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체로 적응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가는데.
가끔 현실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 안에 수십 년의 풍경이 차곡차곡 기억되어 있기에,
어느 순간 불쑥 지난 시절이 의식 위로 떠오르면서 눈앞의 것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운동 삼아 먹을거리를 사려고 집에 있는 차림 위에 롱 패딩만 걸쳤다.
날이 추우니 거리에는 다들 나처럼 둥실둥실 눈사람 같은 롱 패딩을 입었더라.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
색상은 다르지만 거위와 오리들의 희생으로 우리들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고맙고 미안해.
(패딩이 죄다 화학솜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큰 건물에 있는 행사장에 이불을 싸게 판다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그 옆에도 겨울 옷, 신발도 싸게 판다는 광고판이 있고,
유리벽 안쪽에는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예전에 비해 옷이나 살림 도구들은 대체로 가격이 저렴하다.
우리 자랄 때는 지위가 있는 어른들도 얇은 모직 코트 하나로 수십 번의 겨울을 보내셨다.
겨울이면 남자 선생님들 중에는 서툰 뜨개질 솜씨로 뜬 스웨터나 조끼를 입는 분들이 꼭 있었다.
아마 아내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옷이겠지.
집이 좁고 식구가 많아서도 그랬겠지만.
예전에는 살림살이가 비싸서
겨울에 이불 하나로 여럿이 덮고 살았다.
또 세탁기도 없으니 추우면 빨래가 힘들어 제대로 빨래도 못했지.
겨울이면 잘 씻지도 못해, 빨래도 못해.
당연히 냄새가, 히유;;
한 이십 년이나 됐을까.
내가 시골 출신 나보다 살짝 나이가 위인 분께,
"왜 시골 할머니들은 겨울에 코트를 안 입고 스웨터를 여러 개 겹쳐 입어요?"
물었더니.
"없으니까."
짧고 정확한 답변이 돌아왔다.
요새는 대부분 겨울이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따듯한 패딩을 사입을 수 있고.
가볍고 따뜻한 이불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세탁기가 열일 하니 빨래도 문제없지.
겨울이 오고, 날이 추워도 따듯한 옷을 입고.
저렴한 비용으로 따듯한 이불을 덮고, 난방도구도 살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예전에 시베리아 추위가 사정없이 밀려드는데,
낡고 얇은 옷을 겹쳐 입고 거리에서 일하시던 분들의 빨갛게 얼어 터진 얼굴을 기억하는 연배들이라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자가 되었나,
감개무량한 순간이 때때로 있으리라.
요새 젊은이들은 이 심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리.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사고, 쓰고, 버려서.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꺼림칙한 마음이 있다.
물건을 아껴 쓰고 소중하게 여겼던 그 시절이 나쁘지는 않았다.
옛날과 지금의 좋은 점만 골라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