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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07. 2024

1. 소문난 영도 무당의 손자 민현수

기억을 빌려주는 도서관





#1     



“지이잉~”



톡이다.      

민현수는 충혈된 눈으로 도서관의 사서 모집 공고를 보던 중이었다.

충전 중인 배터리 100%의 핸드폰을 보니, 할머니가 보낸 톡이었다.



‘수야. 현수야, 밥 먹었나?

만월만 아니라도 같이 오는긴데...

할미는 무당촌네들이랑 자훈이 제주도 콘서트 리허설부터 볼라꼬 일찍 왔다.

자훈이네가 억수로 잘 챙겨준다.

자훈이 고게 트로트도 엄청시리 잘한다. 

스타는 스타다!

내일모레나 서울 가니깐. 

밥 잘 챙겨 먹고, 알았제?’         


      

민현수의 눈에 살며시 웃음이 드리웠다. 

할머니는 현수를 부를 때 ‘수야’라는 부산식 이름을 꼭 먼저 부르곤 하셨다.      

할머니는 영호구 판산동의 무당촌에서 점 잘 보기로 손꼽히는 무당인 홍판덕 여사다.


그녀는 원래 부산 영도에서 알아주는 젊은 무당이었다.     

할머니는 전화 통화로 할 법한 말을 손자 현수에게 톡으로 남기길 좋아한다.

톡 앱을 켜고 말을 하면 그대로 톡으로 변환해 주는 기능을 쓰신다.

현수가 그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현수: 할머니, 전화로 해도 되는데··· 

할머니 전화 받을 시간은 늘 있어요.     


홍여사: 이이~ 톡으로 남기면···  

언제든 우리 수야, 현수랑 했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내는 그기 좋다.          



그녀가 이러는 건 몇십 년째 연락이 없는... 사라진 아들, 현수의 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참! 

할머니는 톡은 길어도 잔소리는 안한다. '이거 해라', '저거하지 마라' 라는 말도 일절 없다.      

민현수의 할머니가 쿨한 것도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홍판덕 여사는 자신의 앞날은 간간이 볼 수 있어도, 가족들의 앞길을 볼 수 없는 특이한 체질의 무당이었다.      


대신 타인의 앞날을 기똥차게 봤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지이잉~”



홍 여사가 현수에게 톡으로 사진도 한장 보냈다.


사진 속 그녀는 판산동의 무당촌 사람들과 한데 모여 입이 귀에 걸린 듯 웃고 있었다.      

정 중앙에는 현수의 부* 친구인 트로트 가수 방자훈이 보였다. 사진은 그의 제주도 콘서트 대기실에서 다 같이 찍은 것이었다.      


이번에 자훈이가 무당촌 어르신들 전체를 제주도 콘서트에 초청했다.      



“신나셨네! 신이 나셨...”



할머니의 사진을 보던 현수의 입꼬리가 이내 축 처졌다. 

사진에 있는 방자훈 자식의 화려한 빤짝이 옷과 갑자기 세련되셔진 자훈이 어머니, 최 무당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2     



현수와 자훈이는 갓난쟁이 때부터 같이 한 동네에서 컸다.     


자훈이는 꿈이 트로트 가수였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무명 가수로 활동했었다.      


그러다가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나가면서 자훈이는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게 된다.   

  

아들이 뜨면서 어쩔 수 없이 최 무당도 아들을 위해 방송에 나갔다. 

복덕방을 홀로 운영하는 자훈이 아버지인 방사장보다 어머니인 최 무당이 시간 조절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방송을 위해 최 무당은 즐겨 입던 알록달록한 등산복도 한복도 벗어 던졌다. 

자훈이 어머니로서 최 무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때면 늘 고상한 차림으로 나가셨다.     


트로트 가수에 대한 대우가 예전보다 좋아졌다지만... 무당집 아들이라 사람들이 자훈이를 업신여기거나 차별할까 싶어서 였다.      

대리운전을 해주시는 분들이 늦은 밤에도 일부러 정장 차림으로 다니는 것처럼, 최 무당은 옷을 차려입으셨다. 

이때 늘 옷을 골라주는 사람은 현수네 할머니인 멋쟁이 홍판덕 여사였다.


이번에 할머니가 자훈이의 제주도 콘서트를 위해 코디해 준 최 무당의 스타일은 이랬다.     

위에 입은 트위드 재킷은 옅은 민트색에 연회색이 한 방울 섞인 듯한 오묘한 색에 군데군데 과하지 않게 은사가 들어가 있었다. 


아래에는 물빛의 통이 넓은 연 청바지를 받쳐 입고, 요즘 유행하는 은빛 발레리나 플랫슈즈를 매치했다.     

어디 유럽 왕족의 휴양지 룩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최 무당은 고상했다.



자훈이네는 진짜 현수네의 가족 같은 이웃이다. 

그런 집의 경사에 옷을 코디해 주는 게 멋쟁이 홍 여사에게는 참 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번번이 남의 집 자식 일에 축하만 하는 입장인 할머니가 민현수의 마음을 시리겠다.

현수네 집에는 여태 경사가 없었다. 현수가 만년 취준생이니...  

        

요즘 취업이 어려운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 집 일일 때는 타격이 다르다.     

특히 현수처럼 순식간에 꿈을 이뤄 대스타가 된 부* 친구가 있다면 ‘더’ 말이다.  

   

자훈이의 성공이 현수를 더 서글프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수는 한번도 무언가 되고 싶다고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사서는 꿈이 아니냐고?

현수에게 사서는 평범하게 살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         


 

어린 시절 현수는 혼자 있으면 귀신을 봤다. 

현수는 귀신을 보지 않기 위해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려고 온 동네 아이들과 친구를 먹었다. 

     

도서관도 매일 갔다. 

거기선 귀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 현수는 살기 위해 도서관 사서에 지원했다. 

    

도서관 사서는 국가직이라 자리도 잘 없고, 합격해도··· 현수가 가수인 자훈이만큼 큰돈을 벌거나 성공할 일은 없다.

이 청년의 앞길엔 안개가 자욱하다.  


             

‘자훈이 짜식.

오늘따라 괜히 밉... 흠.’     





현수가 쓴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그러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할머니가 못 보던 신발과 가방을 들고 계신 게 보였다. 

자훈이네 부모님(방사장, 최 무당) 이 또 사주신 모양이다.     


그렇다.

자훈이만한 부* 친구가 없다.

그냥 지금 현수 마음이 가시 돋힌 것 뿐.     

사진 속 할머니 가방에 단 노리개는 낯익었다. 

이번 콘서트 때 하신다며 할머니가 장인에게 맞춘 독특한 가죽 노리개였다.      



“됐다. 짜식 고맙네!

기분이 이럴 때는 떡볶이 해 먹어야지!

우리 할머니 나 밥 굶으면 억장이 무너지시는데... 그건 안되지~

‘할머니 오늘 저녁은 떡볶이 해먹어요.’ 이렇게 톡하고~”    


         

현수는 핸드폰을 유선 충전기에서 빼고 휴대용 충전기를 꽂았다. 부엌에 가기 위해서 였다.     

충전 상태 100% 지만...

현수는 핸드폰 충전에 강박이 있다.     

할머니를 아끼는 현수는 천성이 착하기도 했지만, 별난 가정사와 유별난 할머니의 ‘현수 사랑’도 한몫했다. 





#3     



부산이 고향인 현수의 할머니, 홍판덕 여사는

젊은 시절에는 부산에서 한가락 하는 나이트클럽의 멋쟁이 죽순이었다.      


고아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봉제 공장을 다니며 예쁜 옷을 많이 본 터라 옷을 곧잘 입었다. 

봉제도 할 줄 아니 싼 값으로 옷을 뚝딱 만들어 입곤 했다.      

그래서 어느 부잣집 아가씨보다 멋들어진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홍 여사는 나이트클럽 불빛 아래서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성이었다. 

덕분에 당시 부산에서 유지로 알아주는 봉제 회사의 멋쟁이 외동아들과 눈이 맞았다.     

인생에서 이렇게 잘 맞고 해피엔딩이 그려지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드 엔딩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교통사고처럼 홍 여사를 들이박았다.



무당이 되어야만 하는 신병에 걸린 것이다.     

고아였던 홍 여사는 큰 병에 걸린 줄 알고 남자친구와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동네 무당 어르신이 홍 여사의 병이 신병이라 귀띔을 해주셨다.  

    

홍 여사는 종말이 온 것처럼 멋쟁이 남자친구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는 그런데도 홍 여사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자 쪽 집안이 뒤집어졌다.

그렇다고 돈 봉투를 던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네 집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홍 여사의 단칸방을 찾아왔다. 

현관문에 노크한 후 ‘누구세요?’하는 홍 여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들은 남자친구의 조부모와 부모라고 밝혔다.     

홍 여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머리채 잡히는 거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그 몇 초 사이! 

남자 쪽 어른들은 그녀의 현관 복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 

내 손자, 내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아가씨요. 참말로 미안타...

제발... 

우리 아들과 헤어져 주소.

우리가 이렇게 싹싹 빌 테니까. 

제발... 

제발 헤어져 주소.”            


   

울부짖는 어른들의 간청을 들으며 홍 여사도 현관문에 기대어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한참이 지나 그들이 돌아가고 홍 여사는 결심한 듯 신병을 알려준 동네 무당 어르신을 찾아갔다.    


            

“어르신요. 내 좀 받아주소.

내가 여 아니면 갈 데가 없다 아닙니꺼.

내 좀 무당으로 받아주소.”             


  

홍 여사는 단칸방에 있던 짐을 다 두고 그날로 동네를 떠났다.


멋쟁이 남자친구는 그 단칸방에서 몇 날 며칠을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으레 있는 집에서 하듯이 남자네 어른들은 그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동네 무당의 손에 이끌려 홀연히 지금의 신어머니(현수의 신 할머니) 가 되어줄 무당이 있는 영도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홍 여사에게 물었다.   


            

신 할머니: 니 그 남자... 이리 끊어낼끼가?     


홍 여사: 내사 마. 

그 어르신네들한테 머리채라도 잡혔으면 아마 기를 쓰고 그 남자랑 도망갔을낀데!

곱게 사시던 분들이드라... 

화가 나도 남한테 해코지도 못 하는 분들 같습디다.

무당처럼 험한 일 해야 하는 내 인생인데

그리 착해빠지가 으찌 같이 살 부대끼며 삽니꺼?

난중에 진절머리내다 갈라서는 것보다 지금이 이라는 게 나아예. 

    

신 할머니: 뱃속에 아는?     


홍 여사: 지 아부지 안 닮고 내 팔자 닮았다고 하데예. 

우리 신님이.

아들 하나도 그 난리였는데... 이런 손자까지 그 집은 감당 못합니더.

야는 내 혼자 품어 생긴 아(아기) 입니더.   




                 

#4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홍 여사는 영도바닥에서 유명한 무당 홍판덕이 되었다. 

예뻤던 본명인 홍유선을 버리고, 홍판덕으로 개명했다. 

아무도 그녀를 찾을 수 없도록!      


뱃속에서부터 무당이 될 거라고 했던 홍판덕의 선이 고운 아들은, 민종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신 할머니네 부부의 성을 따른 것이었다.               



민종혁은 중학생 때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피 잡지를 보며 사진작가를 꿈꿨다. 

첫 카메라를 사고부터였다.      


그는 십 대에도 기차나 배를 타고 멀리 가 사진을 찍었다. 대학에서는 전세계 오지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오지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니... 멀쩡한 부모라도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홍 여사는 그런 아들을 내버려 뒀다.      

무당이 되는 게 정해진 삶이라면. 


홍 여사는 신병이 도지기 전까지는 제 아들이 자기 하고픈 것 하면서 살게 두고 싶었다.


꿈에 도전해 보며 살아야 미련이 없다는 걸 사람들의 앞길을 보는 홍 여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대인배인 그녀가 

고향인 부산도 

삶의 터전인 영도도 등지게 한 사건이 터졌다.    




                

#5     



1년이 넘게 민종혁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홍판덕 여사는 그가 무당이 하기 싫어 가출한 줄 알고 ‘돈 떨어지면 돌아오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 민종혁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왔다.     


평일 오전 10시쯤 집에 도착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백일쯤 된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서 와서는 홍판덕 여사네 집 마당에 덜렁 놓고 갔다. 



마침 그때 홍 여사는 집에 없었다.     

아기는 자기가 버려진 것을 알았는지 민종혁이 사라지자마자 온 동네가 떠나가게 울었다.           


애 없는 집에 애 울음소리가 크게 나자, 이웃들이 난리가 났다.

동네에서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사라져도 난리가 나는 정 많은 곳이었다.           


그런 동네에 

갓난쟁이가 갑자기 주택가 마당에 덩그러니 나타나 혼자 울고 있다?


온 동네가 홍 여사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체되자 아이가 울다가 자지러질 것 같았다. 

그즈음 동네 파출소 순경들과 함께 홍판덕 여사가 헐레벌떡 자기 집 철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홍판덕 여사는 미장원에서 모닝 파마를 하고 있었다.


핑크색 구르푸(헤어롤)를 만 채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그렇게 얼떨결에 홍 여사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동네 여자가 말을 보탰다.



“아이고 할매요. 우얍니까.

야가 할매 손자가 맞는 갑네요. 

아가 있던 바구니를 뒤지니까네 종이 쪽째기에...”



동네 여자가 살살거리며 말을 흐렸다. 

건네받은 쪽지를 본 홍판덕 여사의 눈에 서릿발 같은 핏줄이 섰다. 

쪽지에는···       


   

‘민현수’라는 이름과 

생년월일 뿐이었다.      


    

홍 여사는 

자신을 에워싼 이들의 걱정과 호기심 어린 시선을 쓱 훑었다. 


그녀는 앞길이 보일 때면 움직이는 왼쪽 눈썹을 몇 번 쎌쭉였다.      


그리곤 

바닥에 침을 ‘찍!’ 하고 뱉고, 

불쾌한 듯 홍 여사는 말했다.




“여서는 

이 아(아기) 못 키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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