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에게 참 다정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의 성공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실의에 빠진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의 말을 건네죠. 경기장에서 뛰는 국가대표 선수를 향해 목청껏 응원을 보내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환호와 격려 속에서, 정작 가장 큰 응원이 필요했던 한 사람을 잊고 지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 혹은 자신을 챙기는 일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인색했습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 속에서 나의 가치를 찾으려 애썼고, 그들의 시선이 곧 나의 행복인 양 살았습니다. 어제의 저 또한 "매일 긍정 확언과 명상으로 충분하지 않나?"라며 새로운 다짐을 애써 외면하려 했습니다.
격려+축하+사랑+응원 = 하이파이브<굿모닝 해빗>, 멜 로빈스 / 강성실
멜 로빈스의 책에 나오는 이 간단한 공식이 굳어있던 제 마음에 파문을 던졌습니다. 속는 셈 치고, 글을 쓰다 말고 욕실 거울 앞으로 향했습니다. 퉁퉁 붓고 피곤에 절어 꼬질꼬질한 얼굴.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멋쩍은 마음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습니다. 하이파이브.
찰나의 순간, 정말 신기하게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거울 속 내가 짓는 눈웃음이 왠지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울 속의 저를 온전히 응원해 본 순간이었을 겁니다. 진작부터 나 자신과 이런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파이브 할 때 당신은 뇌에게 ‘나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이파이브는 자신과 접속하고 인정하는 물리적인 행동이다.<굿모닝 해빗>, 멜 로빈스 / 강성실
명상이나 확언이 마음에 건네는 다정한 대화라면, 하이파이브는 몸으로 전하는 따뜻한 포옹과 같습니다. '물리적인 행동'이라는 점이 특별한 차이를 만듭니다.
얼마 전,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걸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늘 양옆에서 아이 손을 잡아주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제가 가운데 서서 양쪽에서 오는 온기를 느껴보았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간질간질하고 묘한 안정감. 타인과의 연결이 주는 충만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일 수는 없습니다. 외로움이 문득 찾아올 때,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대신 우리는 거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거울 속 나와의 하이파이브는 타인의 온기 없이도 스스로를 충만하게 만드는 '연결'의 행위입니다.
오늘 글을 쓰며 몇 번이고 막힐 때마다 거울 앞으로 달려가 '셀프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거울 저편에서 47년간 응원받고 싶어 했던 한 아이가 보였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받고 싶고, 존재 자체로 지지받고 싶었던 내면의 아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타인의 대단한 인정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나 자신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었을지 모릅니다. 오늘, 당신도 거울 앞에 서서 가장 오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를 담아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