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지금까지 ‘살기 좋은 집 짓기’를 위한 이런저런 것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그것은 보다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아무리 집을 잘 지었다고 해도 생활방식이 그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나름의 진솔한 삶의 방식이 필요할 테지요. 뚝배기보다는 장맛이 좋아야 하는 법 아닐까요.
∮ 쓰레기 처리, 그것은 자연의 순환이어야 합니다.
전원생활에서 쓰레기 배출은 상당히 불편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배출장소에 내다 놓으면 되지만,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수거 차량이 집 앞까지 오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따라서 폐지나 폐비닐, 공병 등은 재활용으로 분리해 두었다가 마을 공동수집소에 배출하고, 소각이 가능한 쓰레기는 소각하며, 음식물쓰레기는 거름으로 활용합니다. 주방과 동선이 닿는 마당 어느 부분에 두엄더미를 마련해 두면 음식물쓰레기 등의 처리가 수월할 뿐만 아니라, 텃밭 거름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두엄더미는 난로나 소각로에서 나오는 재, 텃밭에서 나오는 부산물, 마당의 잡초 등의 처리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유기물이 분해되어 악취가 나거나 해가 되는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라고 하고, 유용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라 합니다. 우유가 산소호흡(유기호흡)을 하는 균류와 결합해 분해 과정을 거치면 고약한 냄새가 나 못 먹게 되므로 부패라고 하지만, 반대로 무산소호흡(무기호흡)을 하는 유산균과 결합해 분해 과정을 거치면 향긋한 요구르트가 만들어져 유익한 먹거리가 되므로 발효라고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유산균이나 효모, 누륙균, 초산균, 젖산균 등은 모두 무기호흡을 하는 발효균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반의 생각으로 발효는 유익하고 부패는 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되지만, 이것은 자연의 순환과정일 뿐 유·무해를 가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미생물의 작용이 없어 유기물이 부패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단 며칠조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버린 음식물쓰레기나 기타 부산물들, 분뇨 등이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되는 부패과정이 있기에 우리의 지구환경은 유지되는 것입니다.
와타나베 이타루는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라고 하면서 ‘마르크스 자본론’과 ‘천연균’에 비유해 나름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이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에서 벗어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용가치를 위장하여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귀속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는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 또한 이처럼 이윤과 이자를 통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이 있어서 영원히 부패하지 않으며, 이러한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그의 주장이 다소 억지스럽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한 가지 마음에 닿는 것은 있습니다. 발효와 부패를 통한 자연의 순환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살기 좋은 집’ 또한 이러한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끔찍스러운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쉽게 쓰레기를 내다 놓을 수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독주택에서 살아보면, 단 일주일만 지나도 음식물쓰레기는 물론이고, 휴짓조각, 폐비닐, 플라스틱, 캔, 공병, 고철, 종이박스, 스티로폼 박스, 각종 포장재, 헌옷 등 엄청난 쓰레기들이 쌓입니다. ‘살기 좋은 집’은 이런 생활 쓰레기들을 잘 처리할 수 있어야 유지됩니다.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분리수거를 하며,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는 태우거나 부패시켜 자연의 순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음식물쓰레기나 잡초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분명 부패지만, 그 결과는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것을 줍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온갖 예쁜 꽃들과 과일, 채소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자연의 순환과정에 맡겨두면 모두가 유익한 것으로 변합니다. 두엄더미는 자연 순환의 상징입니다.
쓰레기 소각처리시설은 드럼통 등을 이용해 간이소각처리시설을 만들어 사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상부가 개방된 구조이므로 화재위험이 있으니 지양하는 것이 좋겠고, 전용 소각로를 구매해 사용하거나 가마솥을 설치해 음식물 조리용을 겸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용 소각로는 사용이 편리하며,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소각로가 수명을 다했을 때 폐기처리에 따른 별도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마솥을 설치하면 쓰레기 소각은 물론 일반주방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음식물을 조리하는 데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쓰레기를 태울 때는 반드시 솥이 타지 않도록 물을 붓고, 작업이 끝나면 솥에 녹이 슬지 않도록 물기를 제거해야 하며, 평소에도 수시로 기름을 칠하는 등 관리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을 씌워야 하는 것도 부담일 수 있습니다. 장단점을 잘 고려해 여건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 욕심을 크게 내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서 얻게 되는 큰 즐거움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푸성귀나 과일을 직접 가꿔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었던 푸성귀나 과일들, 잔류농약이 마음에 걸려 몇 번씩이나 다시 씻기도 해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 구석에는 찜찜함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다 TV 뉴스를 통해 보이는 농약 살포 장면을 보면, 농장 전체를 약으로 덮어 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떠도는 이야기를 들으니, 각종 병해충이 농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농약 살포 횟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하고, 여기에 더해 일부 농가에서는 규정된 용량을 초과하거나 기간을 단축해 농약을 살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찜찜한 마음을 걷고 자신이 직접 푸성귀나 과일들을 가꿔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얻기 힘든 큰 기쁨입니다. 텃밭에서 거름으로 재배한 먹거리와 대규모 농장에서 아낌없이 뿌려진 비료로 속성 재배한 먹거리는 그 맛이나 건강성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또,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들을 껍질째 먹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하지만 직접 무언가를 가꿔 먹는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비료나 농약의 도움이 없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친환경농법이 많이 발전하고 널리 퍼져서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직도 친환경농법은 상당한 노력과 전문가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농약이나 비료의 도움 없이 작물을 재배하려면 수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작은 텃밭 정도를 가꾼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수고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칫 여기에 너무 마음을 두게 되면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일을 위해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뭇사람들은 자신의 나무에 열린 과실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길 바랍니다. 그를 위해 성급한 어느 이는 독한 제초제와 온갖 농약을 마구 뿌려댈 것이고, 또 어느 이는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내겠다며 거름을 만들고, 풀을 뽑아내며, 방충망을 씌우고, 벌레를 잡아내며, 신식장비를 설치해 새들을 쫓아내는 등 온갖 것으로 부지런함을 뽐낼 것입니다. 제 입에 넣을 먹거리에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농약을 뿌려대는 성급함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마는, 자연농법이라며 종일 텃밭에 매달려 있는 부지런함 또한 그리 나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생업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욕심을 너무 부리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비록 사람이 묘목을 심어 키우고는 있지만, 때로는 벌레도 먹고, 배고픈 새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그렇게 벌레 먹어 떨어진 과실은 또 나무에 거름이 됩니다. 새나 벌레들에게 조금은 내놓아도 좋을 여유를 가지시길 권합니다. 조금 덜 부지런하고, 조금 덜 욕심을 냄으로써 좀 더 많이 여유로울 수 있는 그런 삶이 더 풍요롭지 않겠는지요.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은 경향이 있다’라고 하면서 이를 ‘사치품의 함정’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사치에 길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다음에는 의존하고,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십 년간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등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해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고 하면서, 하지만 지금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결국 인간은 그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필자가 말씀드리는, 독한 제초제와 온갖 농약을 마구 뿌려대는 성급함이나 자연농법이라는 미명에 현혹된 사람의 지나친 부지런함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근래에는 이런저런 좋은 친환경 비료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유기농 토양 만든다고 그리 애쓰지 않아도 텃밭에서 좋은 채소를 길러낼 수 있으니 조금씩 사서 써도 좋겠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고추나 가지, 쌈채류 등 텃밭 작물들은 영양 관리만 잘 되면 별 탈 없이 양질의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수 관리입니다. 대체로 정원에 사과나 포도, 복숭아 등 이런저런 유실수를 심어 키우게 되는데, 유실수들은 텃밭 작물들과는 달리 겨울을 나게 되므로 겨우내 나무에 잠복해 있던 병충해를 처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과실은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무농약 친환경 재배를 한다고 해도 꽃눈 트기 전 살충·살균처리만큼은 꼭 해야 합니다. 즉, 기계유제, 석회유황합제 또는 석회보르도액과 같은 재료를 이용한 사전 방제작업 말입니다.
2006년 무렵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일본의 농부가 무농약·무비료 친환경농법으로 사과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여 큰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사과는 썩지 않아 ‘기적의 사과’라고 불리며 같은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도〈기적의 사과〉,〈자연재배〉,〈자연재배 놀라운 기술〉 등의 책으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농법은 시설재배입니다. 즉, 비가림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인위적으로 물주기를 하며 키워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토양개선이나 병충해방제를 위한 여러 가지 친환경적 조치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마저도 그는 이를 위해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과수의 무농약 재배는 어렵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근래 농약 제조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병·충해별로 적응성이 있는 농약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잔효성도 7~14일에 지나지 않아서 예전과 같은 범용 고독성의 농약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적인 재배 농가에서는 모든 병충해에 대해 발생 시기별로 여러 번 나누어 농약을 살포하게 되지만, 일반가정에서 키우는 과수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병충해 몇 가지만 방제해도 충분합니다. 복숭아나 포도는 특히 병충해에 취약하니 각 발생 시기별로 적응성 있는 방제조치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자칫 소홀히 하면 단 한 개도 먹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규정된 살포 규정을 잘 지켜 사용하면 농약의 독성은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건강하고, 평화롭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지요. 화초를 키우고 작물을 길러내는 일 또한 그런 삶을 위한 한 부분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과도하게 되면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런 것이 목적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텃밭의 규모는 열 평(33㎡)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과수 또한 3~4그루 정도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생활소품, 직접 만들어 써 보십시오.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려면 이런저런 소소한 물건들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아파트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활인 것입니다. 비록 고추 서너 포기 심을 공간밖에 없어도 이런저런 농기구는 모두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도 이곳저곳 손이 가는 곳이 많아서, 톱, 망치, 도끼, 펜치, 드라이버, 전동드릴 등 여러 수공구도 갖춰 두어야 합니다. 기술자를 부르기에는 좀 어쭙잖은 이런저런 손이 가는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처음 얼마간은 공구가 손에 익지 않아 어설프지만, 자주 쓰다 보면 그것도 익숙해져 소소한 것들은 직접 만들어 쓸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기술이 생기기도 합니다. 재활용 분리수거함이나 외부용 쓰레기통, 정원을 장식할 화분 정도는 직접 만들어 쓰는 게 좋습니다. 나름 멋진 소품이 될 것입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기성품들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단독주택에 어울릴만한 조건을 갖춘 제품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자칫 전원주택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화분 정도의 소품을 만들어 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취미로 목공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목공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그 수준은 내놓고 말할 만한 것은 못됩니다. 그저 필자 나름 쉼의 방식을 목공으로 택했다는 뜻입니다. 창고 한편에 자리를 내어 조그만 목공실을 마련했는데, 여기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기보다는 필자가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쩌다 그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져 나온다 해도 그것은 그저 쉼의 부산물이겠지요.
지금은 그릇이나 접시, 수저받침 정도의 주방용품을 만들어 집에서 쓰는 수준인데요. 비록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들처럼 반듯하고 매끄러운 모양새는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든 그릇이 식탁에 올려질 때면 뿌듯하기도 합니다. 좀 더 기능을 익힌 후에는 함지박이나 화병 같은 중대형 소품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생활소품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나, 된장, 고추장, 김장김치, 식혜 등을 직접 담그거나 주변에서 나는 과실이나 약재류로 술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전원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런 일들은 아무래도 발효와 관련된 것이라 약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한번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