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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없는 월요일, 15편, 청포묵, 새우죽

음식에 관한 단상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시간은 후딱 가고, 월요일은 금방 돌아온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이것저것 집어먹다가 아침에야 다시 잠이 드는 바람에 오후에 일어났다.

태양은 중천에 걸려있고요,

미세먼지는 '나쁨'이고요.

눈곱에 팅팅 부은 얼굴, 꼴이 말이 아니군.


비칠 비칠 방에서 나와 식은 보리차 한 잔 들이켜고.

냉장고를 열어, 뭘 먹을까?

얇은 채식만두 몇 개 구우면서 바나나 하나 까먹고,

동시에 누룽지를 끓인다.

조합이 이상한데?

네, 배 고픕니다, 아무거나.

나박김치를 덜고 양념 없이 슬쩍 볶아둔 마른 멸치와 김부각도 꺼낸다.


우선 나박김치랑 구운 채식만두를 먹고.

국물이 구수한 누룽지 한 술.

마른 멸치는 고추장에 콕 찍어서,

또 누룽지 한 술.

김부각 한쪽.

조화로운 구성은 아니었으나 낱낱은 맛으니.

느지막이 깨서 손 별로 안 가고 먹은 아침 겸 점심으로는 괜찮았음요.

밥상 치우고 냉장고에서 씻어둔 토마토 하나 꺼내어 와구와구, 박력 있게 해치웁니다.



저녁은, 아 대체 년만인가, 새우죽을 끓이기로 한다.

내가 끓이는 어떤 죽이든 기본 재료는 동일하다.

다시마 우린 물, 당근, 양파, 버섯 종류에 애호박, 매운 고추, 때로는 마늘, 파.

채소만으로 끓이면 채소죽.

여기에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으면 소고기죽.

닭을 먼저 삶아서 그 국물에 닭살을 가늘게 뜯어 넣으면 닭죽이 된다.

여러 가지 채소를 넉넉히 넣으니 맛도 풍부하고 영양가도 다양하겠지?


새우죽에는 기본 채소에 브로콜리도 추가한다.

새우랑 브로콜리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어서 새우전을 지질 때도 브로콜리를 동반하거든.

하여간 소금물에 씻어 내장을 제거한 냉동 새우는 잘게 썰고.

브로콜리, 새송이버섯, 애호박, 당근, 양파도 아주 잘게 잘랐다.

특유의 새우 냄새를 잡아줄 약간의 파와 마늘, 매운 고추는 곱게 다지고.

씻어 불린 쌀에 다시마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다.

쌀이 끓기 시작하면 계속 저으면서 농도를 봐가며 끓는 물을 조금씩 추가하고.

준비한 채소는 순서대로 넣는데.

죽을 끓이면서 계속 저어야 물기가 쌀알에 스며들어 죽이 차지고,

시간이 지나도 물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쌀알을 갈거나 물기가 흥건한 죽은 좋아하지 않아요.

죽이 거의 되어갈 무렵,

청주를 약간 뿌려두었던 새우를 넣고 새우가 붉어질 만큼 끓인 뒤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빻은 깨를 조금 뿌려서.

(죽 종류에 따라 마지막에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는데,

한 번에 먹어치울 게 아니라면 그릇에 덜어서 기호에 따라 참기름과 간장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죽을 저은 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 그대로 둡니다.


죽을 들일 동안 청포묵을 만들자.

냉장고에서 굳어버린 청포묵은 길쭉하게 썰어서 채에 받쳐,

끓는 물에 넣어 투명하고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고기나 계란은 먹지 않는 월요일이니 그 재료는 빼고,

참기름과 간장 양념에 깨를 청포묵에 뿌리고.

잘게 썬 파 조금, 구운 김을 부수어 다 함께 살짝살짝 무쳐낸다.


그렇게 저녁 밥상은 새우죽,

간략 버전 청포묵에 나박김치로 차려졌다.

맛있게 먹었고요.

죽은 많이 먹어도 배가 일찍 꺼지니.

넉넉히 끓여서 식은 뒤에 먹으면 역시 맛있음.



* 월요일의 그린라이프!


지지난 주, 지난주에 이어 책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 이지윤 옮김, 시공사)를 소개합니다.


그동안 도시에 확대되어 가는 인공조명이 너무 밝아서 인체를 비롯 자연계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공조명 가격과 비용이 낮아지면서 도시와 거리는 갈수록 밝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조명이 밝을수록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따라서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안전 측면에서 범죄와 교통사고의 감소를 기대하겠는데,

통계를 볼 때 조명이 밝아진다 해서 범죄가 줄어들거나,

조명을 껐다 해서 범죄가 늘지않는다고 한다.

주택의 경우 외관을 비추는 밝은 조명은 외부에서 관찰이 용이해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또 이웃들이 원치 않는 조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

그리고 조명이 비추는 밝은 부분과 그 사이 어두운 부분인 명암 차이로,

눈이 부시고 시야가 산만해져서 위험성이 높아진다.


독일의 무제한 도로인 아우토반에는 가로등이 없다고 한다.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가로등을 비롯한 야간조명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데,

* 최대 3,000 켈빈을 넘지 않는 낮은 조도로,

* 주거지에서는 가능한 한 1,800 켈빈 앰버 LED를 이용하라거나,

* 전등 위에는 가림 장치를 씌울 것을 권장하며,

* 밤에는 빛을 줄이거나 아예 끄거나 또는 동작 감지기를 사용하는 등 필요에 맞게 조명을 조절할 것을 당부한다.


빛은 하늘이 아닌, 아래를 향해야 하고,

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조명이 필요한 곳을 고르게 비추는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은 적은 빛만으로도 도로 안전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심지어는 도로 안전을 위해서는 빛이 적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과도한 명암 대비와 눈부심을 방지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광원의 밝기를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눈부심을 유발하는 LED 광원이 가로등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광판도 가로등 못지않게 눈부심을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한다. (239쪽)



지은이는 책을 마치며 다시금 강조한다.


모든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빛과 어둠의 교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살고, 별빛 아래에서 자란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행복과 삶의 터전, 자연과의 조화를 위기로 몰아넣지 않고서도 인공조명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머뭇대지는 말자.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자주 불을 끄자! (275쪽)


이 책은 단순한 감상이나 가설이 아니라 인공조명 관련 연구의 결과물을 다각도에서 제시하며 밝은 조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금 우리는 조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밝은 조명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문제의식을 갖고 바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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