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위한 옷 잘입기
“왜, 옷을 잘 입어야 할까?”,
“돈 쓰라고? 허세 부리라고?”
아니다.
사실 요즘 시대는 온전히 숨만 제대로 쉬려고 해도 시간과 돈이 드는 것 같다. 그런데 자존감 때문에 옷까지 '잘' 입어야 한다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줄곧 혼감(혼자 관리하는 자존감)으로 자존감을 균형 있게 키워야 한다고 했다. ‘자라다’나 ‘높이다’가 아니라 자존감에‘키우다’라는 표현은 쓴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키우다’는 ‘크다’의 사동사(주체가 남에게 행함을 받는 것)로 자존감은 스스로 자라거나 높아지기 어려워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의 자존감이 사회에게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채로 스스로 자라나면 좋겠지만, 우린 무인도에 살지 않는다. 거기다 ‘생각하며 존재하는’ 생명체라 내 안의 내가 나를 부정적인 생각으로 눌러버리고 괴롭게도 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외부적인 환경, 상황, 변화에 영향으로 낮아지거나 높아진다.
혼감은 그중에서 무시, 차별, 부당함, 소외됨, 인신공격, 언어폭력 같은 ‘인재(人災)’로 낮아지는 자존감을 막고 예방하기 위한 최전방의 매체로 ‘옷’을 꼽은 것이다. 방탄조끼처럼 말이다.
세상이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약하게 또 역지사지하며 윈윈(win - win)하면 좋겠지만 그러긴 어려운 현실이다. 거기다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한다.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 취급을 하며 총알받이로 삼는다면 방탄조끼 같은 옷으로 그 총알을 튕겨내 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걸 말이나 행동으로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옷을 방탄조끼 삼아서 가마니 취급하며 총알받이 삼으면 안 될 비주얼로 자존감을 지키고 키우려고 한다.
내부적인 성격, 고민, 트라우마, 슬픔, 사랑, 투지(승패)로 인해 낮아지거나 높아지기도 한다.
‘혼감’은 이런 ‘내 안의 적’으로 낮아지는 자존감을 옷으로 부축해서 마지노선(마지막 한계선)까지 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세상사 희로애락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자존감이 휘둘리더라도 적정선을 유지하도록 옷으로 안전한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알랭(에밀 샤르티에)은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는 대신
형식이 또한 내용에 영향을 주는 것을 잊지 말라.
해진 의복을 입고 있으면 상쾌하던 기분도 그 때문에 침울해진다.
다소 우울했던 기분도 옷을 산뜻하게 갈아입으면 상쾌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라고 했다.
그 시점에 그 사람이 딱 맞는 옷을 잘 입는 건 자존감을 위한 마지노선을 치는 것이다.
긍정적인 변수도 있다. 바로 ‘칭찬’이다.
수많은 리더십, 자기경영, 연애기술, 처세서에서 타인의 호감을 사거나 관계를 진척시키기 위해서 칭찬을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칭찬할 부분으로 그 사람의 옷차림을 꼽는다. 물론 인사치레긴 하지만 알면서도 광대가 씰룩이고 입꼬리가 중력을 무시한 채 하늘을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자존감은 참 순진하다."
여신 소리를 듣는 연예인들도 줄줄이 달린 못생겼다는 댓글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니 입술에 침을 바르건 안 바르건, 자존감을 키우는 데는 칭찬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옷차림이 칭찬할 거리를 준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다못해 거울 앞에서 “오늘 좀 괜찮은데~”같은 셀프칭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옷이니 자존감을 위해 옷을 잘 입자는 것이다.
기존의 ‘옷 잘입기’와는 관점이 달라서 자존감을 위한 옷 잘입기의 기준을 마련했다. 예쁘게 멋있게가 아니라 자존감을 위해 방탄조끼도 되고 마지노선도 되는 그런 옷 잘 입기 말이다.
"오~ 오늘 무슨 날이야?" 이런 말은 그날의 옷차림에 따라 간혹 듣게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옷을 보고 마치 드라마의 예고편처럼 기분이나 상황의 힌트를 얻어 파악하곤 한다.
그러니 역으로 옷으로 어떤 예고편을 보여주면 좋을까를 전제로 옷을 잘 입었으면 좋겠다.
만만치 않는 상대로 보이고 싶다면 칼같이 다림질한 옷에 바른 자세로 ‘정직한 예고편’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만만해 보이도록 해서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고 싶다면 평범한 옷차림과 살짝 굽은 자세로 상대와 마주하는 ‘반전 예고편’을 줘야 한다.
이건 옷을 보기에 '잘 입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강해야 할 때와 한발 물러서야 할 때를 옷으로 타인에게 알려주거나 감추고 방어도 낚시도 하는 ‘강력한 예고편’이다.
사회학자인 Goffman의 이론을 재해석하자면 삶이 무대라면 우리는 배우이고 그런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는 관객이며 우리를 역할에 맞는 배우로 만드는 것은 외모(옷차림)이다. 인생은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있었다. 각본이 없다면 먼저 옷으로 주인공 역할을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일 것이다.
삶 속에서
옷으로 나(주인공)를 위한 예고편을 찍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말실수를 하면 사과를 하거나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경우 or때)에 어긋나는 옷을 입은 경우엔 그 국면을 말처럼 빨리 전환할 수 없다. 따라서 TPO에 맞게
'어떤 대화를 할까'처럼
'어떤 옷차림으로 내 의도를 말할까'도 생각해야 한다.
동화 ‘왕자와 거지’에선
거지의 옷을 입은 왕자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입으로 하는 말과 옷으로 하는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사를 잘 전달하고 싶다면 언행일치처럼 입과 옷이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일치하는
‘언복(복장)일치’
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의사전달을 하는데 입이 하는 말을 옷으로 하는 말로 돕는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하나보단 둘이 나은 건 진리다.
다음 내용은 이어서
‘옷 잘입기’는 방탄조끼이자 마지노선이다. (2)에서 연재 된다.
'자존감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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