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8차에 걸쳐 감행한 십자군원정은 당시 유럽의 거의 전역을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집 짓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슨 십자군원정이냐고 하겠지만, 필자가 이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말을 꺼낸 이유는 당시 십자군원정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온 기사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원정에 참여했던 수많은 기사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살아 돌아온 기사들도 원정길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 배고픔을 견디며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행군했으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용감한 전문전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그리 강인하거나 용감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의 집은 그런 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원정을 떠나기 전, 그들이 소유한 장원의 경영은 모두 그 자신들의 몫이었습니다. 장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금징수나 농노의 관리, 집안의 대소사를 아우르는 모든 결정이 그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을 비운 사이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아내가 그들의 모든 것을 대신했습니다. 그들이 비워둔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내가 구축한 확고한 영역 안에 그들 자신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토록 강인하고 용감했던 중세의 기사는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공처가 신세가 된 것입니다. 눈치를 봐야 하는 기사는 아내가 야속했을 테지만, 그동안 그 아내는 남편이 없는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겠는지요. 기사는 아내의 노고에 먼저 감사해야겠지만, 죽음을 넘어온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이 당시의 유럽정치에 미친 영향, 즉 교황권의 추락, 왕권 강화, 기사 계급의 몰락 등과 같은 세계사적 평가와는 좀 거리가 있는 뒷이야기를 필자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무튼, 천여 년 전에 살았던 중세 십자군 기사들의 뒷이야기를 새삼스레 글 끄트머리에 꺼내는 것은, 당시의 기사들의 처지나 오늘날 남성들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앞서 별채의 구성 부분에서 중년을 넘어서는 남성들에게서 일어나는 자기영역 확보에 대한 욕구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마치 전쟁터와 같은 직장생활, 사회관계망 속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다가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되는 중년의 남성, 또는 정년퇴직을 한 분들이 자신의 집에서 느끼게 되는 야릇한 압박감이 중세의 십자군 기사가 오랜 기간 전쟁터를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와 느끼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원정에서 돌아온 중세의 십자군 기사들이나 직장생활에서 돌아오게 되는 현대의 중년남성들이나 아내의 확고한 영역에 막혀 신경증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사는 아파트의 경우는 중년의 남성에게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독주택이라면 남성들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 많으므로 중세 십자군 기사처럼 완전히 빼앗긴 기분이야 들지 않겠지만, 아파트의 경우라면 전혀 중년남성이 차지할 어떤 공간이나 역할영역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남성의 힘이 필요한 구조가 아닙니다. 아내가 꾸며놓은 그곳은 온전히 아내의 영역입니다. 그곳이 남편에게 침해받을 때 아내는 신경증을 앓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조차도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모릅니다.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의 남성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시간이 흘러 좀 더 영역이 확고해지면, 아내는 절대로 그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성들에게는 아파트만큼 편리한 주거시설도 없습니다. 이때쯤이면 각종 모임을 통한 이웃의 관계 또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여러 편의에 완벽하게 체화되어있을 것입니다. 중세 십자군 기사의 아내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영역을 찾아 나서는 남편 또한 언젠가는, 어떤 형태든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것이 외부에로의 회피든, 소심한 영역의 포기든 말입니다. 그에게도 중세 십자군 기사처럼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이 아내의 그것보다 훨씬 더 치열했다고 여기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각자의 영역을 만들고는 서로 닭 보듯, 또는 약간의 불만들을 표시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끝내 그렇게 서로의 공간제어에 실패하면 말입니다.
이런 공간제어의 실패는 종국적으로는 모두 불행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아프거나 불편한데, 그 배우자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아내나 남편이나 모두 평생의 반려자인 서로에게 마음을 쏟아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유무형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또 나누는 새로운 공간제어의 설계가 필요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살기 좋은 집짓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배우자에게 집중할 기회를 주고, 많은 것을 얻게 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할 공간이 될 것입니다.
필자는 아파트에서 꼭 12년을 살았습니다. 계단형 15층짜리 아파트이니, 같은 통로에 30여 세대가 서로 이웃하며 산 셈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 아래층에 사는 학생, 할머니, 아저씨 등을 만납니다. 서로 낯은 익혔으니 목례를 하거나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단 몇 분이 얼마나 서먹한지 모릅니다. 12년을 이웃으로 살았지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닙니다. 그 이웃들 또한 필자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서로 트고 사는 이웃이 못 되는 것은 그 이웃들이 나쁜 이웃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들 또한 필자와 똑같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선량한 이웃일 것입니다.
아파트라는 문명의 이기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탁월한 주거시설이지만, 그곳엔 언제나 모자람이 있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이웃이 없습니다. 그리고 딱히 무언가 할 일도 없습니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층간소음 문제 등 아파트 생활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웃 간의 문제는 사실, 층간소음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처럼 ‘모자람과 답답함’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8년 전 동짓날, 차가운 칼바람을 무릅쓰고 새집에 입주했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이삿짐을 싼 것은 크리스마스를 새집에서 보내자는 아내와 큰아이의 추임새도 한몫했지만, 하루도 더 견디고 싶지 않은 필자의 갑갑함이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여덟 번째 겨울을 막 넘겼습니다. 반상회, 마을 체육대회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이웃들을 대합니다. 퇴근길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걷노라면 마을 사람들이 먼발치 논밭에서라도 큰 소리로 불러 안부를 묻곤 합니다. 지난 설 명절에는 합동 도배례에 참석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마을청년회에서 어르신들을 모셔다 대접하며 합동으로 세배를 드리는 자리지요. 요즘 세태에 보기 힘든 광경이라 이사를 온 첫해 설 명절 행사에서는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때 느꼈던 그 감동이 가시지 않습니다. 어른다운 위엄과 자애로움, 아랫사람다운 예의와 공경이 있었습니다. 환한 얼굴로 반기며 복을 빌어주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삿짐을 꾸리던 날, 안방에 놓인 침대에 누워 꼼짝을 않던 딸아이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렵사리 달래서 침대를 뺀 다음 거실 가장자리에 이불을 깔아 주었습니다. 이사한 이후로도 며칠 동안 필자와 딸아이는 그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조금씩 새집 마당에 발을 들이고, 새로 놓인 침대에 적응하고, 그리고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마당에 나가 그네를 타고, 수돗가에서 물장난하며, 널어둔 빨래를 걷어 오고, 목공창고에 있는 필자를 찾아와 지켜보고, 함께 차를 타고 나가 인근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고, 때로는 혼자 별채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나오기도 합니다.
딸아이의 이런 행동들에는 나름의 정해진 규칙이 있습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할 때 시간과 순서, 예비동작, 이동 동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긋날 때 극심한 반응을 보입니다. 또, 낯선 사람과 환경에 저항합니다. 따라서 일가친척의 집을 방문한다거나, 외식을 위해 식당을 찾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한때는 울부짖거나, 심지어는 자해를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쩔쩔매고, 그 모습이 안쓰러워 함께 울고,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절망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 모든 행동이 모르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이며, 규칙이 어긋남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이것을 깨달으니 우리 가족의 삶이 조금은 더 평온해졌습니다.
큰아이도 어느새 대학 졸업반이 되었군요. 이제 곧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나름의 인생길을 닦으며 살아가겠지요. 정말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린 시절부터 동생 문제로 고민이 많았을 텐데, 내색 한번 없이 잘 성장해준 큰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이 집에서 살았던 날들이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오늘로 퇴직한 지 1년 남짓 되어 갑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니 아직 몇 년 더 착실히 근무할 수 있었지만, 조금 이른 퇴직을 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없는 시간을 불안해하는 딸아이, 그 모습을 보는 아내의 애타는 마음, 출근해서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무거운 생각들, 이것을 모두 지우고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선택을 했지만, 그중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여깁니다. 낡은 것을 고쳐 쓰면 옛 맛이 남아있어 좋고, 새로이 교체하면 또 그 나름대로 새로운 맛이 있어 좋은 것이지요. 사람 사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간 살아온 날들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이쯤에서는 좀 더 의미 있다고 여기는 길을 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살기 좋은 집’이니, ‘주인을 닮은 집’이니, ‘부부간의 공간제어’니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머릿속에는 딸아이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려는 의도가 우선해서 담겨 있었습니다. 각각의 거실과 마당의 동선이 그에 맞춰 꾸려졌고, 담장의 높이나 창호의 방향 또한 그렇습니다. ‘살기 좋은 집’이 ‘주인을 닮은 집’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집이란 그 가족 구성원의 필요에 맞게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있지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한 구절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비롯된 용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행복의 조건은 금전, 건강, 우애 등 다양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그런 조건 아래 가족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여기고, 불행한 가정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든 수많은 이유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계 최고의 정치가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졌으나 마음이 공허했던 안나 카레니나의 위험한 사랑의 선택과 비극적 결말, 그녀는 후자의 경우이겠군요.
그간 딸아이의 학교생활이나 상급학교 취학 등의 문제, 장애 자녀를 키우는 가족이 인척들과의 사이에서 종종 겪곤 하는 이런저런 갈등, 같은 이유로 직장에서 겪어야 하는 문제 등,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많이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가족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딸아이로 인해 좀 더 철이 들어 살 수 있었고,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남겨진 날들은 좀 더 평온하고, 좀 더 의미 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입춘을 맞는 이른 봄 아침, 창으로 스미는 햇살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