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아프지 마
마리가 우리 집에 온 지 대략 한 달 정도 됐을 때다. 슬슬 예방접종을 걱정하고 있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새벽 한 시 경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깜짝 놀란 말투로 나를 급히 찾았다. 마리 피부가 이상하다며 딱딱한 각질 같은 게 있다고 말했다. 망친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들 때만큼 철렁한 심정으로 자세히 살펴봤는데, 갈색의 각질과 함께 해당 부위의 털에 탈모가 생긴 것이 아닌가! 마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순식간에 나와 와이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필 밤이라 근처에 문 연 동물병원도 없었고, 더군다나 이런 일은 둘 다 처음이라 황망한 마음에 인터넷만 밤새 뒤졌던 것 같다.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다는 말에 마리를 격리시켜야 하나 굉장히 고민했지만 이미 잘 때만 되면 우리 베개나 내 가슴 위에 같이 누워 잠을 청하는 녀석을 불안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마침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동물병원을 찾았다. 결론은 링웜. 1년 미만의 아기 고양이들이 자주 걸리는 곰팡이성 피부염이었다. 의사분은 어린 고양이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이런저런 질병에 자주 걸린다며, 링웜은 소독을 잘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재발 확률이 높고 끈질기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 이상 꾸준히 소독해주는 게 중요하단다.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사람에게 옮을 확률은 아주아주 손에 꼽을 정도로 낮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잘 옮겼으면 자기가 이렇게 만지고 있지도 않았다며…). 링웜 같은 질병은 어떤 예후도 없이 나타나고 크게 이렇다 할 원인도 없어서 키우는 사람의 잘 못은 아니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우린 충격을 한 번 더 받았는데, 마리와 라리가 거의 기아 상태라고 했다. 사실 이 말이 링웜보다 더 가슴을 쑤셨다. 내 아이들이 기아라니… 물론 100% 우리 부부의 잘못은 아니다. 애초에 분양자의 집은 양쪽 모두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 형제들이 있었고 당연히 형제간 경쟁으로 인해 마음껏 식사를 하기는 힘들었을 거다. 더불어 부모 묘까지 하면 6~7마리의 고양이를 신경 써야 하니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처음 방문한 병원은 여러모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링웜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생활습관을 몇 가지 바꿀 필요가 있었다. 링웜은 곰팡이성 피부염이다. 다시 말해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 발병하기 쉽다는 말이다. 따뜻하고 습한 환경. 그때는 10월 말이어서 사실 온도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항상 습도가 높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생활했었는데 어둡고 음침한 곳을 좋아하는 마리와 라리는 곧잘 화장실에 들어가서 놀곤 했다. 안됐지만 화장실 랜드는 폐장이다. 다음은 청소. 다시 말하지만 고양이는 어둡고 음침한 곳을 매우 좋아한다. 소파 밑, 침대 밑, 세탁기 밑, 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냉장고 밑… 청소 횟수를 늘리고 더 꼼꼼히 청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아 상태를 해결하기 기호성 좋은 아기 고양이용 습식 캔을 사료와 섞어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됐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출근 전에 소독약을 발라주고, 자기 전에 붙잡고 발라주고,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운동량을 늘렸다. 거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약용 샴푸로 감염 부위를 살살 씻기자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는 게 보였다.
당연히 우린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감염 부위가 얼굴로 번지기 전까진…(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