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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22. 2020

떡국을 먹으며

음식에 관한 단상

혼자 지내되면서 떡국, 만두 같은 손쉬운 일품 음식을 자주 먹게 되었다.

예전에는 고깃덩어리를 끓여 육수를 냈지만.

지금은 손쉽게 사골국물 농축액을 쓰거나 

아예 인스턴트 떡국도 먹는다.


우리 집에서는 떡국에 꼭 만두를 넣고 볶은 고기와 계란 지단 같은 색색의 고명을 얹어 먹었다.

넣어 끓이거나 떡국에 만두를 넣거나 하는  지역마다 다르더라.

원래 만두 문화가 전국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설 때가 되면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왔다.

썰기 좋도록 떡을 꾸덕꾸덕 말리는 동안.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만두를 준비하셨지.

여자 어른들이 할머니 방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다.

누구는 홍두깨를 잡아 넓적하게 반죽을 밀고.

누구는 그것으로 만두피를 만든다.

그 옆에는 여럿이 달라붙어 만두피를 손바닥에 척 얹어서는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떠 넣지.

보시기에 담긴 물을 찍은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속 넣은 만두를 여며서는

동글동글 모양이 잡힌 만두들은 커다란 쟁반에 정렬한다.

줄 맞춰 자리 잡은 만두들이 쟁반을 가득 채우면 부뚜막에서 펄펄 끓는 큰솥으로 들어가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이 어린이그 자리에 껴서는,

넓게 편 반죽에 주전자 뚜껑을 꼭꼭 눌러 동그란 만두피를 만들어내고.

싫증이 나면 자리를 옮겨 만두를 빚었다.

잘 빚는다는 어른들 칭찬에 흥이 올라서는. 힘들다, 그만 해라.

하시는 어른들 말씀도 안 듣고 밤늦게까지 만두를 빚다가.

음, 그만 쓰러지셨다.


다음 날, 학교에 못 갔고,

아버지는

"너 덕분에 우리 집 설 쇠는 거 들통났다." 허허 웃으셨다.

그때는 '이중과세'라 해서 음력으로 는 설날은 못 쇠게 하고,

양력 1월 1일만 설날이라고 하루 이틀 쉬었던 시절이었거든.

우리 집은 상 차려먹을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으니,

티 내 않고 조용히 설날 상을 차렸었는데.

그날 결석한 학생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선생님은 눈치채셨으려나.



한동안 구례오일장까지 장 보러 다닐 때.

사방이 뻥 뚫려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설 대목 장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는.

빈터에 세워둔 자동차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시장 앞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김이 펄펄 끓어오르는 굴 떡국을 먹었다.


멀건 국물에 떡이 듬뿍.

계란을 풀어 넣고 굴을 한 국자 넣어 팔팔 끓여서는.

채친 김을 얹어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주었다.

추운데 있다 와서 그런지.

음식이 워낙 맛있어서 그랬는지.

빨갛게 얼어버린 입으로 입천장이 델만한 뜨끈한 국물 한 입 떠 넣고.

보들보들 떡이랑 굴 하나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크,

굴의 비릿하면서 고소한 맛과 향이 입안에 확 퍼졌다.


참 맛있었는데.

언제 다시 가서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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