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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27. 2022

토마토 수프

음식에 관한 단상들

나는 주기적으로 위에 문제가 생긴다.

평화 시대가 지속되면,

좋다고 연일 과식하고.

그러다 보면 나의 무능한 소화기관에 과부하가 걸리니.

위가 비명을 지르며 반란을 일으킨다.


이런 패턴의 반복이라 적어도 2~3년에 한 번씩은 크게 탈이 난다.

빠르면 일주일 정도 고생하고 회복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두 달쯤 정말 힘들었던 적도 있다.

이 소동을 겪는 동안은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그동안 늘었던 체중이 저절로 빠진다.



역시 속 쓰림으로 고통받던 오래전에,

위는 아프고.

밥을 사랑하는 나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해 기분도 몹시 좋을 때.

 우울한 와중에,

그럼에도 먹을 만한 것을 열심히 궁리하던 어느 날.

뭔가가 떠올랐다!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이태원으로.

이태원에는 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식당이 있었다.

완전 동네 식당처럼 제각각 다른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던 소박한 공간.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어 보이는 토마토 수프를 주문했지.


붉은색의 수프를 한 입 먹자,

아,

그 따뜻하고 부드럽고 살짝 새콤한 액체가 입을 지나 식도를 타고 비어있는 위에 살그머니 도달하기까지!

음식을 갈망하던 내 몸은 토마토 수프의 왕림을 환영하며, 국물 한 방울, 한 방울을 쏙쏙, 기쁘게 받아들였다.



토마토가 예민한 소화기에 좋은 음식은 아니라는데,

그날 토마토 수프를 시작으로 나는 식사를 시작했고.

순조롭게 몸이 회복되었지.


직접 빵도 만들어 팔고 소시지 종류가 다양했던 그 식당은 이제 없다.

좋아하던, 몇 안 되는 식당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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