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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16. 2021

[아빠의 문장 #20] 코리아

2001년 겨울에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가족들과 함께 포천에 있는 온천에 갔다. 무슨 스파랜드 같은 이름인데, 아이들과 함께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겼다. 어머니와 아내는 찜질방에서 몸을 지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오리고기를 먹었던 듯 하다.


2002년 봄이 되자 초롱이는 발곡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복실이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가슴에 명찰을 달고 코트를 입은 초롱이 입학식 사진 한 장이 의정부 시절 마지막 기록이다. 노랑색 초록색 유치원복을 입은 복실이는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잘도 뛰어놀았다.


그해 여름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사무실이 광화문과 가까운데다가 사주가 축구협회 회장이어서 날마다 월드컵 전쟁을 치러야 했다. 대한민국이 이긴 날은 전 직원이 트럭을 타고 호외를 뿌리며 광화문과 종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아마 대동세상이라는 것이 그런 모습이리라. 80년 광주가 그랬고, 3.1운동이 그랬을테고, 동학혁명이 또 그랬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이 되어서 환호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때 아이들도 한동안 얼굴에 태극마크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그 때만해도 주말에는 격주 휴무여서 당직은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했다. 한번은 초롱이와 복실이를 데리고 갔다. 나는 일을 하고 아이들은 사무실 여기저기를 오가며 뛰어놀았다. 초롱이과 복실이가 그것을 기억하려나 모르겠다.



코리아


꼭 이기지 않아도

그때 거기에 같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겐 커다란 소득

누구나 트럭에 올라 타 

종로거리를 누비며 호외를 뿌리던

2002년 그날

초롱이와 복실이도 얼굴과 손등에

빨강 파랑 태극마크 스티커를 붙이고

모시조개 같은 손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그려 그리여 코리아여





찢어진 청바지에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출근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주말이면 꽹과리를 들고 광화문에 나가 신나게 응원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아이들도 꼬마 인디언처럼 볼에 태극 스티커를 붙이고 뛰어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 코리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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