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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딸에게 받은 따뜻한 선물, 서재

딸에게 보내는 열 세 번째 편지

by 전태영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우리 딸, 지난 편지도 잘 읽었다.

아빠는 오랜만에 방학을 맞이했어. '방학'은 아빠가 전문직에서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와 처음 맞이하는거라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늘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이렇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게 조금 낯설기도 했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가끔은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을 일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 아닐까?


그런데 그런 아빠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지.

오늘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늦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그리고는 새벽같이 너와 아들이 불쑥 들어오는 게 아니겠니! 깜짝 놀라서 연락도 없이 왔냐고 물어보니, 너희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


"오늘은 아빠의 서재를 멋지게 꾸며 주려고 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단다.

알고 보니, 너와 사위, 그리고 아들이 며칠 전부터 아빠를 위한 깜짝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낡은 책상, 자꾸 끊어지는 인터넷, 오래된 프린터… 아빠가 불편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자료를 찾는 모습을 보고 너희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그대로 전해졌어. 부모는 언제나 자식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존재인데, 오히려 너희가 아빠를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걸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희가 준비한 프로젝트는 단순한 서재 정리가 아니었어. 그건 아빠를 향한 깊은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었단다.

그리고 곧바로 서재 꾸미기가 시작되었지.

책장과 책상을 정리하고, 조명과 소품을 하나하나 배치하면서 너희는 정말 세심하게 신경 써 주었어. 흐트러진 책 한 권까지 가지런히 정리하고, 조명의 밝기와 방향까지 조정해 가면서

"아빠, 이렇게 하면 어때?"

하나하나 아빠의 의견을 물어보는 너희를 보며, 아빠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빠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꾸며 주고 싶어."

라고 말하는 너희의 눈빛에서 아빠를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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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너희는 직접 준비한 작은 소품들과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메모까지 서재 곳곳에 남겨 두었지. 아빠가 글을 쓸 때마다 곁에서 응원해 주겠다는 듯한 메시지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단다. 그 중에서도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한 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강아지 인형이었어. 모니터 바로 앞에 자리 잡은 그 인형을 보고 아빠는 웃음이 났지만,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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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재 꾸미기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이어졌어. 그런데도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일처럼 즐겁게 함께했지. 그리고 그 순간 아빠는 깨달았어.


이 공간은 단순한 서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사랑이 가득 담긴 특별한 장소구나.


정리가 끝난 후, 아빠는 새롭게 단장된 서재를 천천히 둘러보았단다.

아늑한 조명 아래 깔끔하게 정돈된 책장, 편안한 의자, 따뜻한 색감의 소품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너희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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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기하게도, 서재가 생기고 나서 아빠의 하루도 달라졌어. 예전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곤 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서재로 발걸음이 향한단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이 조용한 공간에서 너희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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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늘 너희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아빠가 더 큰 사랑을 받은 것 같구나. 단순히 서재를 꾸며준 것이 아니라, 너희의 깊은 마음과 정성이 아빠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물해 주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아빠는 새 서재에서 우리 딸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창밖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고, 배경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는 이 공간에서…


아빠만의 특별한 서재를 선물해 준 사랑하는 딸아,

고맙고, 사랑한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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