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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8. 2021

[아빠의 문장 #10] 주말농장

집 근처에 주말농장 텃밭이 있어서 친구네와 함께 분양을 받았다. 2평 남짓한 텃밭에 '0연0윤이네'라고 작은 팻말을 달았다. 거기에 상추와 고추 등을 심었다. 주말이면 농장 원두막에서 친구네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셨다.


아이들은 텃밭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흙을 만지고 상추를 땄다. 어떤 텃밭은 어른 키만한 지지대에 오이와 참외 열매가 실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오이의 까칠한 촉감과 참외의 매끈한 느낌이 좋은 듯 열매를 만지곤 했다.


가만 들여다 보면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꽃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파꽃, 부추꽃, 무꽃, 배추꽃, 오이꽃 등 하얗고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텃밭의 풍경은 장관이다. 가지꽃, 도라지꽃 등 보라색 꽃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준다.


꽃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벌과 나비들이 날아온다. 아이들은 벌을 신기하면서도 약간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본다. 파꽃에 앉은 나비는 쫓아가서 잡으려고 덤벼든다. 아이들은 뭐가 무섭고 안 무서운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호박꽃에 벌이 들어가면 꽃봉오리 입구를 손으로 막은 후, 꽃을 따서 그 안의 벌소리를 귀에 대고 듣곤 했다. 윙윙거리며 파닥거리는 그 소리가 무슨 바이올린 소리처럼 들렸다. 한참을 그렇게 음악감상을 하다 꽃을 버리면 벌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주말농장


원두막에 둘러앉아

아침부터 여름 소주를 마신다

캬, 죽인다. 술은 밖에서 마셔야 돼

한참 술이 오를 즈음이면

김부장, 이부장 찾으며 이놈저놈 소리가 나온다

그 사이 아이들은 텃밭 쑤시고 다니며

파꽃 무꽃 오이꽃 가지꽃을 본다

꽃 위를 선회하는 벌과 나비를 쫓는다

벌건 얼굴로 '애들이 어디갔지' 하고 찾으면

사금파리로 오이덩굴 아래 흙을 파다가

아빠, 여기 상추 땄어 하며 흙투성이 손을 내민다

호박꽃 속 벌이 놀래 바이올린 소리를 낸다



초여름 오두막에서 아침부터 삼겹살에 소주 마시고 직장 상사들 욕을 실컷 했다. 월요일 출근하면 가만 안둔다느니 어쩌니 하다가 스르르 잠이 온다. 오두막에서 바라본 여름 하늘은 푸르다. 그 사이 아이들은 텃밭 고랑을 다람쥐처럼 오가며 신나게 떠들고 뛰어논다. 내 삶의 가장 달콤한 안주요, 아름다운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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