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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10. 2024

아이스버그 수영장은 빙산의 일각

'Iceberg'는 프랑스어로 빙산이라는 뜻

시드니 본다이 비치 아이스버그 수영장(Icebergs Pool, Bondi Beach, Sydney), 2023, 오리발



"넌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지, 벙어리 아가씨?"... 인어 공주는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코 미소만 지었다.



짭짤한 파도의 맛을 꿀꺽 삼키면


수영인은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컨디션 체크부터 한다. 오늘은 허리가 꼬부라지니 접영 할 때 조심해야겠다거나, 어깨가 돌이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우니 자유형은 영 속도가 안 날 것 같다거나 하는 그날의 수영 일진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수영은 지금까지 해봤던 운동 중 몸 상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이었다. 어떤 때는 소금쟁이처럼 수면에 몸을 걸치고 스르륵 미끄러지고, 또 어떤 때는 끈적하게 들러붙는 푸딩 같은 물이 묵직한 몸을 꼬르륵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때 나는 수태기라는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었다. '수태기'는 '수영 권태기'를 뜻하는 말로, 고강도 수영을 못 이길 때 찾아오는 심리 상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던 시기를 지나, 갑자기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이대로라면 쿵쾅 하고 심장이 부서질 것만 같아 자주 쉬게 되는 때가 왔다. 수영장에서 제일 많이 듣던 말은 "또 쉬어?"였다. 단거리는 어떡해서든 겨우겨우 쫓아갔지만 장거리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 바퀴(500m)는 돌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뒤에는 간신히 네 바퀴로 줄여 돌고, 나중에는 두 바퀴 가는 것도 벅찰 만큼 지쳐 있었다.


이토록 좋아하는 수영이 버겁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전혀 늘지 않는 수영 실력에 조바심을 내던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영장 밖에서 벌어지는 무거운 일들을 수영장 안으로까지 끌고 들어오다는 것이 두 번째 원인인 듯했다. 울지 않기 위해 물의 힘을 빌려 그 안에서 버둥거렸더니 오히려 내 울음이 수영장 물에 묻어버린 것만 같았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휴가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예쁘다고 꼽을 수 있는 수영장 중 하나에 가서 몸을 담그는 건 어떨까?



마녀의 소용돌이를 찾는 모험


인어공주는 왕자 앞에 인간으로 서기 위해 무시무시한 마녀가 살고 있는 소용돌이를 찾아간다. 마녀는 굉장한 협상가여서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얻고서야 인간으로 변신하는 물약을 건네준다. 아니, 뭐 남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인어 친구?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전개이지만 오직 한 가지만은 나도 수긍할 수 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을 포기할 만큼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단 것.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 있는 아이스버그 수영장은 바닷물을 가둬 만든 천연 해수풀이다. 직선거리가 50m이고(일반 수영장의 두 배) 깊이는 2m가 넘는다고 한다(웬만한 장신이 아니고선 발이 닿지 않는다는 뜻). 천연 해수풀까지는 아니어도 규모만큼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수영장이 더러 있다. 문제는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오리발까지 챙겨 신고 처음 아이스버그에 몸을 담갔을 때의 감상은 별 거 없었다. 뭐였냐면, "어우, 짜!" 그다음은 "으아, 추워" 사진에서 본 그 예쁜 수영장 맞아?! 바닷물은 생각보다 훨씬 짭짤하고 온갖 해초 조각과 모래알이 섞여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11월 시드니는 초여름이라고 들었는데 물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가 떨릴 만큼 차갑고, 그래서인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아니면 그래서인지) 나는 그곳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당시에 내가 그토록 아끼고 지키려 했던 내 일과 삶의 안정을 잠깐 포기하자, 바다 한 폭을 빌려 출렁이는 야외 수영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록 진짜 바다수영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바로 오픈워터의 시작점이 됐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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