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페데르센(Vilhelm Pedersen), <미운 오리 새끼>
넌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목소리로 왕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물약을 얻으려면 그 값으로 목소리를 내놓아야 해.
모두 장비발이다
맨 처음 오리발을 신고 수영하던 날을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한다. 두 발에 각각 두 뼘 길이 물갈퀴가 생긴 나는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물의 표면을 미끄러졌다. 어찌나 빠른지 몸에 달라붙은 속도감이 즐거워 나도 모르게 입을 한껏 벌리고 신나게 웃고야 말았다. 락스 냄새나는 물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음은 물론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오리발을 신으면 평소 맨몸으로 수영할 때보다 1.3배 빠르게 영법을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기본적인 몸동작 자세가 나쁜 나로서는 그 이상의 부스터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지느러미를 유연하게 흔드는 물고기처럼, 오리발을 낭창거리며 쏜살처럼 물을 미끄러지며 내달리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처음 자전거나 스키를 탔을 때 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바람을 슝슝 가르던 기분을 기억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꼭 알맞게 시원한 물이 온몸을 가볍게 받쳐주는 기분을 얹어보길.
키 높이를 한참 넘는 깊이의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하는 초보들은 대체로 오리발을 착용한다. 추위나 외부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부력을 덧대 물 위로 온몸을 붕붕 띄워주는 웻슈트도 입는다. 스노클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입에 문 긴 대롱으로 산소를 공급하니 호흡을 위해 자세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며 물에서 나아가는 데 불필요한 저항을 줄여 훨씬 적은 힘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스포츠가 그렇듯, 아니지, 우리 인생이 그렇듯, 모두 장비발이다.
사람이 되는 대가
인어공주는 짝사랑하는 왕자 앞에 사람 모습으로 서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인간으로 변신하는 물약과 맞바꾼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같은 값어치를 지니는지 절대적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교환은 성공했다. 202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소설 <탐닉>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따로 가정이 있다!)가 그날 연락을 해온다면 집이 불에 타버려도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에르노의 모든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엮은 것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더욱 충격적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할 만큼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걸지도.
내가 수영을, 혹은 장소를 특정해서 바다나 강에서 하는 수영(오픈워터)을 간절히 원하는가? 음, '간절히'의 정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에 간략히 '예'나 '아니오'로 답하기 곤란하다. 그렇다면 소중한 것을 내놓을 열정은 있는가? 이것 역시 정량화할 수 없다는 난감함을 털 수 없기에 '적당히(?)'라 대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부지런히 강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매일처럼 횡단하며 모아둔 돈을 일부 헐어 오리발과 웻슈트와 안전부이를 사들였다. 만족스러운 등가교환이었는가? 여기에는 확실히 답할 수 있다. 물론!
애석하게도 웻슈트에는 약간(이라기엔 상당히 큰) 차질이 있었다. 아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