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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25. 2024

바다에 가려면 등산부터

누구나 가슴속에 삼각산 하나쯤은

에드먼드 듈락(Edmund Dulac), <종(The Bells, 1912)> 애드거 엘런 포(Edgar Allan Poe) 시집 삽화



마녀의 집은 그 너머에 있는 이상한 숲 한가운데 있었는데, 그 숲에 있는 나무와 꽃은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두족류였다. 그것들은 마치 흙에서 자라는 수백 개의 머리가 달린 뱀 같았다.



바다에 가려는데 왜 굽이굽이 산부터 넘어야 하는지


"구봉도 한번 다녀오죠."

은행아저씨(그냥 수영 좋아하는 까불이처럼 보이는데, 은행 지점장님이라고)가 빨간 육개장 국물이 넘칠 듯 찰랑거리는 숟가락을 들고 얘기했다. 우리는 번개 수영이 끝나고 다 같이 모여 아침 겸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수영 동호회 사람들은 매주 일요일에도 번개를 치고 꼭두새벽부터 모여 함께 수영하곤 했다(이들에게 수영이란 매일 아침 첫 일과의 디폴트값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날 사이드턴을 연습하다 '우지끈' 하는 관절의 외마디 비명을 들은 나는,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계획인즉슨, 바다수영 경력자가 1대 1로 수린이를 전담 마크해 삼척에 가기 전 서해에서 예행연습을 하자는 것. 두목님한테 안전부이까지 빌리기로 하고, 나는 슈트를 알아봐야겠다고 그날 일정을 정해뒀다(미안하지만, 너 구봉도 못 가).


"아이고, 너무 아팠겠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의사 생님이 인상을 구기며 얘기했다. 그렇다. 나는 그날 번개 수영 이후로 지속되는 통증을 견디지 못해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병명은 회전근개 염증. 회전근개는 어깨의 모든 움직임에 관여하기에, 운동 좀 했다는 사람들이 자주 부상을 입는 부위다. 한 달 정도는 운동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수영장에 전화해 한 달을 유예시키며 불안했다. 삼척에 갈 수 있는 걸까? 구봉도는 못 가겠네. 하긴, 구봉도 바다는 4km가 넘는다 했으니.... 삼척 대회를 신청하면서도 여차하면 취소하자 벼르던 터라, 이렇게 된 게 운명인가 싶기도 했다. 검색해 보니, 6만 원의 참가비는 환불이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두려움 때문에 대회에 못 나가는 시나리오는 예상했던 터라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갑자기 다쳐서 못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운명의 신, 너 이러기야?


"손 저을 수만 있으면 가자."

내가 좋아하는 동호회 1번 자매 동생 분의 얘기에, 코믹과 서스펜스 두 장르를 동시에 경험했다. 어깨가 아파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내 말을 그는 가볍게 거절했다. 동호회에는 세 커플의 자매가 있었는데, 나이 순으로 2번 커플은 나와 동생이었다(동생은 두세 달에 한 번씩 짬이 날 때마다 그저 나랑 수영하기 위해서 동호회에 참석했다). 3번 자매는 20대 귀여운 꼬마들이었는데(수영 실력은 결코 귀엽지 않다), 나랑 같은 수영장에 다니고 있었다. 세 커플 중 제일 연장자인 두 언니는 생김새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다(나중에 이분들을 더 소개할 기회가 있을 거다). 것보다, 손 저을 수 있다고 삼척에 갔다가 한동안 손을 아예 못 저을 수도 있게 되는 거 아닌가요?!?!



인어공주도 겪었다는 호사다마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

'호사다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동해원이 지은 시 <서상>의 구절이다. 인어공주가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왕자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는 무수한 '마(磨, 마귀)'를 만나야만 했다. 그 마귀라 함은 마녀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앞으로 나아갈 때 무조건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게다가 끝도 없이 넘어야 할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산과 산이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눈앞에 닥친 시련과 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스스로가 직접 파놓은 함정과 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불안함과 초조함과 스스로에 대한 못 미더움이라는 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수영 전 등산으로 몸부터 풀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바다수영을 가려 했는데 크고 작은 산부터 넘으라 한다. 손 저을 수만 있으면 갈 법도 한 바다까지 닿기 전에 차근차근 산을 넘어가는 과정은, 그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고 믿게 해주는 포션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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