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

by 김저녁꽃

어떤 슬픔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가 텃밭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인에게 버려져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는 배추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슴 속에 샛노란 낙인을 품었다

단지 그 해 첫 눈을 보았다는 죄명으로


봉두난발 죄수들의 머리에 눈이 내린다

마음 착한 간수가 덮어준 얇은 한랭사 위로

차곡차곡 쌓인 하얀 고봉밥이 그럴듯하게 차려졌다

누가 저 백색의 식탁 고랑에 앉아 감히 한 술 뜨겠는가


툰드라에서 사슴가죽으로 두른 움막에 눈을 덧대듯

내 눈물 몇 방울로 어떤 슬픔을 몰아낼 수 있다면

한 세상 사는 것 그리 고단하지 않으리라


행여 봄이 와 눈 녹고

실버들 같은 한랭사 걷어낼 때까지

우리 슬픔 월동배추처럼 꽁꽁 얼어있다가

당신 저녁밥상에 봄똥으로 오를 수 있다면

두 손 모으고 내내 노랗게 합장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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