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보내는 열 세 번째 답장
아빠! 아빠가 우리가 준비해준 서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
사실 우리 네 가족이 복작 복작 살던 집에서 나와 동생이 각자 독립을 하고 나니 엄마, 아빠의 마음이 뭔가 모르게 허전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거실에 다같이 모여 잠을 자기도 했고,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잖아. 그땐 24평의 거실, 주방을 제외하면 방이 두 개밖에 되지 않아 내 방을 가지긴 쉽지 않았지만 가족끼리 모여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살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러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 아빠가 작은 방에 내 침대와 분홍색 이불을 깔아주던 때가 생각나. 처음으로 독립된 나만의 침대가 생겼던 날이었거든. 우리 가족의 공용 공간에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꼭 넓지 않아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함을 느끼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어. 내가 좋아하는 걸 곁에 두는 게 너무 행복했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내 방 안에 있으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지.
그래서 이번 '아빠 서재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아.
방학을 오랜만에 맞이한 아빠가 집에서도 독립된 공간 안에서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 아빠에게 작은 공간이지만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방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그런데 이런 걸 하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한테 부담을 준다 생각할까봐 엄마, 아빠 몰래 동생이랑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준비했는지 알아? 방 사진을 미리 찍어와서 그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지 그림을 그려보고, 어떤 가구를 버려야할지, 어떤 가구를 새로 사야할지 정리했어. 동생과 시간을 미리 맞춰 새벽 첫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KTX를 예매하고, 가구는 미리 동생의 자취방으로 주문을 했지. (동생 자취방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걸 늦게 알아서 무거운 가구를 4층에서 혼자 날랐다고 하더라.. 미안하다 동생아)
그렇게 2주 정도 비밀리에 준비한 '아빠 서재 만들어주기 프로젝트' 당일이 되었어. 두근 두근하는 마음에 새벽 4시 30분 부터 눈이 떠졌는데 창 밖에는 이미 폭설에 가까운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지. 당황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나와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어.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김천 구미역. 동생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이미 길에는 눈이 쌓여있고, 4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30분 가까이 걸려 도착했어.
그렇게 우리의 깜짝 방문에 놀란 엄마, 아빠와 함께 15년 가까이 사용한 책상과 침대를 빼내고 새로운 가구로 채워넣었어! 하나하나 방을 채워가는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아빠가 우리에게 베풀어주던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느낌이 들어 더 뿌듯하기도 했던 것 같아. 아빠가 지난 편지에 말했던 것 처럼 우리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넣은 아빠의 서재 공간은 거의 8시간 만에 완성이 되었어.
아빠! 우리가 그 공간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야. 아빠가 그 방 안에서 휴식을 하던, 글을 쓰던, 생각을 정리하던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 단 하나. 세상 밖은 너무나 시끄럽고, 혼란스럽잖아.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도 아빠만의 공간에서는 행복한 마음 하나만을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 방에서 내가 그렇게 하듯이. 이번 방학 기간도 벌써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소진한 에너지들도 아빠의 서재에서 휴식을 하면서 모두 채우길 바라.
아빠! 많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