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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14. 2024

내 몸과 화해하는 법

혹은 가장 원초적인 예술을 연마하는 법

신야 타카하시(Shinya Takahashi), 유타카 오노(Yutaka Ono) <인어공주(교원애니메이션명작)>



인어 공주는 살그머니 정원으로 들어가 언니들의 꽃밭에서 꽃 한 송이씩을 꺾었다. 그러고는 궁전을 향해 수천 번이나 키스를 보낸 후 검푸른 물 위로 떠올랐다.



몸을 흔드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시작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혹은 예술에 작은 부분이나마 걸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틀어두는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에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랫말과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보이는 글은 모조리 읽어 젖혔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잠든 엄마 아빠가 깰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토요명화>를 봤고, 매일 밤 "책 좀 그만 봐. 이제 자야지."란 말을 들으며 불을 껐다.


스무 살이 되어 타향으로 독립하면서 차츰 취향이 정교해졌다. 동네 도서관을 벗어나 대형 서점에서 새로운 책과 맞닥뜨리고, 살뜰히 쪼갠 용돈으로 영화와 연극과 공연을 쫓아다녔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는 인간이 예술을 어떻게 시작하고 발견했는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인간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신을 향해 몸을 흔드는 것, 그것이 예술의 기원이었을 거란 주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이제껏 알고 있던 것보다 예술을 훨씬 매력적인 것으로 감각하게 되었다.


어떠한 의지나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할 때, 가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우리의 몸이다. 국어나 영어로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해외에서 만나도, 움직임을 흉내 내는 제스처로 대부분 서로의 의도를 헤아려 짐작할 수 있다. 몸으로 만들 수 있는 많은 흉내들을 가장 아름다운 선으로 형상화해 연속으로 확장하면 무용이 된다. 우리의 몸이 예술을 담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인 셈이다.


춤이나 무용을 배워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욕심은 생기지 않았다(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상상은 종종 한다). 대신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쓸 수 있도록 연마하기 위해 약간의 공을 들였는데, 그게 바로 운동이었다. 특히나 수영은 섬세하게 몸동작을 다듬어야만 하는 운동이었다. 물을 따라 오래도록 빠르게 움직이려면, 발을 차는 리듬과 어깨를 꺾는 각도와 고개를 들어 호흡하는 순간을 멜로디처럼 매끄럽게 연결해야 한다. 예술을 담을 수 있는, 내가 지닌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매일 다듬으며 내 마음대로는 절대 되지 않는 내 몸과 화해해 나간다(때로는 듣는 척도 안 하는 듯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몰래 궁전을 빠져나와


인어 공주는 바닷속 무도회가 열린 궁전을 빠져나와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왕자를 얻기 위해 마녀를 찾아간다. 열다섯 살. 이쯤 되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가족에게서 독립해 나올 수도 있는 나이가 됐단 뜻이다. 인어 공주는 왕자를 만나겠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가족과 작별하고 홀로 선다. 목숨을 담보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동화는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하드코어 성향이 다분한 것 같다. 그렇지만 단단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는 용기는 권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


부모님으로부터 육체적, 정서적으로 독립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독립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수영 강습비와 장비 구매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다른 운동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약간의 위안을 해보며), 몸과 마음을 써서 벌어들인 수입을 스스로의 몸을 갈고닦는 데 들인다고 의미를 부여하면 또 그대로 기꺼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팔아 인간의 두 다리를 가질 수 있는 물약을 손에 넣었을 때, 인어 공주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한데 수영 배우는 얘기는 왜 자꾸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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