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열 네번 째 편지
사랑하는 딸아!
조금은 따뜻해졌던 날씨를 뒤로하고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오늘이구나.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느긋하게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서재에 앉아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우리 집 앞에는 '천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이 오늘따라 더 선명해 보이네. 너희가 어렸을 때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엄마와 정상까지 올라가 도시락을 먹기도 했던 산이잖아. 아빠는 예전부터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거나 몸이 찌뿌둥 한 날에는 산에 올라가곤 했다.
지난 학기에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도 근처에 있는 산 부터 찾아봤어. 잠시 시간이 되면 산책삼아 올라갈 수 있는 산. 정말 감사하게도 학교 바로 옆에는 '매봉산'이 있었지. 높지 않은 해발 237m의 낮고 산세가 순한 산이다. 군데군데 계단을 만들어놓아 오르는 데 30분 정도로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아빠는 퇴근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매봉산을 오르곤 했어. 산을 오르면서 보고, 듣고, 힐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싶더라. 그때의 기억을 딸에게 나눠줄게.
아빠는 산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초입 부분에 첫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커다란 바윗돌이 있어 돌아갈까 했는데 바윗돌 위에 누군가 작은 돌을 붙여 놓아 디딤돌로 이용하도록 해 놓은 것이 보였어. 그래서 그것을 밟고 올라가니 너무 기분이 좋은 거 있지? 바위에 붙여놓은 작은 바위 조각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등산객을 위한 작은 배려이지만 너무나 감사했다. 이런 작은 배려가 모여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
시작부터 감동 하나를 가슴에 담고 산을 올라갔어.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평평한 능선이 이어진 덕분에 여유롭게 걷기 좋았지.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계단 때문에 힘겹기도 했지만 정상이 멀지 않기에 더욱 힘을 냈어. 하늘에 닿을 듯 곧게 뻗은 소나무와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붉은 꽃이 만든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어.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꾸역꾸역 올라가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보이는거야. 우리도 살아가면서 매 순간 갈래길을 만나게 되잖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최상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을 하기도 하고. 아빠는 매번 가던 길보다는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번에는 약수터 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어. 원래 가던 길로 갈 땐 보지 못했던 풍경도 보았지. 빨갛게 익은 망개도 보았다.
앞만 보고 가던 길보다 돌아가보니 좋은 것도 많더라. 우리 딸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신 없을 때가 많겠지만가끔씩은 옆도 볼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렇게 올라간 매봉산 정상.
아빠는 이 곳에서 큰 숨을 내쉬며 절경을 즐기곤 했다.
아빠는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쉬운 건 분명해. 하지만 내리막길이라고 너무 방심해서는 안된다. 풍경에 몰입해서 앞만 보고 내려오다가 자칫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거든. 내려오다 보니 아주 신기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어. 한 그루 한가지로 자라다가 수년이 흐른 후에 두 가지로 자란 소나무 한그루! 그 자체로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다. 숲 속에 들어서보니 큰 나무, 작은 나무, 제비꽃과 민들레 같은 야생 식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저마다의 색깔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또 한번 자연의 질서에 감탄했었어. 산길을 걷다보니 풍경에 취하고 자연의 질서에 감탄하고 마음의 힐링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지. 아빠에게 '산행'은 ‘행복’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는 아주 귀한 시간이란다.
사랑하는 딸아!
우리 딸도 카페를 벗어나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산을 올라보렴.
뭔가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지친 마음에 새로운 활력소도 될 거고!
아빠가 내준 미션을 하고 난 후 소감도 들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