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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21. 2021

[아빠의 문장 #13] 잠옷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는 서너살 무렵이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아 사물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기 주관이 생기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음으로 표현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이 시절 큰애는 나에게 툭하면 "아빠, 너~" 라고 불렀다. 아빠는 맞는데 같은 또래 친구 같기도 했던 모양이다. 역시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아빠 너, 나한테 혼난다~~" 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정부에서 광화문으로 다시 인천으로 하루 수백키로를 운전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집에 돌아오면 상전 같은 두 딸들이 있으니 말이다.


마침 집 근처에 사진관이 있어서 아이들 스튜디오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웃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가면서 시키는대로 자세를 잘 잡았다. 평상복, 공주옷, 잠옷까지 다양한 옷을 입고 촬영을 했다.


그 중 101마리 달마시안이 그려진 잠옷을 가져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무릎을 올리고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나는 그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퇴근해서 아이들의 침대에 누워 둘을 양쪽 팔에 안고서 동화책을 읽어줬다. 달마시안 잠옷을 입은 아이들이 어느새 잠이 들면 그대로 한동안 누워 있곤 했다. 팔에 닿은 아이들 잠옷의 감촉과 통통한 볼의 느낌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었다.



잠옷


만만한 게 아빠다

아빠니까 만만한 거다

아침 일찍 나가 취해서 들어오는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을 거다

간혹 주말에 놀아주긴 하는데

가까이 하기에는 먼 꺼림직한 당신

그러니까 "아빠 너" 인 거다

그런 아빠는

어린 달마시안들을 악당에게 뺏길까봐

밤마다 두 팔에 아이들을 안고

같이 꿈나라 속을 헤매다 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서도 아이들이 "아빠 너" 하면 그 친구들도 따라하며 재밌어라 한다. 그래서 딸을 가진 아빠를 딸바보라고 부르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 세상을 바보처럼 살라는 심오한 가르침이었는 지도 모른다. "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자도 아이들을 물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달마시안 잠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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