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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노인 Mar 31. 2020

#01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왜 사는가.


아주 보편적이고 진부한 질문이다.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은 철학책을 보면 선각자들이 나름의 정의를 내려왔으나 솔직히 무슨말인지도 모르겠고 와닿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로 했다. 


생각의 씨앗은 원시시대부터 움튼다. 


원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였을까? 아마 먹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 인류는 무리를 보호하며 식량을 조달하는 것에 가장 신경 썼을 것이다. 비가 오거나 맹수가 습격하거나 다른 무리와 싸움이라도 나면 안전은 위협받고 식량 수급이 힘들어진다. 이때 인류의 가장 큰 목적은 생존이었다. 


이후 인류는 농경사회가 된다. 가축도 기른다. 가장 고민하던 식량 문제가 해결 된 것이다. 문제는 모든 인류가 농경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옥한 토지, 적당한 물, 따뜻한 기온이 반드시 필요하다. 4대 문명은 모두 이런 조건이 만족된 곳에서 탄생했다. 


아무튼 농경사회가 된 인류는 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농사를 지으려면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 비옥한 토지에 정착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연 재해, 맹수의 습격은 물론이고 주변 부족으로 부터도 땅을 지켜야 한다. 


이때부터 기나긴 땅따먹기 전쟁이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 결국 더 많은 토지는 더 많은 식량을 의미하고 식량은 곧 인구와 힘을 상징한다. 세계 각국은 원시적인 정치 형태인 왕정을 바탕으로 상대국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엄청난 풍요를 선물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효율이다. 같은 땅에서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식량은 물론이고 편의에 필요한 물건들과 생존엔 딱히 필요 없는 잉여 산물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산된다. 식량 생산에 과거처럼 올인할 필요가 없으니 다른 산업도 발달하는 것이다. 


이후엔 어떻게 됐지? 엘빈 토플러가 짚어준대로 정보혁명이 일어난다. 탈대량화, 다양화, 지식기반 생산, 변화의 가속. 뭐 복잡한 말이다. 중요한 건 결국 결과다. 정보혁명이 일어나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든 생산은 지금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흐를것이다. 


여기서 효율적인 방향이란 인류의 노동이 줄어드는 방향을 의미한다. 정보혁명이라는 건 따지고보면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의아할 것이다. 사람이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과 인류의 흐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사는 목적은 결국 먹는 것이다. 인류는 과거로부터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왔고 더 효율적으로 먹기 위해 발전해왔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일하는 이유는 잘먹고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로또에 당첨되면 좋은 집 한채 사고 차 한 대 사고 그 다음엔 맛있는 걸 먹을 것이다. 이것 외에 우리 삶에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 먹는 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가.


어떤 거창한 철학, 위대한 과학, 경이로운 예술도 굶고 할 순 없다. '이외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배부른 사람이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세상엔 다양한 삶이 있다. 게으르고 나태한 삶이 있는가 하면 모든 열정을 불태우는 삶도 있다. 국가에 헌신하거나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삶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삶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행위, 혹은 설계하고 싶은 미래에 대한 사전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이다. 사람은 각자 삶의 방식은 달라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하며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냥 지 꼴리는대로 산다는 이야기다. 고귀한 삶과 쓸모없는 삶은 주변인의 평판만 달라질 뿐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행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그저 타인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 뿐이다. 사명, 목적, 의무, 책임. 인생에 그런 건 없다. 같은 시간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데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고귀한 삶을 살고 싶으면 그렇게 노력하고 행동하면 그만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당신만이 알겠지. 








결국 내가 사는 목적은 이 길고 지난한 인생이 덜 불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삶의 매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무슨 목적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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