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만족의 기준점은 다르다.
기준점은 나의 만족도와 직결되있다.
어떤 이는 0 부터 10까지의 척도에서 8 이상이어야 만족을 느끼는 반면,
또 다른 이는 3만 넘어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함께 무언가를 하다 보면,
서로의 기준점을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누군가는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만 더, 아직 완벽하지 않아." 라고 느낀다.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각자가 만족을 느끼는 지점의 거리가 다를 뿐이다.
엄마는 입맛이 참 까다로운 사람이다.
꼬들꼬들한 밥을 좋아해서 밥 짓는 물의 양 하나에도 예민하다.
압력밥솥에 물을 잴 때, 눈금 하나 차이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조금이라도 물이 더 들어가면 꼬들한 식감이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밥을 지을 때마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내가 물을 조금 적게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밥이 꼬들거리지 않아 엄마가
"물을 얼마나 넣었길래 이렇게 밥에 수분이 많아?" 하며 투덜거리신 적이 있다.
적게 넣은 줄 알았는데도, 엄마의 기준에는 한참 모자랐던 거다.
해줬으면 그냥 좀 먹지, 왜 이렇게 예민할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엄마도 결국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다만, '맛있다'의 기준점이 다를 뿐이다.
결국 서로의 척도는 똑같다.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마음.
문제는, 우리는 종종 그 거리의 차이를 '이해 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상대가 나처럼 느끼지 않으면
'왜 저사람은 이렇게 둔할까,' '왜 저렇게 예민할까'하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조금만 멈춰서 생각해보면,
서로의 기준점이 다르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 경험,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렇게 시선을 바꾸면,
맞추기 어려웠던 관계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진다.
결국, 관계란 서로의 기준점을 '같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다름을 알고 조율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서로의 기준점은 달라도
우리가 원하는 목표나 방향은 결국 비슷하다.
조금 더 나은 결과, 조금 더 행복한 하루, 둘이 함께 먹을 맛있는 밥.
그 마음이 같다는 걸 안다면,
각자의 기준점이 다르다는 사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