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하버(Jennie Harbour),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1932)>
그는 인어 공주에게 승마복을 입혀 말에 태우고 숲을 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작은 새들이 푸른 나뭇잎들 사이에서 날아올랐고 초록의 풀들은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대중목욕탕과 수영장은 한 끗 차이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세상에는 강력한 에너지를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껏 가까이 지내온 사람들은 대부분 섬세하고 정적이었는데, 수영장에 모이는 사람들은 쾌활한 에너지가 넘쳐났다. 활력 있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걸까, 아니면 운동을 하면 활력이 생기는 걸까? 닭과 달걀 중 우선한 것을 택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질문이다. 수영장에 다니며 두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 보잘것없는 편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래도 열심히 수영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에너지가 더욱 밝고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레인에서 강습받는 언니들은 27년을 함께했다고 한다(생의 3분의 1을 수영장에서 같이 보냈다는 뜻이다!). 근 몇 년 동안 새로운 멤버가 영입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언니들은 낯을 가리는 새침데기에게 먼저 인사도 해주고, 말도 걸어줬다. 수영장의 터줏대감들이 살짝 불편하면서도 눈치를 보게 되면서도 좋았던 것 같다. 이 '고인 물' 언니들은 샤워실에서는 대중목욕탕에서처럼 서로의 등을 밀어줬고, 둔한 몸에 비해 타이트한 수영복 어깨끈에 팔을 밀어 넣어줬다. 팔이 잘 닿지 않는 마르거나 통통한 등에 보디로션을 발라줬음은 물론이다. 이 모든 대중목욕탕의 의식은 내게도 치러졌다(맙소사!). 떡이나 과일도 나눠 먹고, 빵집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수다도 떨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와서인지, 이런 어울림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물 밖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접영 차례를 기다리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러너스하이 같은 걸까? 운동 강도가 높아지자 체력이 올라왔다. 맨 뒤에서 시작해 차츰 앞으로, 앞으로 위치를 바꿨다. 수영은 25m 길이의 레인을 왕복으로 달릴 수 있게 되어 있고, 그중 가장 빠른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차례를 지켜 서서 출발한다. 아침반으로 옮기고 꼭 석 달이 지나자 그 반의 중간에 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실력은 조금씩 계속 더 느는데, 더 이상은 앞자리로 옮길 수 없었다. 내 앞에서 수영하는 언니의 발에 손이 닿을까 두려워 천천히 나아가거나 중간에 멈춰 서야 했다. 27년을 같은 순번으로 수영했던 분들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꼬맹이에게 자리를 내주기가 쉬웠겠는가. 스위머스 하이(Swimmer's High)에 취해 있던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어 즐거웠을까
인어공주는 '눈부시게 하얀 팔을 들어 올리고 마룻바닥에 발끝으로 서서 아름답게 춤을 추었다.' 또 왕자와 함께 승마나 등산에 나서기도 했다. 매일을 사랑하는 왕자와 꿈꾸듯 일정을 함께하고,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면면을 발견하는 날들이었다. 언니들과 할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용궁 생활이 그리운 건 어찌하지 못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영을 마치고 출근하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들리지 않는 곳에서는 '독하다'고도 하는 듯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운동 아니고 물놀이예요."라거나 "씻으러 가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운동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주 사소한 환경의 변화에도 툭하면 죽는다는 개복치 같은 내가 고된 수영을 이토록 오래 버텨냈을 리 없다. 아침에 대중목욕탕에 들러 친한 언니들과 모여 상쾌하게 샤워하고 물장구치며 한바탕 놀다 가는 거다.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하던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땀 흘리며 웃는 법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