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댁 Jul 08. 2022

사춘기 아들, 펌 했다.

끝나지 않는 아빠와 아들의 머리카락 길이에 대한 전쟁.

“롤 매직 스트레이트 펌 해 주세요.” “어머님이 하실 거예요?” “아니요, 아들이요.”


헤어숍 디자이너는 아들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 매번 말한다. “네요. 뜨는 머리인 거 아시죠?” 어떤 커트를 해도 바리깡을 대는 순간 머리카락은     일어선다. 아들은 매일 아침 공들여 머리를 매만진다. 물을 묻히고 드라이로 눌러주지만 짧은 옆머리는 목도리도마뱀처럼 귀 옆을 촤악 펼치고 공격에 들어갈 .


초등학교 내내 아들은 아빠와 실랑이했다. 아빠는 짧고 단정하게 자르라 한다. 아들은 머리가 떠서 단다. 길게 자르면 아빠가  소리 하고 짧게 자르면 아들이 투덜거렸다. 시댁을 가도 친정을 가도 어른들은  마디씩 했다. “머리만 짧으면 정말 멋있을 건데.” 눈을 가리는 앞머리가 답답해 보여 하는 말이지만 아들은 고개를 돌려 슬며시 자리를 떴다.


올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뒷머리  눌리고 옆머리는 올라간  학교를 보냈던 나에게 ‘입학 트라우마처럼 다가온다.


트라우마는 ‘외상  스트레스 장애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이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이 떠오르고 경험했던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심한 경우 통제력을 잃는다. (출처 : 네이버 나무 위키) 우리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속담처럼 솥뚜껑을 자라라고 종종 착각한다. 증상은 사라지지 않고 반복 혹은 심화된.


6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키우려 애썼다. 순둥이에 무던하다 생각했던 나의 아들은 바닥에 깔린 죽은 잠자리를 피해 걸어가는 섬세한 아이였다. 심한 장난이나 농담을 그냥 말없이 넘겼던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굉장히 불편하지만 표현이 어려워 입을 다물었다는  뒤늦게 알았다.  


아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아들을 붙잡고 매일 같 부드럽고 친절하게 연설을 했다. “숙제를  했어? 숙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숙제를  하고 학교 가면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혼날 수도 있고 놀림당할 수도 있고 말이야. 엄마는 네가 수업에 집중해서 중요한  놓치지 않고  듣는  중요해. 알아들었니?” 알아들을  없게 말해 놓고  알아듣는다고 아들을 탓했다. 내가 아들을 고칠  있다고 믿었다.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구분 선도 보지 못하면 나처럼 곤란한 일이 생긴다.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가 뚜렷이 드러나는 교실. 그곳에서의 사건 사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서 맛나게 먹는 일, 매일 알림장을 확인한 후 숙제를 챙기는 등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정이 아들에게 충분한 휴식공간이 되로록 만들지 않은채 하교하는 아들에게 매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관찰하는 이란 솥뚜껑을 솥뚜껑으로   있는 능력이다. 솥뚜껑이 자라라고 착각하고 도망가거나 숨어버리면 절대 ‘솥뚜껑 만날  없다. ,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일단 멈춤 필요하다. 멈춰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나의 왜곡된 생각을 만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오죽했으면 속담이 생겼겠나 싶다.  감정이 정확히 뭔지 몰라도 요동치고 있다면 일단 행동을 멈추는  필요하다.


가만히 ‘일상 지켜본다. 내가   있는 일이 무얼까? 찾아본다. 나는 매일 아침 벌어지는 목도리도마뱀과의 전쟁만큼은 멈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돈이 아까워 펌과 염색을 10 동안 하지 않았던 내가 아들에게는 과감히 쓰기로 했다. 싫다는 아들을 어르고 달랬다. 아들은 뜨는 머리가 싫은 것이지 파마가 하고 싶은  아니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파마약을 덕지덕지 바르고 우스꽝스럽게 롤을 말고 앉아 있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단, 해봐 . 아침마다 머리가 !  맘에 들게 만들어져. 물만 묻혀도  머리가 된다니까!  번만 믿어봐 ~”

롤 매직은 성공적이었다. 짧으면서 촥 가라앉은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후 6개월 동안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 제법 길어진 머리를 보며 아빠는 아들에게 다시 한 소리를 시작한다. “너무 여자 같잖아. 학교에 너보다 머리 긴 애 있어? “응. 여자애들” “아니 남자 말이야.” “…”


예전에는 머리카락에 덮인 아들 눈이 나빠질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걱정이 없다. 아들은 앞머리를  뒤로 꽂거나 묶는다.  모습을 보며 ‘어쩜 저리 이쁘게 생겼을까.” 혼자 감탄한다. 훌렁 까진 동그란 이마가  복스럽다. 남편과 아들의 머리 길이 전쟁이 다시 시작됐지만, 그래도 좋다. 매일 아침 아들 마음과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니까.  


이전 12화 주인공 가슴에 털이 너무 많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