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와 둘이 사는 기간이 길어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다.
새로 지은 집 대들보가 얼마나 굵었는지,
천정은 또 얼마나 높았는지.
대청마루 아래 수납함에 보관했던 여분의 쌀이
유난히 길었던 장마를 지내면서 파랗게 곰팡이가 슬었다든가.
멀리 통영으로 시집간 작은 고모가 김, 전복 같은 남쪽 먹을거리를 잔뜩 이고 지고 친정에 다녀갔던 얘기.
뭐 그런 어린 시절 안락했던 날들의 이야기들.
그러다 어느 날 출근길 외할아버지가 사라져 버리고.
쫓기듯 고향을 떠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한반도에 몰아쳤던 격동의 세월에 어머니는.
원산 여학교 기숙사 시절에 외할머니가 싸주셨던 맛있는 밑반찬들과
참으로 열성적이었던 선생님들에 관해서도 회상하셨다.
아득하게 들리던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에 여전한 것도, 낯선 것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대학 시절에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단다.
수가 적었던 여학생들은 교모만 쓰게 했는데.
모양낸다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써보다가 교모는 삐뚜름히,
구두는 꼭 하이힐로 복도를 콩콩 찍고 다녔다.
시간을 거슬러 일제 강점기 말에 일본의 공출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뭐든 모자랐다.
일제의 행정력이 덜 미치는 시골에서는 식량을 구할 수 있다는 풍문에
우리 외할머니는 오직 자식들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돈꾸러미를 배에 감고 깊숙한 시골로 찾아갔다.
며칠 뒤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소 한 마리 잡아 달구지에 싣고 돌아오셨다고.
그보다 시간을 더 거슬러서 우리 어머니에게 눈병이 생겼다.
고향에서는 치료가 되지 않아 소개를 받아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다시 부산의 일본인 의사에게로 먼길을 다녔는데.
어린 어머니는 자신의 병보다 기차 타고 서울로, 부산으로 여행 다녔던 호기심과.
입맛 짧은 우리 어머니를 위해 외할아버지가 주문해서 트렁크에 잔뜩 넣어 준
우유 과자를 더 즐겁게 기억하고 계셨다.
아이고, 엄마!
외동딸이 혹시 실명이라도 할까.
근심 가득해서 이불 싸들고 유명한 안과병원 전국적으로 찾아다니던 외할머니 심정은 어쩌라고?
전쟁이 일어나고 나날이 폭격이 심해졌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배를 타기 위해 온 흥남 부두에서 어머니는 외할머니, 외삼촌과 떨어졌다.
여학생 마흔 명만 태워준 목선에 올라탄 어머니는 묵호항에서 한번 쉬었다 포항에 도착했고.
이틀 뒤 겨우 배에 탈 수 있었던 외할머니와 어린 외삼촌은 거제도에 내렸다.
한 달 뒤 무사히 거제도에서 가족이 상봉하고,
부산을 거쳐 서울에 정착하기까지 길고 막막했던 고달픈 여정.
외할머니 그늘에 있던 갓 스물의 어머니는 그 시간까지도 명랑하게 기억하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피난선에서 단 하나의 보따리만 허용되어 살림살이가 든 두 개의 보따리는 바다에 던져야 했다.
겨우 갖고 온 보따리에는 어릴 때부터 준비해온 우리 어머니 혼숫감과
언젠가는 꼭 만날 외할아버지의 외출복이 들어있었단다.
피난통에 어머니의 혼숫감은 팔아서 남쪽 생활에 기반이 되었고.
외할아버지의 겨울 코트는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