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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영화를 사랑한 아이

콘셉트에 관하여

by 임경주



막둥아 막둥아 빨리 일어나. 누나 무서우니까 빨리 일어나. 아 좀 일어나라고! 누나 무서워 죽겠어.


셋째누나가 잘 자고 있는 나를 급하게 깨운 이유는 토요명화를 같이 보자는 거였다.

어셔가의 몰락.

그때 난 국민학생이었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어셔가의 몰락이 그날 주말의 명화였는지, 토요명화였는지 잘 모르겠다. 또 주말의 명화가 MBC였고, 토요명화는 KBS였던 거 같은데 이 기억도 정확하지가 않다. 아무튼 난 누나들과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를 골라 보는 재미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작에 어셔가의 몰락이 있다.

진짜 무서웠다.

전반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흑백화면에서 관뚜껑이 열릴 때의 기억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나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무서웠는데 이게 은근히 재미있다는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늑대인간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난 영화를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했고, 섬 마을에는 희귀한 영화포스터 앞에만 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 옆으로 뭐 놓친 거 있나 없나 보고 또 보고 돌아서질 못했던 그때가 참 행복했던 거 같은데 이런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쯤은 입봉이라도 했어야 맞는 게 아닐까.


물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나름 노력하다 보니 꽤 유명한 영화제작사 대표와 인연이 닿아 좋은 영화 만들어보겠다고 3년을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투자실패로 자빠졌고 내가 쓴 시나리오는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직장 생활하며 먹고사는 게 우선인지라 입봉은 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그 대표를 통해 컨셉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난 말만 깨달았지 아직까지도 컨셉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맞다고 본다.


프로와 아마를 나누는 결정적인 선이 바로 컨셉이라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컨셉의 효율성.

프로는 자기 컨셉이 명확하고, 그 컨셉을 효율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아마는 제 아무리 뛰어난 글 솜씨를 가졌어도 자기만의 컨셉을 정확히 모를뿐더러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컨셉까지도 사용할 줄 모른다나.


아무튼 요즘 들어 고민이 많다.

나의 글쓰기 콘셉트는 도대체 정확히 뭘까? 만약 타고난 컨셉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가수 장윤정이 타고난 뽕필을 끝까지 거부하고 아이돌을 고집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고민이 많은 밤이다.

뽕필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아이가 깨닫게 될 정체성, 그 컨셉은 도대체 뭘까?


영화를 사랑했던 아이가 성장하며 어셔가의 몰락이 검은 고양이의 저자 애드가 앨런 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보다는 소설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게 잘못된 걸까? 그래서 지금도 헤매고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영화를 사랑한 아이로.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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