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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와이 Jun 20. 2021

약속의 밤

- 그리고 그린와인


서로 다른 이유, 서로 다른 계기로 이곳에 도착해

각자의 여행을 하고 있던 우리 셋은 어느 밤 우연히 도우루 강변에서 만났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밤이었고 누군가에겐 이제 시작인 밤이었지만, 모두는 똑같이  밤이 너무나 아름답다 느끼고 있었다.










포르투를 지나  여행자들이라면 낮이고 밤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도우루 강변 그리고 동루이스 다리의 특별함을 알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루이스 다리로 이어진 히베이라 지구와 가이아 지구를 넘나 들며 이 아름다운 도시의 맛과 멋을 즐기다 보면, 하루가 긴 한 여름의 낮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내 버리고 어느새 동루이스 다리를 넘어 Serra do Pilar 전망대가 있는 Morro 공원으로 갈 시간이다.


Morro 공원에서 일몰을 보는 일은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가장 만족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기에 해 질 녘이면 늘 활기와 젊음으로 가득 찼고,


늦은 밤까지 도우루 강의 산책을 나선 여행자들에게만 특권처럼 주어지는 도우루 강변의 밤 풍경은

포르투를 그저 잠시 스쳐 지나면 충분한 도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강변을 따라 걷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텅 빈 와인바에 들어섰다.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이었던 포르투에 있는 동안 물보다 더 많이 마셨던 포트 와인을 잠시 잊고 포르투갈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그래서 특별한 그린 와인을 주문했다.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했고 대화 속 신중하게 선택된 단어들과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끌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음악에, 와인에, 분위기에 취해 나긋나긋 각자의 여행을 나누고 있는 우리 셋에게 다가  와인바의 오너.


어디에서 왔느냐 묻고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잠시  엽서 3+1장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곳을 찾은 각 국의 여행자들에게 엽서를 선물하며, 당신들의 나라에 돌아가면 그 나라의 우표를 붙여 당신들의 언어로 엽서를 보내달라 부탁을 해왔고, 그렇게 도착한 전 세계의 엽서들이 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몇 번인가 부탁을 했었지만 아직 한국에서 온 엽서는 없어. 너희가 한국 엽서의 주인공이 되어줄래? 그렇게 해 준다면 나중에 다시 포르투에 왔을 때 와인을 한병 대접할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엽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특별하고 신나는 미션을 받은 사람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흔쾌히 엽서를 건네받았다. 우리의 엽서가 저 벽에 걸린다면 더 오래오래 포르투를 기억하며 다시 이곳에 올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12시가 지나고 영업 종료를 알려왔다.

아쉬움에 망설이다 마지막 잔을 서로에게 채워주며 둥글게 아름다운 와인잔의 레벨을 맞춘다.  ,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는 그린 와인이 담긴 투명한 잔을 부딪히며, 우리가 다시 만날 이유가 생겼다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만나서 함께 엽서를 쓰자는 약속과 함께 포르투의 밤거리로 나온다.








부슬비 내리는 포르투의 밤거리를 걷는다.

우산이 있었지만 포르투의 밤거리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빗방울은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의 걸음을 지치지 않게 해주는 단비였고 이 아름다운 포르투 밤거리의 빛을 더욱 반짝이게 반사시켜 주는 효과일 뿐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는 우리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거리의 반짝이는 불빛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우리만의 감성이었다. 문 닫힌 상점들 사이 운 좋게 아직 영업 중인 mini market을 발견하고 포르투갈 맥주, Super Bock을 꺼내 든다.





걷다 보니 금세 상벤투역 앞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는 면모를 낮 동안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에 가려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역의 내부는 우리에게만 허락한 듯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침묵의 포르투 역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카메라를 꺼내려 하자 역무원이 다가와 문을 닫아야 한다며 우리를 내보낸다.


비록  하룻밤의 만남이었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우리는 한참을 거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KJ은 며칠 뒤 리스본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MJ는 한국에서 봐 안녕.









포르투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고 리스본에서의 또 다른 일주일을 위해 상벤투역에 들어섰을 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을 내려다보며,

‘포르투는 작은 도시라서 1박 2일, 2박 3일이면 충분하니 여행 중 꼭 들러보라’ 던 주변인들의 말이 떠올라 중얼 거렸다.



‘너흰,

포르투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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