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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23. 2020

귀찮음을 넘어서

음식에 관한 단상 18

그릇 욕심이 있다.

오래전부터 여행을 가면 그릇은 한두 개라도 사 왔다.

혼자 밥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제대로 상 차리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많고 몸이 바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관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



바깥일에, 아이들에 치어 밥 먹는 일이 노동이 되면,

먹는 것에도, 상 차리기에도 소홀하게 된다.

마음에 괴로움이 꽉 차 있으면,

음식을 하고 밥상을 차리는 일이 힘에 겨울 수 있다.

때로는 더 급하고 소중한 일이 있기에

인생의 어느 시기, 평범한 일상을 희생해야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시기를 넘겨 한숨 돌리면

꼭 깨끗하게 씻은 예쁜 그릇에,

공들인 음식으로 자신과 식구들을 위한 근사한 밥상을 차리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사람이 필수적인 의, 식, 주로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라서.

밥 먹는 데 멋도 부리고 살짝 사치도 하면서 열심히 사는 자신에게 상을 주는 거다

마음을 다쳤을 때도 근사한 밥상으로 스스로를 보살피면서 상처를 치료하는 거다.

허겁지겁, 꾸역꾸역 대충 배나 채우는 사람보다

깔끔하게 밥상을 차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더 예뻐 보이지 않겠나.



흔히들 힘든 세상살이에 절망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내가 위함을 구하는 상대방도 마찬가지 심정일 지 모른다.

뜻이 없는 타인에게 나를 위해달라, 요구하면 치사해진다.

억지로 얻어낸들 기분이 좋을 리가.

스스로 자신을 위하면 될걸.



값나가는 유명한 상표일 필요는 없다.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깔끔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잘 닦아두자.

손끝에 조금만 힘을 주어 닦으면 그릇이 뽀송뽀송한데,

설렁설렁 물만 끼얹어 찐덕찐덕 불쾌한 그릇에 무신경한 분들이 계시더라.

손으로 씻던, 기계의 힘을 빌리던 마음을 써야 그릇도 윤이 난다.



대단한 그 무엇도 순간순간의 사소한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한걸음, 한걸음 공들여 살아가는 나날이 결국 내 모습을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서 내가 쓴 물컵 하나, 수저 한 벌 제대로 닦는 것이,

그렇게 작은 것에도 공들이는 일관성 있는 자세가,

인생에 튼튼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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