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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노인 Aug 28. 2017

#14 그들의 취향

고양이마다 장난감 취향이 다르다

마리와 라리는 꽤 확고한 장난감 취향을 가지고 있다. 공통적으로 카샤카샤(잠자리 모양의 헤드에 와이어 따위로 손잡이와 연결시켜서 집사가 잡고 흔들며 놀아주게 만든 장난감)나 레이저 포인터 등은 둘 다 환장해서 쫓아다니지만 특히 더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존재한다. 

레이저포인터는 과연 좋은 장난감이다(내 인스타 캡쳐)

마리는 공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데, 밥을 먹거나, 잠을 자다가도 공이 굴러다니면 벌떡 일어나 쫓아다닐 정도다. 집착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할 것 같다. 텐션이 오르면 드리블도 수준급이라 이름을 메시라고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될 때가 있다(그러고 보니 김메시도 꽤 멋진 이름이다. 혹은 김날두나…). 이런 마리 때문에 집엔 항상 작은 공들이 여러 개 굴러다니는데, 뜯어지거나 헤지기도 하고 어디론가 자꾸 없어져서 지금은 사기보다는 직접 만들어주고 있다. 

왜 공을 항상 저렇게 건방진 표정으로 물고다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마리와 라리같은 장모종은 털을 조금만 빗어줘도 엄청난 양의 털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소똥구리가 똥 굴리듯 손으로 힘껏 뭉쳐나가면 금세 단단하고 동그란 공이 만들어진다. 집사들 사이에선 ‘털공’이라고 부르는 이 공은 적당한 탄성도 있어서 바닥이나 벽에 튕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리가 와서 개구 호흡을 할 때까지 가지고 논다. 돈도 안 들고, 털도 빗어주고, 장난감도 생기고 일석삼조의 좋은 방법이다.

마리와 라리 털로 만든 털공을 갖고 노는 마리

라리는 마리와 취향이 조금 다르다. 우선 공엔 전혀 관심이 없는데, 어릴 때 마리 공을 뺏다가 마리에게 많이 맞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를 닮아 공놀이에 무심한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공보다는 길쭉한 무언가를 선호한다. 예를 들면 장모님이 오랫동안 키우다가 주신 개운죽 잎이나 비싼 장난감의 본체가 아닌 손잡이나, 와이프가 아끼는 화병에 삐져나온 꽃 같은 것 말이다. 음.. 써놓고 보니 라리가 왜 마리에게 맞았는지 이해가 간다. 아무튼 주로 길고 나풀대는 무언갈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택배 포장에 딸려온 플라스틱 노끈이다. 덕분에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쓰는 와이프도 그 흉물스러운 노끈을 몇 달째 버리지 못하고 방치해놓은 상태다. 

라리는 유난히 길고 단단한 것들을 좋아한다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건 나름대로 소소한 재미가 있지만 각자 취향에 맞는 장난감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다. 이놈에겐 공을 만들어 던져주고 다른 놈에겐 노끈을 신나게 흔들어주고 하다 보면 문득 뜻하지 않은 니힐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작은 고양이들과 놀아주며 터져 나오는 나와 와이프의 웃음, 실컷 놀고 난 후 천사처럼 곯아떨어지는 녀석들의 표정, 동시에 찾아오는 정적과 작은 평화가 빈틈없이 채워주는 일상의 행복에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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