건비는 전문인력이나 준전문인력, 잡인부 등으로 구분하여 공정에 따라 필요한 사역 일수가 산정되어야 합니다. 또 장비의 사용은 임차 일수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산출되어야 합니다. 즉, 포클레인 임차사용을 예로 든다면, 터파기, 되메우기, 상하수도 및 정화조 공사, 주차장 및 마당 조경공사, 담장공사 등에서 해당 장비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동이 쉽지 않은 장비의 특성상 단 1시간을 사용하더라도 1일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건축비용의 절감을 위해서는 되도록 이런 공정들을 모아서 시공해야 합니다. 이런 사항이 잘 반영된 견적이 성실한 견적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견적서 검토를 거쳐 시공업체를 선정했다면, 이제 본격적인 집짓기 준비를 할 차례입니다.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설계도면의 작성입니다. 설계도면을 건축주가 직접 구상한 경우는 토목설계이든, 건축설계이든, 설계도면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름난 설계업자를 찾기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설계도서를 작성해줄 수 있는 설계업체를 선정해 계약하는 것이 건축비 절감 면에서 효율적입니다. 건축허가 신청 등 행정적인 절차를 수월하게 처리해 줄 수 있는 업체라면 족합니다. 믿을만한 시공업체와 계약을 하였다면, 시공업체가 추천하는 설계업체를 선정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일단 시공업체가 정해지면 집짓기에 따르는 제반 사항을 시공업체가 총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원하는 특정 자재나 재료를 판매하는 업체를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구매 및 대금 지급 등의 행위는 시공업체가 총괄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건축주가 직접 구매하게 되면 공사대금 정산 시 번거로움이 발생함은 물론, 납품 지연이나 하자품 납품에 따른 공정의 지연과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책임소재 등의 문제는 시공업체와의 불화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도급계약을 맺을 것인가, 직영 시공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십시오.
앞의 선택과정을 무사히 넘겼다면, 건축주는 이제 직영 시공을 할 것인가, 아니면 시공업자와 도급계약을 맺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는 건축허가신청서 제출 시 필수사항이므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모든 건축물의 건축 및 대수선에 대한 공사는 건설업 면허를 가진 건축업자가 시공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건축주는 전문건축업자와 도급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설사업기본법의 규정에 따르면, 주거용 건축물의 경우 661제곱미터 이하이면 건축주가 직접 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가장 큰 장점은 건축비용의 절감입니다. 즉, 직영 시공의 경우 건축주는 부가가치세 등의 납부 의무가 없기에 최소한 건축비용의 1/10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계산상의 문제이지, 실제로는 현장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직영 시공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위와 같은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몇 가지 단점들이 있습니다. 즉, 건축물이 완공될 때까지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건축주의 책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축주는 태풍 등 자연재해나 도난 등으로 인한 물적인 손실에 대비한 관리대책을 세워야 하고, 안전사고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적 피해에 대비한 사전조치와, 그에 수반되는 행정적인 처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문제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도급계약 체결에 따르는 비용 상승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도의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건축주가 건축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직영 시공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도 합니다. 즉, 순수한 의미에서의 직영 시공이라면 건축주가 건축에 따르는 제반 행정적 처리는 물론, 각각의 공정별 필요 장비 및 인력의 수급, 자재의 반입 등 모든 업무를 직접 처리한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직영 시공을 하는 건축주는 건축에 대해 경험이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을 대행자로 지정해 건축업무 전반에 대한 사항을 맡기게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행정적인 처리의 편의를 위해 인감도장을 맡기기도 하고, 일정 한도 내에서는 건축주와 협의 없이 현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은 일면 현장관리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주가 잡다한 행정적 처리나 현장관리의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큰 이점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먼저 대행자를 둠으로써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의 문제가 있습니다. 최소한 3~5개월이 소요되는 공사 기간에 대행자에게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의 특성상 시의적절한 성의 표시도 해야 무난한 공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사람을 잘 못 쓰는 경우 경제적인 손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집이 부실하게 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건축주가 평소 친분이 깊은 사람을 대행자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금기에 가까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이라는 개념의 기초 위에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직이나 계약의 공적 관계에서는 엄연히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갑은 을에게 요구하고, 을은 갑의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만약 건축주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대행자로 한다면, 건축주와 대행자와의 관계는 평등한 인간관계에서 갑과 을의 관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소 가졌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 개입되어 있기에 그것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칫 감정적인 문제가 생기게 되면 제대로 된 집이 지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가까운 사람마저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잘 모르는 관계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집을 한 번 짓고 나면 3년은 늙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한다는 것인데, 맞는 말씀입니다. 많이 고민해야 하고, 때로는 마음을 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 견주어지는 것은, 잡다한 행정적 처리나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구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행자가 건축주의 뜻을 거스르거나, 부정직한 자재를 반입해 사용하거나, 마을주민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공정을 방해하거나, 현장에 투입된 기술자가 성실하게 집을 짓지 않거나, 하는 등의 문제입니다. 좋은 집을 짓는 성공의 비결은 좋은 사람, 선의의 시공업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계약서, 그것이 곧 모든 것입니다.
시공업체가 선정되었다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절차를 밟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일반적으로 계약서는 건축공사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사용하면 계약서 작성이 간편하므로 편리한 면이 있으나, 자칫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건축주가 구상하고 있는 사항들이 빠짐없이 반영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에 부가하여 작업설명서를 작성해서 첨부해 두어야 합니다. 작업설명서의 작성에 특별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건축주의 의도가 건축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정도이면 충분합니다. 계약서 작성 시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는, 대금지불의 방식에 관한 사항입니다. 이는 건축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건축물의 공정을 넘어서는 대금을 지급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시공업자가 자재의 선구입 등을 이유로 선금 지급을 요구하는 경우라면,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지 반드시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이를 소홀히 해 큰 손실을 보곤 합니다. 대금은 모두 지급되었는데, 공정은 절반도 못 마친 채 시공업자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공정을 포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의적인 부도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건축주가 고스란히 손해를 입고 맙니다. 민형사상의 사법절차를 거친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설혹 재판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변호사 선임비용 등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대금을 되돌려 받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계약서에는 대금지불방식을 상세하게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주택건축에서 대금은 일반적으로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으로 나누어 지급되는데, 계약금은 총계약금의 10%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도금의 지급입니다. 계약총액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도금의 지급을 자칫 소홀히 관리하면 큰 손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도금의 지급은 공정에 따라 4~5차례 나누어 지급해야 합니다. 즉, 기초공사 완료 후 25%, 지붕공사 완료 후 20%, 기둥 및 벽체 공사 완료 후 20%, 건축물 인도 시 잔액 25% 및 추가비용 정산 등의 용례가 그것입니다. 이런 사항이 계약서에 명기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잔금의 지급은 모든 공정이 완료된 후 정산 절차를 거쳐 지급되어야 합니다. 즉, 허가부서로부터 건축물 완공필증을 받거나, 또는 입주 후에 지붕의 누수 여부, 벽체의 마감 상태, 냉난방 설비나 전기, 가스 등 각종 부대설비의 운전 상태를 살펴본 후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시공과정에서 추가 투입되었거나 제외된 비용들과 상계하여 잔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자보증에 관한 것으로 절대 빠트리지 말아야 할 사항입니다. 계약 당시에는 시공업자가 친절하고 믿음직한 말들로 여러 약속을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입주 후에 발생하는 하자에 대해 보장을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건축주 직영 시공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자보증에 대한 사항을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건축물 하자보증기간은 2년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행정처리 절차에 관한 사항입니다. 건축주가 시공업체와 도급계약을 맺는다면 별다른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직영 시공을 하는 경우라면 이런저런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즉, 개발행위 허가신청, 부담금 납부, 건축허가신청, 도로점용 허가신청,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가입, 전기사용신청 및 상수도 인입 신청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행정처리 절차에 대해 밝지 않은 건축주라면 허가관청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처리를 하는 것이 상당히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축주라면 경험 삼아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계약사항에 포함해서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행정처리를 건축업자에게 일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산재보험의 가입 등 일부는 건축주가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다소의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지만, 건축주가 투입하는 시간이나 노력 등을 고려한다면 그리 큰 비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