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자다가 깨면,
특히 꿈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꿈의 내용과 상관없이 마음이 슬퍼진다.
평소에는 밑도 끝도 없는 낙관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한밤중에 잠을 깨버리면
어둠 속에서 나의 현재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와락,
무서워진다.
1990년 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주 갔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 머물러야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시차 적응한다고, 여기저기 둘러본다고, 몸이 힘들다고...
일단 가면 길게 머무르고는 했었다.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북쪽까지 이어지는 1번 도로가 있다.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이 도로는 풍광이 빼어난데.
L.A. 약간 남쪽 동네에 머물던 나는 종종 남으로는 샌디에이고.
북으로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실컷 내달리곤 했었다.
하얀 벽에 주황빛 기와가 얹힌 낮은 건물들이 푸른 나무들 사이에 점점이 놓여있던
스페인 풍의 산타바바라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였다.
햇빛이 쏟아지는 푸른 나무의 도시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한번 살아보고 싶어 졌다.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서 덴마크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솔뱅은,
오래되고 예쁜 마을이었다.
소박하면서 견고한 느낌이 있었다.
길의 동쪽, 태평양을 바라보는 절벽에 드문드문 지어진 커다란 집들은 근사했다.
석양의 바다를 운전하다 보면 좋은 풍경에도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그런 멜랑꼴리조차 그때는 썩 괜찮게 느껴졌었다.
남쪽 캘리포니아는 늘 따듯하고 화창하지만,
특히 볕이 좋은 날이면 바닷가에 사람들이 많이 놀러 나왔다.
모래밭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바비큐를 굽거나, 드러누워 선탠을 하거나.
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식당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햇살만큼이나 유쾌한데.
우리나라처럼 바닷물에 들어가서 헤엄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요트를 타거나 서핑 같은 놀이는 했지만.
그런가 하면 L.A. 에서 내륙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황량한 지형이 나타난다.
전혀 푸른색 없이 붉은 바위와 메마른 평지 사이에 한줄기 하이웨이가 놓여 있어서,
자동차들은 한껏 속도를 올리며 쌩하니 달렸다.
그때도 미국에는 한국 식당들이 많았고,
어디서나 우리 음식 재료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뉴욕이나 L.A. 의 코리아타운에는 대규모 한국음식점들이,
한국보다 더 고급스러운 한국 마켓이 성업 중이었고.
우리 전통 음식은 내용물이 참 충실했다.
전반적인 물가가 있어 음식은 양도 많고 가격은 한국보다 더 비쌌지만,
미국은 식재료가 싸고 풍부해서인지 음식에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L.A. 갈 때마다 내가 먼저 달려가는 식당이 있었다.
한인타운에 있는 허름해 보이는 음식점이었는데 국물 음식을 주로 팔았던 것 같다.
하여간 나는 우리나라 변두리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 어수선한 밥집에서 항상 소꼬리탕을 먹었다.
원래 쫄깃한 소꼬리 음식을 좋아해서 꼬리찜도, 꼬리탕도 잘 먹는데.
잘 아시다시피 한우는 꼬리에 살점이 많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소하고 쫄깃한 살점이 모자라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미국 소는 오직 살을 위해 한껏 비대하게 키워지는지라(ㅠㅠ),
꼬리에까지 살점이 투실하다.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펄펄 끓는 소꼬리탕이 나오면.
나는 먼저 국물에 파를 잔뜩 뿌리고.
탕에 가득 들어있는 꼬리뼈를 하나 꺼내 접시에 담고 흐물흐물 푹 무른 살점을 크게 발라낸다.
양념간장을 콕 찍어 고깃덩어리를 입에 가득 넣으면,
크, 입안에 번지는 만족감이라니.
노인은 이국에서 살아간다.
스스로 선택한 땅이고,
태어난 곳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이제는 익숙하다.
가족이 있고,
인생을 다 바쳐 삶의 터전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다 깨는 한밤중 꿈처럼.
이국에서 살아간다는 게 무서워질 때가 종종 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서, 이대로 늙어가야 하나?
길을 잃은 막막함.
아아, 이국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친구들과 잘 놀던 놀이터에서 갑자기 모두가 사라지고,
어둠이 다가오는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어린아이처럼.
늘 쓰는 언어는 목에 걸리고,
잘 먹어온 음식은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대단한 경치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고달픔도, 비참함도 견디면서 투지를 불태웠던 용기 있는 청년은 이제 기력이 달리는 노인이 되었다.
내 부모를, 나를 키워준 고향 음식은 영혼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뼈에 각인된 유전자다.
밀려오는 불안과 외로움과 슬픔과 두려움.
그래서 비틀비틀,
용기 잃은 당신.
희미하게 스치는 낯익은 냄새에 슬며시 눈을 뜬다.
고기와 뼈를 밤새 푹 고아 시간을 오래 들여 만들어 낸 국물 한 사발.
오늘 당신의 서글픔을 함께 울어주는 국밥 한 그릇.
이국에서 찾는 고향 음식은 처연하다.
살아보겠다는 목숨줄이다.
울먹이는 꼬마 아이의 아빠, 엄마! 슬픈 외침이다.
허공을 휘젓는 손짓이다.
소리 내어 엉엉 울지도 못하는 억눌린 비명이다.
흐느끼면서 국밥 한 그릇을 비웠고.
그래서 얻을 수 있었던 한 줌 위안으로 노인은 이국 땅, 내 집을 찾아간다.
또다시 슬픔은 밀려오겠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나를 지탱해주소서,
오늘 기도할 힘은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