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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Oct 24. 2024

8 딸의 비밀 연애를 알게 됐을 때 아빠의 마음

딸에게 보내는 여덟 번째 편지

사랑하는 딸아!


딸의 10년 비밀 연애. 이 편지를 읽고 나니까 10년이란 세월동안 아빠 몰래 비밀 연애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데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만났을까 하는 생각에 아빠 마음도 편하지 않구나.


우리 딸은 아빠, 엄마를 닮아서 마음이 너무나 여려서 더 걱정을 한거야. 상주에 내려왔다 서울로 올라갈 때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다 안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갔잖아. 이런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또 울컥한다. 아빠라고 딸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안 궁금했겠어? 당연히 궁금하기도 했고,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 그러다 어느 날, 고수부지 산책길이었나? 한번 슬쩍 물어봤던 것 같아. 


딸은 남자친구 없어?


이 물음에 우리 딸은 한번도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니 만나고 있었지만 아빠한테 소개하기에는 마음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딸이 긴 시간동안 몰래 숨겨둔 그런 멋진 오빠, 진혁이가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딸이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근을 하고 늦을 때면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해줘야만 아빠, 엄마는 잠들 수 있었어. 당장 달려가지도 못할 거리인 상주-서울이었기 때문에 걱정은 더욱 컸던 것 같아. 급한 일이 생겨도 바로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잖아. 


딸이 스무살 때 였나.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딸 남편감으로는 100가지 시험을 통과해야해! 라고 했던 아빠의 말. 가정, 종교, 직업, 인상, 경제력... 수만가지 이유를 다 만족해야 사위로 삼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어. 너무 소중한 딸이기에 행여나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됐고,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 


그런 우리 딸이 남자친구와 결혼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아빠한테 처음으로 선별해 둔 진혁이의 사진을 보여 주던 날. 아빠의 성향이 워낙 철저하고 완벽주의자?인 탓에 우리 딸도 마음이 떨렸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아. 아빠가 사람 보는 눈이 엄청 까다롭잖아. 실제로 한번 만나보지도 않고 대화 한번 안해 본 사람을 바로 어떻게 이렇게 쉽게 낙점할 수 있었겠어. 그럴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사진을 보는 순간 훈훈한 인상이 아빠 눈을 사로잡았던 것 같아. 선하고 동그란 눈 덕분에 인상이 100점이었지. 그리고 두번째, 아빠가 좀 사람 볼 줄 알잖아. 38여 년 동안 여러 기관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경험 했으니 그만큼 많은 데이터가 머리 속에 있거든? 그 데이터 덕분에 한눈에 진혁이를 사윗감으로 딱! 낙점할 수 있었어. 마지막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우리 딸에 대한 믿음'이었단다.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한번도 아빠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잖아. 오히려 아빠를 위해 걱정해 주고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지. 그런 딸이 선택한 남자? 일단 믿음이 갔어. 정말 이 편지를 빌려 딸에게 딱! 말할 수 있는 건, 아빠가 단순하게 우리 사위 '진혁이'를 선택한 게 아니라 정말 신중했다는 거야.


그리고 한달 후, 딸이 처음으로 진혁이를 데리고 와 첫 선을 보이던 날, 명실상감 한우 식당에서 우리는 만났지.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인사하러 왔는데 아빠의 예상은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었어. 보는 순간 마음이 좋았고 식사를 하는 동안 나눈 대화 속에 진혁이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지. 참으로 '멋진 복덩이'가 우리 집으로 굴러 들어왔구나 하는 마음에 정말 기분이 좋아 밥맛까지 좋더라. 이후 빠른 속도로 결혼을 하게 되고 이제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갈수록 우리 사위 진혁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행복하단다.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 사위를 만났던 순간

지난번 연휴 때 인천에 가서 3박 4일 동안 지내면서 너희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왔잖아. 알콩 달콩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면서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아빠는 우리 딸을 낳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는데 꼭 그런 기분이었어. 엄청 마음이 좋았다는 뜻이야. 앞으로 너희들에게 펼쳐질 미래가 더욱더 기대된다. 항상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길 바란다. 아빠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야.


아빠가 10년동안 비밀로 숨긴 남자친구를 알게 됐을 때, 뒷 목 잡고 화내지 않아서 고마웠다고 했지? 

아빠에게 또다른 사랑을 알려줘서 아빠가 더 고마워.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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