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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머리오리 Jan 29. 2021

£ 2-2. 전원주택지인가요, 아니면 자연촌락인가요

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부지선택에 있어 전원주택지로 조성된 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 촌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 또한 심도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양자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전원주택지는 우선 공시된 토지분양가가 정해져 있으므로 제반 계약사항 등의 이행이 쉽습니다. 또한 부지조성이 완료된 상태이므로 반듯한 부지의 확보는 물론, 진입로 및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집만 지으면 입주가 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 못지않은 단점도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집주인의 취향에 크게 좌우되는 문제지만, 필자의 취향으로는 전원주택지로의 입주는 크게 내키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마디로 전원주택단지는 정원이 딸린 단층형 아파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전원주택지의 주택들은 대체로 비슷비슷한 규모와 모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름 다른 모양으로 설계한다고 변화를 주어도, 반듯하게 구획된 전원주택지의 특성상 특징적인 나만의 집을 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아파트 단지에서 얻을 수 있었던 편리함이나 안전성은 떨어집니다. 편의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방법시스템 또한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또,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형태로 단지가 구성되지만 관리사무소와 같은 관리주체가 없어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택지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분양률이 낮으면 전원택지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자연 촌락에 있는 부지를 선택하면 택지로서 적합한 토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지의 모양이 길쭉해 건축물 배치에 부적합하거나, 위치가 너무 낮거나, 또는 높거나, 남향이 확보되지 않는 등 마음에 꼭 맞는 부지를 선택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설령 적합한 토지를 발견하더라도 토지 소유주가 매매 의사를 보이지 않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토지매입에 성공한다면 나름의 취향에 맞는 나만의 집을 지을 수 있고, 지역주민과 어울려 정감이 넘치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일 것은, 자연 촌락 중에서도 어떤 유형의 자연 촌락인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향후 함께 살아갈 지역주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며, 자연 촌락의 유형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성향 또한 크게 다를 수 있으므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지역 생활 습관에 젖은 귀촌인들이 지역정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역주민과 갈등을 겪다가 귀촌에 실패하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필자가 경험해 본 바로는 대체로 바닷가 마을의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특히 항구에 인접한 마을의 주민들은 바다를 생업의 현장으로 삼은 생활환경 탓에 외향적 성향이 강한 편이나 순박한 면이 있고, 주민 간의 결속력이 크지 않으며,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입니다.


내륙의 농업에 종사하는, 특히 골이 깊은 산골 마을의 주민들은 주민들 간의 결속력이 강하여 외지 유입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나, 개별적 접촉에서는 유연하고 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거주인구가 적은 산골인 탓에 구성원 간의 유대관계가 가족적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한편, 넓은 벌이 있는 농업지역은 산골 마을보다 주민들 간의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며, 외지 유입인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입니다. 상대적으로 거주인구가 많고 활동 영역 또한 넓은 탓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그간 필자가 일부 지역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토대로 한 좁은 소견에 지나지 않으므로 꼭 이것이 바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초 삼봉 정도전이 태조로부터 조선팔도 사람들을 평하라는 명을 받고 나서 경중미인이니, 청풍명월이니 하면서 지역별로 사람들의 특성을 평했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어찌 꼭 이 지역은 이렇고, 저 지역은 저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다만, 마을주민 간 관계의 긴밀함이 어떠한가에 따라 외지 유입인에 대한 반응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귀촌의 성패 여부가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에서 크게 좌우되는 것임은 분명하기에 귀촌을 결심한 분들은 한 번쯤 고려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일례로 당장 집을 짓는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마찰이 생겨 공사를 중단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귀촌한 후에도 지역정서에 적응하지 못해 끝내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기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필자 또한 집 짓는 과정에서 그러한 경우를 겪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세심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집을 짓기 전에는 미리 유력한 지역주민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하는 것도 공사를 쉽게 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인의 말로 ‘농촌 마을에는 마을마다 나름 그들만의 법이 있다’라고 합니다. 농촌지역민들에 있어서는 도시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법적 사고나 논리의 타당성보다는 해당 지역민의 정서가 우선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수도배관을 매설하기 위해 기존의 마을 도로를 절개하고자 한다면 관련기관에 가서 도로임시점용허가를 득하면 법적으로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 건축허가를 득하면 지반공사 및 기초공사를 위한 레미콘 타설 같은 공정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이 통행의 불편과 기존도로의 절개 및 복개로 인한 도로의 흠집, 중장비 운용에 따른 소음 등을 이유로 공사를 물리력을 동원해 막고 나선다면, 공정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건축주는 앞으로 그 마을에 정착해야 하므로 지역주민들과 격한 충돌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할기관에서도 지역주민의 정서를 감안해 개입에 소극적입니다. 결국 그런 과정을 통해 손실을 보는 것은 건축주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용감하게 싸워서 당장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앞으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회학 용어에 ‘언더도그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믿는 맹목적인 인식의 오류라고 합니다. 비록 ‘언더도그마’와 같은 도덕적 개념은 없지만, 여기에 대비되는 용어로 ‘오버도그마’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즉, ‘강자는 옳고, 약자는 그르다’라고 믿는 인식의 오류라고 합니다. 필자가 주제넘게 이런 사회학적 용어를 언급하는 것은 농촌지역의 정서를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도시와 농촌지역 간의 격차가 현격히 차이가 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농촌주민들의 사회적 위상을 강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 일반의 측면에서 보면 약자에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귀촌인에게 있어 그들은 때때로 상당히 위협적인 강자가 되며, 반대로 귀촌인은 약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언더도그마’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을주민들은 강자로서 악하며, 반대로 귀촌인은 약자로서 선한가, 또는 반대인 ‘오버도그마’의 경우로서 그들은 강자로서 옳으며, 귀촌인은 약자로서 그른가, 입니다. 필자는 마을주민과 귀촌인과의 관계를 후자를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물론 ‘오버도그마’ 또한 인식의 오류를 뜻하는 용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더도그마’와 같은 도덕적 판단의 개념은 없다고 보입니다. ‘다수의 원칙’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농촌지역에서는 법적 사고나 논리의 타당성보다는 지역민의 정서가 우선합니다. 마을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생활공동체로서 기능합니다. 온 마을이 인척 관계로 얽혀 있는 집성촌인 경우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현대적인 사회질서라는 측면에서 옳다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귀촌은 현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귀촌은 생활공동체로서의 마을환경과 질서에 적응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 결코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방식을 고칠 수도 없습니다. 다수의 생활방식에 따라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요.


마을주민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대체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외지인이 귀촌한다고 마을에 들어와서는 마을주민들의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집을 지어놓고 위화감을 주는 것은 물론, 마을 행사나 마을 안길 눈 치우기, 제초작업 등 공동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마을의 이점만 취하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과 구별되는 다름에 대한 거부감일 것입니다. 기여가 없는 공동체의 일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직 시골에서는 해마다 성황제가 치러지는 마을이 많습니다. 그 행위를 단지 미신적인 요소로 볼 일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개명한 세상에 그런 것에 의지할 분들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제관을 맡은 분들에게서도 그런 미신적 요소를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성황제가 오랜 세월 주민의 정서를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이 되었기에 함께 모여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런 공동의 행사를 통해 주민 간 화합을 이뤄냄으로써 마을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을의 정서에 등 돌리고 지낸다면 마을주민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림 2-2-1】 세상이 그리 차기만 한 것은 아닐 테지요.

가족 간의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그 구성원으로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지요.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현대 이전의 전통적 공동체는 가족이 중심이었습니다. 좀 더 나아간다고 해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역공동체 정도였지요.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출생, 교육, 결혼, 부양, 질병, 분쟁의 해결이나 죽음조차도 가족이나 지역공동체의 범위 안에 있었지요. 그곳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호를 받으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서적·사회적 욕구를 충족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희박합니다. 개인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그 헌신은 당연한 것으로서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으며, 때로는 폭압적이기까지 한 위계와 질서에 복종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며, 공동체라는 개념은 희박해졌습니다. 가정에서조차도 이제는 예전과 같은 헌신이나 억압적 위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자기실현의 기회를 보장받습니다. 그러나 종종 현대인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상실한 것에 슬퍼하고, 인간미 없는 현대의 도시 생활에서 소외를 느낍니다. 우울증과 고독감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상황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귀촌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이런 현대인의 고민이 이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접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유대감과 개인의 권리 사이의 어느 지점에 균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을 정서에 섞여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1년에 한두 번 하는 마을 행사에 참여해서 인사 나누는 정도면 될 일인 것입니다. 인사 나눔, 그것은 곧 관계 맺음이고, 유대의 끈이 아니겠는지요.


마을주민들과의 관계나 환경적응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아주 한적하고 깊은 산골로 귀촌을 하는 분도 있지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활의 불편은 커지고, 자연 재난에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안전의 문제 또한 흘려버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심사숙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직장이나 자녀의 학교와의 거리, 마을 중심, 또는 이웃과의 거리, 주변의 문화 및 생활편의시설, 호젓한 산책이 가능한 야산 등의 존재 여부 등은 물론, 이처럼 지역주민의 특성 또한 중요하게 살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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