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수에서는 향일암에서 바라보던 툭 트인 파란 바다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면.
순천에서는 풀이 흔들리던 너른 늪지와,
들판을 한참 지나 다다랐던 조계산이 아련하게 기억에 남았다.
선암사에 가보기로 했다.
몇 달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어머니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외출할 수 있게 되었던 즈음이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입시다,
해서 길을 떠났다.
더웠던 여름을 지내고 단풍은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뜻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던 가을날,
아름다운 풀과 꽃들이 가득한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모녀는 참으로 흡족한 시간을 보냈다.
시설도 좋았고, 관리도 괜찮았다.
그리고 모노레일을 타고 습지 깊숙이 들어가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그렇게 넓은 습지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
볕이 뜨거웠다, 는 것 말고는 하염없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들을 바라보고만 싶었다.
어머니 건강 때문에 습지의 끝, 바다까지는 가지 못하고.
모녀는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린 차와 과일로 요기를 하면서 마냥 앉아 있었다.
쓰윽, 바람 한줄기,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순천만 국가정원의 회원권을 사서 자주자주 달려오고 싶다, 는 마음이 들었다.
언제 그럴 날이 올까?
내가 놓인 처지를 떠올리며 한숨을 휴, 내쉴 때.
어머니의 시선이 나를 물끄러미, 앗, 숨을 멈췄다.
선암사로 오르는 길은 꽤 길었다.
오른쪽 반신으로 어머니 무게를 떠받치며 경사진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머니는 몇 걸음 걷다가는 이내 멈춰 서야 했는데.
그윽한 숲길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줄줄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과.
차밭이니 물길이니,
곳곳에 안목 있는 스님들이 시간을 두고 공들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해서.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좋았다.
그렇게 선암사 경내에 들어섰다.
차곡차곡 쌓은 돌다리는 참으로 아리땁더라.
풀 향기는 은은하고.
긴 시간에 색이 바래고 건물들이 삭아가는 절집에는 안개비가 뿌리는 중이었다.
마침 방문객이 없어 적막한 산사.
초입에 있는 각의 처마 아래에서 지친 어머니는 비를 피하시고.
딸은 부처님 전에 올라 절을 드렸다.
무게를 덜어 달라거나 짐을 내려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만하게라도 버틸 수 있기를.
고통 중에도 당신 존재가 오그라들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키우지 않기를.
마지막 날까지 온유하고 선한 마음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딸은 그렇게 좋았는데,
어머니의 선암사는 어떠셨는지.
딸 마음이 불편할까,
당신 몸의 괴로움을 혼자 얼마나 견디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