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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댁 Jul 03. 2022

주인공 가슴에 털이 너무 많아.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주인공 가슴에 털이 너무 많아.”

“왜 털을 안 미는 거야?”

“난 그냥..경훈이 형 같이만 안 났으면 좋겠어.”


중1 아들은 공동육아 친구 5명과 매주 토론모임을 한다. 월간잡지 ‘독서평설’을 활용해 주제를 선택한다. 날짜, 장소, 진행자를 뽑아 1시간가량 토론한 뒤 1시간 놀다 헤어진다. ‘금융계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는 관련 영화, 영화 주인공, 주인공의 가슴 털, 가슴 털 난 친한 형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서로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4살부터 친구였으니 지금의 변화가 그들에게도 낯선가 보다. 생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며 말을 얼버무리는 지한, 지금은 자신보다 작지만 그의 아빠 키가 180 넘으니 앞으로 훨씬   거라는 이야기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예인, 누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지 등등 토론 중에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친구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의 변화에도 촉각을 세운다. 멋있게 크고 싶은 마음이 컸던 지한이는 친한 형의 북실북실한 가슴털 스타일은 자신이 원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나 보다.  


2016년 2월. 공동육아 졸업 동기들은 모두 바로 옆 초등학교에 함께 입학했다. 나는 아들이 하교 후 놀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 여겼다. 학원 없이 놀며 크는 아이를 만들고 싶었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았다.


오후 2. 엄마들은 하교하는 아이들과 우르르 놀이터로 향한다. 아이들은 미끄럼틀도 타고 술래잡기도 한다. 엄마들은 ‘하하 호호’ 수다 삼매경이다. 어스름 해지는 시간이 되면 각자 집으로 향한다. 나도 그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하교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걷는다. 놀이터 입구에서 아이는 집 방향을 잡는다. “조금만 놀다 가자~” 두어 번 꼬셔서 놀이터로 들어간다. 잠깐 노는가 어 시선을 엄마들에게 돌리면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결굴 우는 아들 데리고 이른 귀가를 한다. ‘왜 친구들과 산나게 못 노는 거야! 내가 이렇게 챙겨 주는데!’ 나의 굳은 표정을 힐끔거리던 아들은 슬며시 손을 놓고 걷는다. 사교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몇 번 더 놀이터에 들렀지만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아들이 가진 어려움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엄한 담임과의 관계도 그 중 하나다. 1학년 담임은 쉬는 시간조차 아이들을 화장실에 마음껏 보내지 않는 엄한 교사였다. 잘못한(?) 아이 얼굴에 매직으로 그림을 려 수치심을 주었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등교하면 교실에서 무조건 ‘열중 쉬어부동자세를 시켰다. 연지 엄마는 1학기 상담날 담임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들었다. “연지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어쩜 수업시간에 수업을 가만히 잘 듣는지요~~” 연지는 그맘때 학교가기 싫다고 대성통곡하며 등교거부 중이었다. 연지 엄마는 단호하게 학교르 ㄹ보내며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던 기간 중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나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며 신신당부했다. 선생님 말씀  들어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하다. 아들에게 부동자세를 취하라 말한 꼴이니… 난 아들에게 필요한 걸 찾을 줄 몰랐던 엄마, 예민하고 고지식한 아들의 기질조차 몰랐던 엄마였다.


아들은 학교생활이 버겁다고 얼굴로 이야기했다. 4 시작된 ‘안면 틱장애 5 최고조 달했다. 아무것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교실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어렴풋이 느꼈지만, ‘마음을 받아준다’는게 뭔지 나는 몰랐다. 나는 내 방식이 철저히 틀렸다고 가정했다. 최소화 했던 텔레비젼 시청, 핸드폰과 놀이동산 모두 최대한으로 바꿨다. 집이 용인이라 가까운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 연간회원권을 구매했다.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었다. 게임을 깔았다. 아들이 원하는 걸 얘기하면 뭐든 오케이를 외쳤다. 놀이동산도 가고 텔레비전도 보고 핸드폰도 3~4시간씩 허용했다. 극과 극을 달렸던 한없이 부족했던 나는 아주 천천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균형을 잡았다.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고 엉엉 울던 아들이 지금은 그들과 함께 라면 무조건 ‘이다. 토론을 진행하다 가슴  이야기로 주제가 새자 아들은 다시 ‘도덕적 해이 방지 방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온다. 아들이 온몸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했을 , 온 세상이 암흑으로 가득차는 듯 했지만 노력했다. ‘무엇 필요한지 ‘관찰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최선이었다. 늦었다고 생각된 순간이 가장 빠른 때란 말을 나는 이렇게 경험했다. 아들은  생각대로 크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속도와 방법으로 성장한다. 나는 곁에서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을 지켜본다. 지금 이 순간을 아들과 함께 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먼지처럼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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