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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24. 2021

[아빠의 문장 #15] 손바닥

그해 가을 둘째 생일에 서울 도봉구에 있는 파파이스에 갔다. 아이들은 무지개 우산이 꼽혀 있는 어린이세트를 주문해줬다. 지금도 아이들은 어린이세트를 기억하고, 나는 코울슬로와 비스킷의 고소한 맛을 기억한다.


늦가을에는 광릉수목원에 놀러갔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거닐고 작고 아담한 봉선사 뜰을 걸었다. 봉선사 앞마당에는 오래된 배롱나무가 우리들을 반겼다. 


절 입구에 논을 파서 만든 연못에는 고개 숙인 연꽃밥이 듬성듬성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때 나희덕 시인을 알았더라면 '사라진 손바닥'을 떠올렸으리라. 


연못을 지나 논길을 걸어서 나즈막한 울타리가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무 벤치와 장독대, 울타리 등을 오가며 아이들 사진을 찍어줬다. 


아이들은 울타리에 기대거나 벤치에 앉아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잠자리는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구절초는 벌의 움직임에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손바닥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은

물렁한 살에 금을 내기 위해서다

세상에 나올 때까지 엄마의 고통을 알기에

실금을 내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가위로 탯줄을 자를 때 바위를 내서

엄마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다

강보에 쌓여 집으로 돌아올 때

보자기 속에 쏙 들어갈 주먹이 되기 위해서다

살아가면서 점점 가위와 보를 내는 일이 많겠지만

잼잼 하듯 주먹을 쥐면서 아이들은 길을 만들어 간다

자신만의 손금이 새겨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 잠시 쉬는 시간에 손바닥을 보곤 한다. 무안하고 겸연쩍고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리라. 또 거기에 새겨진 문양이 재미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2000년 늦가을 봉선사 사진을 보면 오래된 손바닥을 보는 듯 하다. 이제는 커버린 아이들 손바닥을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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