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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07. 2024

2. 서울로 상경한 현수네




#1     



홍 여사를 본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했다.     


신기 쎄기로 유명한 홍 여사가 의례 미래를 볼 때면, 왼쪽 눈썹을 쎌쭉 움직이 걸 아는 이들이었다.     

필시 홍여사가 무언갈 본 게 분명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는 가족의 미래는 볼 수 없지만, 가족의 일에 엮인 자신의 미래는 간간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왼쪽 눈으로 십몇년 후,

조금 전까지 살살거리며 쪽지를 건넨 동네 여자와 머리채를 쥐고 싸우는 조금 늙은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홍 여사의 편을 들지 않고

동네 여자 편을 드는 듯한 동네 사람들의 눈빛을 보았다.    



           

미래는 이랬다.

영도 한가운데서 두 여자는 서로의 머리채를 쥔 채 있었다.   

  

사방이 홍 여사에게 적인 것 같은 시선들뿐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잔뜩 주눅이 든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 하나만이, 이 둘의 싸움을 힘겹게 말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홍 여사에게 애원하는 눈빛으로 싸움을 말리는 남자아이는, 아들인 민종혁보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를 더 닮아있었다.      


         

동네 여자: 이 할매가 미칬나!

좋은 말로 할 때 내 머리채 내려 놔라!


홍여사: 이이 되먹지 못한 ㄴ, 말 짧은 거 보소!

우리 손자가 뭐?

즈그 아빠 닮아가 인물값을 하고 다닌다고? 니가 그리 씨부리고 다녔나?


동네 여자: 틀린 말이가?

야 아빠가 카메라를 메고 산으로 들로 여자들한테 사진 찍어준다고 하믄서 후리고 다닌 거 온 동네가 안다!

즈그 아빠랑 똑같이 야가 요즘 그라고 다닌다!


홍여사: 여자? 니 말 한번 잘했다.

니 내셔널 지오그래피가 뭔지 아나?

내 아들 민종혁이는 거기 사진 내고 싶어가가 산으로 들로 자연만 찍고 다녔다.

기집아들 사진은 한 장도 찍은 적이 없다!

니 닮아가 심뽀도, 생긴 것도, 몬생긴 느그 딸매기가 우리 손주 좋다고 쫓아다니는 거 내 모를 줄 아나?

느그 딸 관수(관리)나 잘해라.

느그 딸 이름도 모르는 내 손자 보고 얼굴값한다 하지 말고!       




              

#2



자신의 앞날을 본 홍판덕 여사는 ‘파핫’ 하며 대차게 웃어 재꼈다.

실소였다.


정을 나누는 것 같은 동네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는 고운 자기 아들 민종혁을 멋대로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겉으로는 착한 듯하며

심보가 뒤틀린 인간들이 있다.    


       

홍여사의 아들 민종혁, 손자인 민현수가 죄가 있다면 고운 외모와 동네 처자들에게 무심했던 것뿐이다.     

왼쪽 눈이 보여주는 미래가 흐릿해지자, 홍여사는 입에 고인 쓰디쓴 침을 뱉어냈다.       


        

홍여사: 여서는 이 아(아기) 못 키우겠네!        


       

그리곤 홍여사는 아기 바구니를 들고 자기 집 철문을 박차고 나갔다.

파마용 핑크색 구르프(헤어롤)를 만 채로 아기 바구니를 자신의 차에 싣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홍여사가 모시는 신이



‘서울의 영호구 판산동으로 가라.

거기 가면 네가 기뻐하며 손자와 사는 모습이 보인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미혼모로 아들 하나 보며 살았던 홍판덕 여사였다.

그날로 그녀는 이 무책임한 아들 민종혁도, 고향인 부산도, 제2의 고향인 영도도 제 삶에 없는 셈 치기로 했다.      

운전대를 잡은 홍여사는 혼잣말했다.  


             

“그래. 잘했다!

잘했다, 민종혁이!

딴 데 안 버리고 내한테로 와가 아(아기) 두고 간 거 참 잘했데이!”      




              

#3     



홍여사는 휴게소도 한번 들리지 않고 그렇게 서울로 향했다.

아이가 한번 울기라도 했으면 멈췄을 텐데... 효자다.  

   

얼마나 달렸을까?


늦은 오후쯤 홍여사는 서울 도심 한복판의 무당 집성촌인 영호구 판산동에 도착했다.

그녀는 제일 처음 보이는 동네 복덕방에 들어갔다.

‘방 씨네 복덕방’이었다.     


           

방사장: 어서 헙! 오세요!

    

홍여사: 집 하나 보여주소.

당장 살 수 있어야 합니더.   


            

복덕방 방사장이 흠칫 놀랐다.

무당을 아내로 둔 사람이라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성정을 지니게 되었던 그였다.     


하지만,

핑크색 구르프를 만 채, 아기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 부산 사투리를 쓰며, 당장 살집을 알아보는 중년 여성이라니…


사연 많은 드라마 한 편이 보기만 해도 뚝딱 나오는 상황이라, 그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홍여사가

왼쪽 눈썹만 기이하리만치 치켜올리고 있으니!     

      

‘헙!’하는 그 소리는 ‘심사가 뒤틀린 손님’을 맞아야 하는 사장님의 소심한 비명 같은 것이었다.

방사장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누구든 손님은 손님이다.’



라는 신조로 움직이는 프로다운 면모가 있었다.      

방사장은 호흡을 한번 깊게 쑤욱~ 들이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방사장: 네~

아기랑 살 집을 찾으시나 봐요? 아파트도 좋은데... 판산동에는 한옥이 많아서요.

얼마 전에 리모델링한 한옥이 있는데요.

집이 좀 크긴 한데,

비어있는 집이라서 바로 들어가서 사실 수 있습니다.     



홍여사: 을맙미꺼?     



방사장: 얼마냐~ 하면, 잠시만요!

(서류를 뒤적이며) 리모델링한 지 3달이나 지나서 새집 증후군도 없는 집이에요.

아! 여깄네요. **억이네요...

음, 여기에~

조금 더 저렴한 곳도 있는데 판산동은 아니고요.   


홍여사: (왼쪽 눈썹을 쎌쭉이며) 그 집으로 합시다.    


방사장: 네?     


홍여사: 구좌번호(계좌번호) 주소!

아직 은행 하니깐 바로 가서 입금하게.   

  

방사장: 네? 저기.

그래도 집을 보시기라도...   

  

홍여사: 내 무당이요.

거서 살면 좋다네예.     


방사장: 아. 네...

오늘은 먼저 계약금만 거시면 어떨까요?

집주인 분과 잔금 치르시려면 연락하고 만나서 하셔야 하잖아요.     


홍여사: 맞내예. 내사 마 맘이 급해 가가...

그래서 을맙미꺼?     


방사장: 네~ 계약금은 *억입니다.     


홍여사: 쪼메 있으소.               



홍여사는 복덕방 앞에 세워둔 차 트렁크를 열었다. 검은색 여행 가방을 꺼내어 다시 복덕방으로 들어왔다.

가방에서 현금 덩이와 수표 다발을 꺼내었다. 소문난 영도 무당 홍여사가 지난 며칠을 밤새 굿을 하고 받은 돈이었다.               



홍여사: 받으소.     


방사장: 아. 하하...

시원시원하시네요.               



방사장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돈 세는 기계에 홍 여사에게서 받은 돈을 놓았다.  


             

“촤라라락~ 촤라라락~”         


      

기계가 신명 나게 돌아가길 몇 번 하고 나서야 방사장은 돈을 집어 자신의 책상 밑 금고에 넣었다.

계약서도 쓰기 전에 돈부터 받기는 방사장도 처음이었다.      


다소 얼떨떨했지만,

방사장은 겉보기로 짐작되는 홍여사의 상황이 상황인 듯하여 그녀가 불쾌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방사장: 계약금 정확합니다.

여기 서류에 이름 쓰시고, 신분증 있으시죠? 그러면 최종적으로 여기에 인감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나머지 서류는 내일 주셔도 좋습니다.     


홍여사: 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방사장이 말하는 대로 계약서를 써나갔다.

다소 누그러진 눈썹을 한 채 그녀가 물었다.    


           

홍여사: 복덕방 사장님요.

이 근처에 마트가 어데 있습니꺼?   

  

방사장: 아! 음.

(생각이 많아 보는 표정으로) 뭐 사시게요?     


홍여사: 요랑 이불이라도 사야지예.

오늘 그 집에서 잘라믄요.

아가 한 번씩 크게 울어 재끼는 것 같은디, 울음소리가 우렁차가 호텔 같은 데는 못 갈기라...

     

방사장: 네? 아!

저, 잠시만요?   




            

#4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방사장은 안쪽의 탕비실로 들어갔다. 홍여사 몰래 아내에게 전화를 걸 요량이었다.     

방사장 집에는 홍여사가 데려온 아기랑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가 있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된 처지라, 그는 홍여사와 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어! 여보.

난데. 있지...”             


  

방사장은 홍여사와 아기 이야기를 부인인 최 무당에게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설명했다.  


              

방사장: 그리고 자기처럼 이분도 무당이시라는데, 괜찮아?    

 

최 무당: 여보, 얼른 모셔 와.

남는 방도 있고, 그런 분은 도와야 나중에 큰 복 받아.     


방사장: 고마워.      


         

방사장은 후련한 표정으로 탕비실을 나와선, 홍 여사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방사장: 여사님, 오늘 이렇게 비싼 집 계약금을 바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비싼 집을 팔면 제가 복비를 아주 많이 받게 되요.  

    

홍여사: 아입니더.      


방사장: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데요.

사신 집이 청소도 해야 하고 가구 들이는 대도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저희 집에서 지내시면 어떨까요?      


홍여사: 그게 무슨...?   

  

방사장: 비싼 집을 사주신 복덕방의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희 집에 그만한 개월 수의 아들이 있으니, 아이들끼리 친구도 좋고요.

방자훈이라고. 하하!

저희 집은 남는 방도 있고, 애가 우는 것도 여사님 상황도 아무 문제 될 게 없어서요.

참! 제 안사람도 무당입니다.     


홍여사: 아이고야, 사장님요... 흑!       


        

매서운 표정의 홍여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긴 그녀의 하루를 떠올려 보면 울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긴 했다.    

 

정 붙이고 믿었던 동네 사람들의 자신과 아들을 향한 못난 속마음을 보았다.

1년 넘게 집을 나간 금쪽같은 아들내미는 코빼기도 못 봤는데, 갑자기 생겨난 갓난쟁이 손자를 책임지기 위해 고향을 등졌다.


고향을 버리고 구르프(헤어롤)도 못 푼 채 서울로 왔다.

홀로!      


채 하루도 안 되는 동안 일어난 큰일들을 홍여사는 혼자 꾸역꾸역 감내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난생처음 보는 복덕방 사장이,

서울깍쟁이들이라 불리는 말쑥한 서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니 홍여사의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자훈이 아버지는 홍여사가 다 울 때까지 시원한 물과 휴지를 주며 기다려 드렸다. 그리고 홍여사와 갓난쟁이 민현수를 조심스레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훈이네는 홍여사가 산 집 근처였다. 민현수와 방자훈의 부*친구 인연의 시작이었다.      





#5     



다시 현재의 취준생 민현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민현수는 할머니에 톡을 보내고 부엌에서 떡볶이 할 준비를 했다. 부엌 한쪽에는 또 다른 핸드폰 충전기가 있다. 강박증이란...     


현수는 핸드폰으로 떡볶이 레시피를 이래저래 찾아보았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성공한 잘난 친구 때문에 소갈딱지가 좁아질 때는? 메운 게 최고다.


그런데,

취업 준비로 약해진 위를 배려해서 현수는 마라 로제 떡볶이로 절충을 보았다.     

요리를 막 시작하려는데, 단톡방의 숫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판모자 단톡방 톡이 217개?’       


        

민현수가 속한 ‘판무자’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판무자는 ‘판산동의 신기 없는 무당의 자식들’이라는 카톡방이다.



‘어디 보자.

어른들 도시고 제주도 콘서트 가서 자훈이한테 고맙다는 톡이 오가다가.


어머니 아버지들이 죄다 ‘자훈이, 자훈이’ 하며 비교해서 흐흐. 절규가 이어지네?

결론은 방자훈이 서울 오면 다 벗겨 먹겠다는 거? 하하.


뭐야, 나만 이런 거 아니네?

괜히 기분 좋네?

하아... 근데 좀 병신같긴 하네...

얼른 마라 로제 떡볶이에 맥주를, 오늘 만월이니깐 무알콜로 먹고 잊자~’    


           

민현수는 그렇게 판무자 단톡방을 보며 어두운 감정을 털어냈다. 빠른 손놀림으로 냉장고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이것도 넣고.

아! 만월이라 자훈에 콘서트도 못 갔으니~ 한우도 추가할까?

핸드폰 배터린? 100%네! 좋고.’



민현수의 핸드폰 배터리 강박은 사실 현수 생에 2번째 강박이다.     

어릴 때는 혼자 있을 때면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혼잣말로 추임새를 넣었다. 지금은 없어진 현수의 첫번째 강박이었다.     


원래 현수는 초등학생 3학년 때까지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었다. 민종혁과 비슷했다. 타고난 성정이었다.




현수가 강박적으로 혼잣말을 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다.

부적도 굿도 통하지 않았다.    

      

희안하게 현수는 혼자 있을 때만 귀신을 보고 들었다. 갑자기 귀신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면서 현수는 혼자일 때 귀신 소리가 들릴까 싶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당인 홍판덕 여사도 밝히지 못했다. 홍여사가 모시는 신들도 현수가 왜 그런지 몰랐다. 현수는 신기는 없기 때문이었다.


홍여사도 여사가 모시는 신도 정말 귀신이 곡을 할 일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민현수의 핸드폰이 소란스게 울렸다.



현수: 누구지? 이 시간에?

어! 할머니네...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으며)네, 할머니.


홍여사: 야야, 수야. 현수야!

니 오늘 멀리서 좋은 소식이 온단다.

크고 좋은 운이라며 신할머니가 내한테 전화를 하셨다!   

  

현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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