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장수하겠네!
96살까지는 거뜬하고,
그해만 잘 넘기면...
TV에 장수 할머니로 나오겠는데!"
36살,
박사 과정이 고되고 답답해 난생처음 내 발로 찾아간 사주풀이 집에서 들었던 달갑지 않은 점괘였다.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앞으로 60년이나 더 살아야 한다니...
외탁인가 싶었다.
나에겐 구순을 넘긴 외할머니가 있다.
젊은 시절 내 기억 속 그녀는 여장부처럼 대찬 여인이었고 간간이 무작스러울 만치 ‘아들, 아들’ 하던 까랑까랑한 할머니였다. 그러다 아흔넷 이후부터 종종 정신을 놓기일 수였고 옆에서 수발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만 하는 수동적인 노년을 맞이했다.
그래도 그 좋아하는 아들(외삼촌) 얼굴도 매일 보고, 손자 손녀도 인근에 살고 딸들도 그 가족들도 무탈하니 건강이야 예전만 못해도 객관적으로 불행한 노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96살까지 산다니 그녀의 모습이 나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한대 세차게 얻어맞은 듯 멍했다. 스스로 이렇게 반문했다.
'외할머니는
행복할까? 행복했을까?'
그때 잊고 있던 그녀에 관한 아린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여든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어디선가 받아온 탁주 한잔을 걸치시고는 늦은 밤에 베란다 밖 번화가를 보며 구슬픈 한풀이를 하며 눈물지었다.
"이 좋은 시절에 태어나지!
뭐 한다고 그때 태어나가지고...
그러면 이렇게 늙어빠지진 않았을 텐데..."
당시 20대였던 내게 외할머니의 이런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고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니실까 두렵기까지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는 그녀만 아는 못다 한 무언가에 대한 오랜 응어리가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96살까지 산다면,
또 어느 날부터 내가 나답지 않게 된다면,
그 남은 시간 동안에 외할머니처럼 과거의 미련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이 든 어른’이라는 사회적 통념보다 ‘나’라는 자아를 우선시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다 보면 목적과 목표는 쉬 생겨도 꿈이 그려지지 않을 때도 올 테니, 여유는 가지되 정체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못해본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싶었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불쑥불쑥 찾아드는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 그 힘을 잃기도 했다.
- 노후 자금
- 결혼과 자녀
- 가족 부양
- 해외 이민
- 건강과 보험
그럴 때면 불빛이 반짝이는 베란다 너머를 보던 등이 살짝 굽은 그녀의 스산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저 기준 중 대부분이 충족되었던 사람이었다. 현실적인 의식주의 노후 준비만 하면, 나중에 그녀처럼 뜨문뜨문 찾아오는 공허함과 미련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나이 듦과 나다움에 대한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이'와 '나'에 대한 불안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해결하기 쉬웠고 방법도 요령도 조언도 쉬이 구할 수 있었다.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나이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주는 이들의 기사를 찾아 읽고 모 사이트의 애플리케이션에 스크랩을 했다. 노년에 대한 현실적 준비를 하며 휘몰아치는 세월에 잊고 있다가도 매년 한 번쯤 들춰 보며 내 삶의 고삐를 다잡기 위해서였다.
- 나이가 들어서도 직업을 유지한 노력가
-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킨 능력자
- 노년에 빛을 발한 대기만성형 인재
-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은 용감한 모험가
- 멋진 사랑을 오래도록 이어간 로맨티시스트
스크랩을 하며 시간이 흘러 퇴임하고 스크랩 속의 인물들과 동년배가 되었을 때가 되면 나도 그들처럼 살고 있길 바랐다. 스크랩이 쌓였다고 표현할 즈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70대가 되었을 때도
이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할까?
이 기사들이 모두 언론사 서버에 남아 있을까?’
20대에는 라이코스와 파란이 없어졌고,
30대에는 야후가 없어지는 것을 경험해서인지 하드카피인 인쇄물로 남겨두자 싶었다. 그런데 막상 몇 장 인쇄를 해보니 그 모양새가 몇 년 후쯤 재활용 통에 버려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70대가 될 나를 위해서
30대의 내가
나의 90대를 대비하며
그간 모은 긍정적 '나이 듦'과 '나다움'에 대한 스크랩에 지금의 생각을 엮어 글로 남기고자 한다.
70대의 눈에도 불편하지 않고 잘 읽을 수 있게 글자 크기는 12 폰트쯤으로 하고 분량도 짧게 해서 쉽게 읽히도록 말이다.
요즘 같아서는 지구가 먼저 갈지 내가 먼저 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살아낸다면
'나이 듦'이란 통념에 맞추지 않고
'나'로 살기 위해
'또 다른 나'의 '나다움'을
찾고 발견하고 발전시키려 애쓸 것이다.
그 모든 날들을 위해 모아둔 이 글들이 지혜가 되고 응원도 되며 위로가 되기를...
그림출처: https://www.freepik.com/free-photo/family-generation-green-eyes-genetics-concept_2976007.htm#page=1&query=grandma&position=22
나'로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