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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Sep 14. 2019

소년, 그 맑고 투명한 이름

《문장 21》 2016 봄호


「소년, 그 맑고 투명한 이름」       



 남자는 그곳에 있었다.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자의 앞에는 핏빛으로 얼룩진 채 누워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남자는 슬픔을 짊어진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표정은 남자와는 달리 환했다. 세상의 모든 빛들을 다 흡수한 것처럼. 자신을 향해 미소를 내비치며 누워있는 소년의 모습에 남자는 움직이지 못하던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     


 남자와 소년은 쉽게 얼굴을 마주치기도 힘든 사이였다. 소년은 남자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보스의 애인이었으니까. 보스는 소년을 장롱 속에 숨겨둔 비상금마냥 꽁꽁 숨겨놓고 바깥출입을 금했다. 소년이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이 유일했다. 식사시간이 되면 소년의 방문이 열렸다. 소년의 식사를 담당하던 조직원이 FBI에 쫓겨 몸을 숨기게 되자 남자가 자연스레 소년의 식사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남자가 식판 가득 음식을 담아 방문을 열 때면 침대위에 종잇장처럼 널부러져있던 소년은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 무기력한 표정으로 식판을 받아들고는 숟가락을 움직였다. 남자가 빈 식판을 다시 찾으러 왔을 때 소년이 처음으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름이 뭐죠?”

“.......”     


 난데없는 이름이 뭐냐는 소년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이 다시 한 번 남자를 향해 물었다. 이름이 뭐죠? 남자가 마지못해 간결하게 대답했다. 윌리엄. 남자의 이름을 들은 소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제이에요. 그는 그렇게 날 불러요.”     


 소년이 말하는 그라는 건 보스를 지칭하는 듯 했다. 남자는 소년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소년의 앞에 놓여진 식판을 집어 들었다. 소년이 남자를 향해 그전에 자신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던 사람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남자는 짧게 그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가 나간 소년의 방안에는 회색의 공기만이 감돌았다.     


*     


 매일 똑같았다. 소년은 방안에 누워있고, 남자가 올 때만 몸을 일으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년의 바깥출입이라고는 질색을 하는 보스가 소년의 외출을 허락했다. 보스는 남자에게 외출하는 소년의 경호를 맡겼다. 얼마 만에 바깥에 나온 걸까. 실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바깥에 나오니 확연하게 드러나는 우유보다 더 하얀빛깔의 피부색에 남자는 소년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윌리엄.”

“네.”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어요.”     


 외출을 한 소년의 첫마디였다. 소박하지만 간절함이 담겨있는 소년의 목소리에 남자는 가까운 젤라또 가게로 소년을 데려갔다. 형형색색의 젤라또에 소년은 넋을 잃고 한참동안 젤라또가 담긴 유리너머를 바라보았다. 뭐가 좋을지 고르지 못하는 소년을 대신해 남자가 다크초콜릿맛의 젤라또를 두 개 주문했다. 남자는 콘위에 잔뜩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소년은 그제서야 젤라또를 바라보는 걸 멈추었다.    


*     


 소년과 남자는 젤라또를 들고 공원을 거닐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지쳤는지 소년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도 운동부족때문일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소년은 방에서 나오지 않은 만큼 활동량이 적었으니까. 벤치에 앉은 소년이 광합성이라도 하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를 켜는 소년의 가는 팔목을 무심코 바라보던 남자가 소년을 따라 기지개를 켰다.     


“왜 따라 해요?”

“그냥.”    


 그냥이라는 남자의 말에 소년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웃을 줄도 알았구나. 남자는 소년이 웃는 법을 모르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소년은 무표정만을 고수하고 미소를 보여주는 법이 없었으니까. 똑같은 일상이 소년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간걸까. 남자는 다시금 소년을 따라했다. 남자가 웃자 소년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웃으니까 윌리엄도 귀엽네요.”

“저 안 귀엽습니다.”

“왜요? 귀엽다는 말 싫어해요?”

“저한테 안 어울립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마피아는 귀엽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보다는 오히려 소년에게 귀엽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목울대를 움직이려던 남자는 소년의 말에 목울대를 멈추었다.     


“그거 알아요?”

“.......”

“난 그와 매일 밤 만나지만 아직 그를 모르겠어요. 그는 어떨 때는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 엄청 화를 내요. 물론, 내가 바깥에 나가보고 싶다고 말할때만요.”     


 남자는 보스가 왜 화를 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햇볕을 쬐고 있는 소년은 한없이 싱그러웠으니까. 남자라고 하기에는 가녀린 선. 얼핏 보면 소년이 아닌 소녀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소년의 선은 고왔다. 소년이 움직일 때마다 소년의 몸위에 걸쳐진 티셔츠가 펄럭거렸다. 티셔츠가 펄럭거릴때마다 드러나는 소년의 속살에 남자는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 고개를 돌렸다.     


“윌리엄.”

“네.”

“윌리엄은 왜 마피아가 된 거에요?”     


 소년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남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피아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남자 자신도 몰랐으니까.     


“윌리엄도 대답하지 못하는군요. 그도 그랬어요. 내가 왜 마피아가 되었냐고 물었을 때 골똘히 고민만 할뿐 대답을 하지 않더라구요. 뭐가 그리 어려울까요. 태어날 때부터 마피아는 아니었을 텐데.”

“태어날 때부터 마피아는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운명처럼 느껴진다는 남자의 말에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소년은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요.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거 같아요.”     


 그리 긴 시간 앉아있었던것도 아닌데 소년은 남자를 재촉했다. 소년의 재촉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소년을 인도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둘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걷기만 했다. 소년의 방앞에 도착했을 때,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젤라또가 먹고 싶을 때 알려주시면 사다드리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소년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방문 안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소년이 사라진 방앞에 남자는 발걸음을 바로 떼지 못하고 잠시간 서서 응시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     


 보스가 변했다. 누가 보아도 보스가 변했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보스의 변화는 소년에게도 나타났다. 소년의 외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년의 외출마다 여전히 보스는 남자에게 경호를 맡겼다. 외출은 항상 같은 패턴으로 흘러갔다. 젤라또를 먹고, 공원에 가서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코스였다. 같은 패턴이 지겨웠던 걸까. 소년이 남자에게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로 소년을 데려가야할지 남자는 잘 몰랐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술관으로 소년을 데려갔다. 미술관에는 관광을 왔는지 외국인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많은곳에는 처음 온 듯 소년의 눈이 반짝였다. 미술관 벽에는 명화들이 걸려있었다. 소년은 유심히 그림들을 관찰했다. 남자는 그런 소년을 관찰했다. 때때로 소년은 남자에게 작품들에 대해서 물었는데, 남자는 그림에는 문외한이었기에 소년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책으로만 그림을 봤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실제로 보니 더 예뻐요.”    

 

 남자도 사실 처음 와보는 미술관이지만 처음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소년이 남자의 옷을 잡아끌었다. 저기 좀 봐봐요. 윌리엄하고 비슷하게 생겼어요 저 그림. 소년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서 그림을 본 남자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소년이 가리키는 그림에는 남자 하나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캔버스에 담겨있었다.    

  

“닮았죠? 윌리엄이랑.”

“안 닮았습니다.”

“엥?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데.”

“안 닮았습니다. 제가 저 그림 속 남자보다 조금 더 잘생긴 것 같습니다.”     


 그림 속 남자보다 잘생긴 것 같다는 말에 소년이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거짓말 아닌데. 내가 더 나은 거 같은데.     


“농담도 할 줄 아네요? 알면 알수록 신기해, 윌리엄은.”     


 대체 소년이 상상한 내 이미지는 뭐였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남자는 자신을 신기하다고 말하는 소년이 오히려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     


 너무 외출이 잦았던 걸까. 보스는 다시금 소년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소년은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침대위에 누워있었고, 식사시간에만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가져다주는데 소년의 온몸이 빨갛게 멍들어있는 게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보스에게 맞기라도 한걸까.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에 소년이 물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윌리엄.”

“........”

“가지 말고 여기 잠시만 같이 있어줘요.”

“........”

“무서워요, 나. 이젠 그가 무서워요.”     


 소년의 작은 몸이 마치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남자는 우는 사람을 달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대신, 조용히 소년에게 다가가 소년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소년의 떨림이 남자의 품에서 더 크게 진동했다. 처음이다. 보스가 소년에게 손을 댄 것은.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소년을 때릴 줄은 몰랐기에 남자는 당황했지만, 남자보다 소년은 더 당황했으리라. 소년도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     


“그에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성난 목소리로 나를 때렸어요. 나는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요.”

“........”

“내가 여기 데려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거죠?”   


 소년의 잘못은 없다. 누구든 갇혀있으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보스는 소년의 말에 불안해졌을 것이다. 소년은 아름다우니까. 그 아름다움을 세상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소년을 때렸을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의 품안에 안겨 소년은 한참을 떨었다. 소년의 몸의 떨림이 미세해졌을 무렵 남자는 소년을 들어 침대위에 조용히 눕혔다. 울다 지쳐 잠든 소년의 눈가에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자의 감정을 건드렸다. 남자는 처음으로 보스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지지 않은 식판을 들고 소년의 방을 나오고 나서도 한참동안 그 야속함은 남자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     


 소년의 눈물을 본 다음 날, 남자는 식판 대신 젤라또를 들고 소년의 방을 방문했다. 남자가 내미는 젤라또를 소년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젤라또를 다 먹은 소년이 고맙다고 말하자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여 소년에게 미술관 입장권을 건넸다.     


“이건 비밀입니다.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 한 번만 나갔다 오는 겁니다.”     


 남자의 말에 소년이 아이처럼 기쁜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그럼 윌리엄도 같이 가요. 저는 그림에 관심 없습니다. 그래도 같이 가요. 혼자 가기에는 무서워요.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남자는 못 이기는 척 같이 나가기로 했다. 보스의 허락 없는 외출. 소년과 자신 외에 그 누구도 이 외출을 알아서는 안된다. 보스에게 들키게 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도 할 수 없지만, 남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소년을 외출시키기로 했다. 소년은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아니다. 하나의 인격체다. 사실, 이런 이유들은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냥 남자는 햇살 아래서 부서질 듯 눈부신 소년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     


 비밀스런 외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자는 종종 소년을 데리고 나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보스가 남자를 호출했다. 남자는 보스의 호출이 분명 소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장하며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보스의 방으로 갔다.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여니 창가를 바라보며 앉아있던 보스가 의자를 돌려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부르셨습니까.”

“윌리엄.”

“네.”

“나는 눈이 많아. 내 눈이 두 개뿐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게.”     


 나지막한 보스의 목소리에는 너는 감시당하고 있으니 행동을 제대로 처신하는 게 좋을 거라는 어투가 담겨있었다. 남자는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보스가 자신을 떠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내 눈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하군. 제이랑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     


 소년의 이름이 보스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남자는 말문이 막혔다. 떠보려는 게 아니었다. 보스는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야. 너도 잘 알 테지.”

“........”

“내일부터 제이의 식사는 다른 사람이 맡을 테니 자네는 이제 제이에게 손 떼게.”     


 보스의 말에 남자는 마른 입안이 사막화 되어가는 걸 느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보스는 우월함을 뽐내며 통보를 하기위해 남자를 부른 것이었다. 제이는 내 소유야, 너 따위가 넘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남자는 보스를 향해 대답 대신 목례를 하고는 방을 나왔다. 밖으로 나온 남자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보스의 방문 앞에 쓰러지듯 기대앉았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보스의 말에 심장이 가시에 찔린 듯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소년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남자의 마른 입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     


 똑같은 일상이었다. 소년을 보지 못하는 것만 빼고는. 남자는 가끔 소년의 환영에 시달렸다. 밝은 햇살을 볼 때면 소년의 흰 피부가 떠올랐고, 소년과 함께 갔던 젤라또 가게 앞에 소년이 서서 젤라또를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림에는 취미가 없던 남자였지만, 남자는 어느 샌가 미술관의 단골 방문객이 되어있었다. 미술관에 가서 소년이 자신을 닮았다고 했던 그림을 보며 남자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기도 했다. 남자는 생각했다. 처음 느껴보는 이런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일까라고. 소년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소년과 남자가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았던 보스는 어떤 식으로든 남자와 소년이 1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소년이 여전히 방안에 갇혀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남자는 소년의 식사를 새롭게 담당하게 된 조직원을 불렀다. 그에게 소년에게 전해주라고 쪽지를 한 장 내밀었으나, 그는 싸늘한 미소만 지을 뿐 쪽지를 전해주지 않았다. 쪽지로나마 소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거절당한 남자는 결국 비열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     


 죽지 않을 정도로 패주었더니 그는 남자의 개가 되었다. 그가 남자의 개가 될 수 있었던 건 남자가 지니고 있던 총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남자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는 총이 없었고, 남자는 총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조직에서 인정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남자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남자에게 충성의 의미로 소년에 대한 정보 하나를 흘려주었다. 매일같이 소년의 방을 방문하던 보스가 요즘은 드문드문하다는 것. 그 말에 남자는 화가 났다. 소년을 가둬놓고 자신은 필요할 때만 찾는 꼴이라니. 좁은 방안에서 소년이 얼마나 외로워하고 있을지 알지 못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리라. 남자는 소년의 방문을 열었다. 열린 방문 너머로 생기없는 소년의 눈이 보였다. 소년과 남자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윌리엄.”

“.........”

“보고 싶었어요, 윌리엄.”     


 보고 싶었다는 소년의 말에 남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나려했지만 참았다. 소년이 남자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남자는 조용히 소년의 등을 토닥였다. 소년이 말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윌리엄. 외출 말고 영원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보스가 들으면 황소처럼 길길이 날뛸 것이다. 도와줘요 윌리엄. 윌리엄이라면 날 도와줄 수 있죠? 나가게 도와달라는 소년의 말에 남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은 소년을 이곳에서 꺼내주러 온 게 아니다. 그냥, 소년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온 거다. 그 목적을 망각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죽을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까.”

“여기에 있는 것도 죽는 거랑 다를 건 없으니까, 괜찮아요.”     


 단호한 소년의 말에 남자는 결심한 듯 내일 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     


 분명히 위험한 일이다. 소년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자는 소년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소년이 자신에게 한 첫 부탁이니까. 자신도 의미 없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사는 것보다, 소년과 함께 떠나면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 같기도 했고. 남자는 조심조심 소년과 자신이 탑승할 비행기 표와 공항까지 타고 갈 자동차를 준비했다. 누구도 알지 못하게 아주 은밀하게. 밤이 되었고, 남자는 소년의 방문을 열었다.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자는 소년을 데리고 구불구불 미로 같은 계단이 가득한 숙소를 빠져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남자와 소년의 앞에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남자는 소년을 자동차 뒷좌석에 밀어넣고 조수석에 탔다. 자동차가 흔들리며 출발했다. 그렇게 그 곳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     


 열심히 공항 방향으로 향하던 자동차가 갑자기 방향을 이탈해 공항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자가 운전사에게 외쳤다. 차 세워, 당장! 남자의 외침에도 차는 멈출 줄 몰랐고, 남자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어 운전수에게 겨누었다. 남자가 딸깍 총을 장전했다.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에 운전사는 굳은 표정으로 차를 세웠다. 어둠이 아스라이 내려앉은 거리위로 차가 멈추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뒷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 둘이 나타나 소년을 포박했다.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이 포섭한 운전사도 보스의 사람이었음을. 남자가 소년을 붙잡고 있는 사내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자신에게로 겨눠진 총구를 보며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사내에게 눈짓했다. 눈짓을 받은 사내가 총을 꺼내 소년의 자그마한 머리통에 겨누었다. 차가운 총이 피부에 닿자 소년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윌리엄. 이 바닥을 잘 알 텐데.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뭐하는 짓이야! 당장 그 아이에게서 떨어져. 그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러기 싫다면?”

“쏘겠어!”

“풉.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너의 총알이 이 아이의 머리에 박히는 총알보다 빠를 거 같나?”   

  

 맞는 이야기다. 내가 총을 쏜다면 그들도 총을 쏠 것이다. 그러면 소년은 죽고 말겠지. 소년을 죽게 할 수는 없다. 남자는 체념한 표정으로 총을 바닥에 떨구었다. 남자가 총을 바닥에 떨구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소년에게 겨눈 총구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다시 총을 들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려 바닥에 떨어진 총을 사내들쪽으로 걷어찼다. 자신들에게로 총이 오자 사내들은 그제야 소년의 머리에서 총구를 거두었다.      


“나는 죽여도 그 아이는 살려줘. 내가 데리고 나온 거니까, 그 아이의 잘못은 없어.”

“과연 잘못이 없을까 윌리엄?”     


 남자의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였다.      


“보스.”

“윌리엄. 난 네 잘못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소름끼칠 정도로 밝았다. 보스의 표정은. 웃는 표정을 지으며 보스는 남자를 지나쳐 소년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소년 앞에 발걸음을 멈춘 보스가 말했다. 제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자.. 잘못했어요..”

“뭐라고? 다시 말해봐 제이. 진심이 안 묻어나잖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소년의 동공 가득 공포감이 어렸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데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소년은 마치 단어 하나만 무한 재생하는 기계가 된 마냥 잘못했다는 말만 수없이 되풀이했다. 소년의 그런 모습이 보스를 자극했는지 보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보스가 소년을 붙잡고 있던 사내에게서 총을 뺏어들었다.      


“fanculo! non riesco a credere che sono innamorato di una come non si puo credere!” (씨발! 너 같은 것과 내가 사랑에 빠졌다니 믿을 수가 없군!)     


 탕. 순식간이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보스가 소년에게 총을 쏘았다. 총을 맞은 소년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남자의 몸도 소년처럼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남자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보스가 소년을 죽이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이건 꿈일 거다. 그래. 꿈이어야한다. 모두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게 소년의 몸은 붉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내가 소년을 데리고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소년에게 이런일은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자책하고 있는 남자의 곁으로 보스가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윌리엄, 마음 같아서는 너도 당장 죽여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죽이지 않을 거야. 아직 너는 쓸만하거든. 대신 똑똑히 지금을 잘봐둬. 내 것을 손대면 어떻게 되는지를. 남자는 보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저도, 저도 죽여주십시오. 죽여달라는 남자의 간절함이 담긴 말을 들은척도 않고 보스는 사내들을 이끌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저벅저벅. 어둠속으로 그들이 사라지고, 남자는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일으켜 있는 힘을 다해 소년을 향해 걸었다. 소년의 몸이 어둠속에서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앞에 남자의 발걸음이 멈추고, 남자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제이. 미안합니다, 제이. 남자의 목소리가 소년의 죽어가던 정신을 깨웠던 걸까. 죽은줄로만 알았던 소년이 꿈틀거렸다. 소년의 움직임에 남자는 소년의 몸을 끌어안았다. 숨을 쉬기도 버거워보이는 소년이 천천히 토해내듯 한 글자 한 글자씩 말을 뱉어냈다. 윌, 리, 엄... 남자는 소년에게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만 말하고 조금만 버티고 있으라고,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그러나 소년은 굴하지 않았다. 난, 죽을거에요...그러니 어디가지말고 옆, 에...있어줘요... 소년의 호흡이 점점 더 옅어지고 있었다. 곧 끊어질 듯 가늘었다. 의사를 불러오면, 어쩌면 소년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년이 남자에게 가지말라고 부탁했기에 남자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소년의 마지막 부탁이기에, 남자는 들어주고 싶었다.      


“윌...리...엄...젤...라...또...가 먹고...싶어요...”     


 누워있는 소년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그까짓 젤라또 백 개도 더 넘게 사줄 수 있었다. 남자는 같이 젤라또 먹으러 가자고, 먹으러 가기 전까지 잠들면 안된다고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소년은 남자의 말에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리곤 가늘게 이어오던 호흡을 멈추었다. 남자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소년의 몸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아주 서럽게.     


*     


 아름답던 소년,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싶을정도로 맑던 소년.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버린 소년이 안치된 납골당 앞에 서서 남자는 젤라또를 먹었다. 소년과 함께 먹었을때는 너무 달아서 혀가 마비될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도 이 젤라또와 같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을 만나기전에는 자신에게 감정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소년으로 인해 자신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젤라또가 입안에서 다 녹아갈때쯤, 남자는 납골당을 나왔다. 납골당을 나오자 남자의 앞에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일렬로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남자는 그런 사내들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치고는 자신의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남자가 탑승하자 차가 회색빛의 매연을 내뿜으며 움직였다. 하늘 가득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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